[정운찬 칼럼]① ‘봉우리’를 기르자

정운찬 전 총리는 우리나라가 과학기술 선두국가가 되기 위해 ‘봉우리’를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봉우리는 과학기술 분야를 이끌고 나갈 인재를 의미한다. 순수과학분야 연구에 매진하는 인재들이 많이 나와야 우리나라 과학기술도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가 서울대 총장 시절의 경험을 살려?’과학기술과 리더십: 원칙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로 쓴 글을 두 번에 나눠 싣는다. <편집자주>

서울대 총장으로 재임할 때 자연과학대학과 공과대학은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자체적으로 외부평가, 좀 더 정확하게는 외국평가를 받았다. 수학, 물리학, 전자공학, 재료공학 등 10여개 분야에서 미국의 해당 학회장을 포함한 저명 교수들을 중심으로 외부평가단(external review committee)을 구성하였다. 외부평가단은 각종 자료들을 검토하고 3일간의 현장방문평가를 실시한 후, 교수, 학생의 질, 장래발전 가능성 등에 관해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대와 공대는 학생 능력이 뛰어나고 우수한 교수진을 갖추고 있었다. 서울대를 미국에 갖다 놓는다면 당장이라도 거의 모든 학과가 해당분야의 20위~30위 정도가 될 것이라는 평가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외부평가단은 따가운 충고도 잊지 않았다. 우선 각 학과에 우뚝 선 ‘봉우리’가 되어 동료를 이끌어갈 그리고 동료들이 본받고 따를 세계적인 거인이 부족하고, 둘째는 동료들 간에 경쟁이 부족하며 마지막으로 일부 학과에서는 외부용역과제(project)를 너무 많이 맡고 있어 기초연구(fundamental research)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이 중 ‘봉우리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서울대에 봉우리가 없으면 한국이 중견과학 국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선두과학 국가가 되기는 힘들다.

봉우리를 기르기 위한 첫?과제는 ‘교육’

결국 과학의 발전을 이끌 봉우리 부족 분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는 봉우리를 길러내야 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지금부터 해야 될 것이 바로 교육이다. 많은 봉우리들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교육, 특히 과학교육을 잘 받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원을 잘 만들어서 미래 과학기술계의 큰 봉우리가 될 학생들을 석사박사 과정에서도 잘 교육시켜야 한다. 한국에서 세계적인 학자를 길러내지 못하면 한국은 학문의 중심지가 될 수 없다.

결국 길게 보면 한국과학기술의 장래는 무엇보다도 교육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어려서부터 아이들에게 어떠한 자질들을 일관되게 길러주어야 할까?

첫째는 체력이다. 세계에서 초중등교육이 가장 잘 돼 있다는 영국 교육의 특징은 처음에 ‘체육’, 그리고 ‘덕육’, 그 다음에 ‘지육’하는 것이다. 체육을 강조하는 영국에는 학문의 봉우리가 유난히도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닌 듯싶다.

둘째로 중요한 자질은 창의력이다. 유대인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자녀에게 ‘오늘 학교에서 질문을 몇 개나 했느냐?’고 물어보는 반면, 한국인들은 자녀에게 ‘오늘 선생님의 질문에 몇 개나 대답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한국부모의 이런 태도가 우리 아이들의 창의력을 잘 길러주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 중의 하나가 다양성이다. 나는 서울대학교의 총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먼저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했다. 전체 학생의 1/3, 1/4 정도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골고루 들어오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한 임기가 끝나 도입은 못했지만 계획을 세웠던 것이 ‘계층균형선발’이다. 부자도 뽑고 가난한 사람도 뽑아 가난한 사람은 부자의 걱정을 배우고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미국 대학들은 이미 50~60년전부터 인종 균형, 계층균형, 지역균형 선발을 해오고 있다. 많은 창의적인 생각들이 대학을 지식의 전달기관으로부터 지식의 창출기관으로 탈바꿈시킬 것이다.

세 번째 자질은 적응력이다. 새로운 환경에 처했을 때, 새로 사람을 만났을 때, 새로운 문화에 접했을 때, 그것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내야 한다. 이것은 외국어를 잘 한다든지 외국 문화를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오히려 대담함의 문제, 모험심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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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세 가지 자질을 다 갖추어 준 뒤에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은 바로 ‘국어’일 것이다. 국어는 목수의 연장과도 같다. 국어를 잘해야 생각을 잘할 수 있고, 사고가 모여서 사상이 되고, 문화가 된다. 이 때 읽기, 말하기, 쓰기 등 다양한 훈련을 해야 한다.

이상의 조건들은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것도 장기적 관점에서 나온 생각이다. 그러나 과학계의 봉우리를 키워내기 위해 편법이나 있지도 않은 지름길을 찾기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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