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창간10주년⑥] 유현준 홍익대 교수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간의 혁명’
아시아기자협회를 주축으로 2011년 11월 11일 11시 11분 창간한 온라인 아시아엔이 지난 2022년 2월 22일 오후 2시 창간 10주년 특별포럼 ‘Next Leadership Toward Active ESG’을 개최했습니다. ‘Next Leadership Toward Active ESG’는 반기문 제8대 유엔사무총장의 ‘기후위기, 탄소중립, ESG’를 주제로 한 기조연설에 이어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이사장(전 유엔대사)의 진행으로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이사장 ‘위기의 한국경제와 동반성장 그리고 ESG’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이화여대 석좌교수) ‘생태적 전환과 ESG’ △박영옥 주식농부 ‘한국의 자본시장, 기업 거버넌스 개선 방향’ △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기술 개발’ △이석우 두나무(업비트 운영사) 대표이사 ‘블록체인이 만들어가는 ESG 세상’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 ‘공간의 양극화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의 재구성’ 순으로 주제발표 및 질의응답을 가졌습니다. 아시아엔은 연사들의 주제발표와 행사소식 등을 연속해서 전합니다. -편집자
‘공간의 양극화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오프라인 공간의 재구성’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
오늘 드릴 말씀은 ‘공간 구조를 어떻게 바꾸면 더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공간의 양극화가 새로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공간은 제한적이기 때문에 가격이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죠. 특히 요즘 서울만 보더라도 집값의 평균 가격이 10억원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집을 살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비싸기 때문에 젊은 친구들은 집을 대신해 자동차를 삽니다. 자동차를 사면 자동차 실내 공간만큼은 내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되기 때문이죠.
그런데 차를 살 수 없는 대학생들은 보통 한 5천원 정도 내고 카페의 공간을 빌려 씁니다. 그 돈이 없는 고등학생들은 3천원를 들고 지하에 있는 피시방에 갑니다. 그것보다 돈이 없는 중학생들은 1천원 내고 편의점 가고요, 그것보다 돈이 없는 초등학생들은 무료인 메타버스에 가서 로블록스하고 놉니다. 이처럼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가상 공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그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기생충>이라는 영화였습니다. 영화 초반에 보시면 반지하에 사는 가족이 계속해서 와이파이를 찾아서 다닙니다. 그런데 같은 인물이 부잣집에서 지낼 때는 마당에 누워서 책을 보는 생활을 즐기죠. 오프라인 공간을 즐길 수 있게 되니까 온라인 공간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생활하는 거죠.
돈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오프라인 공간
이런 현상들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롯데백화점이 얼마 전 전체 연면적 중에서 20% 정도를 차지했던 명품 매장 공간을 50%까지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백화점 입장에서는 중저가의 물건을 온라인 쇼핑을 통해서 사기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소비자들을) 굳이 맞을 필요가 없죠. 그럼 누가 백화점에 갈까요? 비싼 물건을 사는 돈 많은 사람들이 갑니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여의도의 ‘더현대’ 백화점입니다. 6층의 슬라브는 아예 없앴고요, 5층은 가든으로 꾸며놨습니다. 이런 식으로 연면적을 줄이면서 한 일은 무엇일까요? 가든을 만들어 자연을 갖고 왔습니다. 그리고 천창을 만들어 놨어요.
전통적으로 건축에서 백화점과 도박장은 창문을 만들지 않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밖에 있는 풍경을 보다가 시간이 지나고 있다는 것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그런데 요즘 세워지는 쇼핑센터들은 온라인 쇼핑 공간과 경쟁하기 위해서 천창을 뚫어요.
오프라인 쇼핑 공간은 온라인에 없는 걸 갖고 와야 되는데 대표적인 게 자연입니다. 그래서 그 자연을 갖고 오기 위해서 천창을 뚫은 거죠. 화분도 갖다 놓으며 자연을 꾸미는데 문제는 이런 공간들을 돈이 많은 사람만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간들 중 더 많은 부분이 돈을 써야만 쓸 수 있는 공간이 되어가는 거죠.
가장 적은 돈으로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 ‘벤치’
그럴수록 정부에서는 오프라인 공간들, 자연을 갖고 있는 공간들 중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곳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그 중에서 가장 적은 돈을 가지고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벤치를 놓는 것입니다. 아무데나 앉아서 쓸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왼쪽 사진은 뉴욕의 모습입니다. 950m 길이의 브로드웨이에는 벤치 170개가 놓여 있습니다. 오른쪽 신사동 가로수길을 보시면 같은 길이의 거리에 벤치가 세 개밖에 없어요. 오른쪽과 같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길 가다가 다리가 아파서 앉으려면 돈을 내고 커피숍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러면 돈이 많은 사람은 5천원짜리 스타벅스를 가고요, 돈이 없는 사람은 1500원짜리 빽다방을 가겠죠.
그런 사회에선 경제적인 배경에 따라 내가 누릴 수 있는 공간과 장소가 달라집니다. 10년~20년을 같은 도시에 살더라도 같은 추억을 가지기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엔 공통의 추억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제공을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공원 크기 아닌 모양
공간을 재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점점 소중해지는 자연을 누구나 누릴 수 있게 해줄 공원입니다. 공원은 사이즈보다는 어떻게 분포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가 공원이 없는 게 아니에요. 서울 같은 경우 녹지 비율이 30% 후반대입니다. 맨하탄과 비슷한 수준인데요, 문제는 우리나라의 공원은 사이즈는 크지만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것입니다. 보통 자동차나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합니다.
1만평짜리 공원을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는 1천평짜리 공원을 10개를 만드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그래서 도보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공원을 만들어야 되는 거고요. 도서관도 책 100만권이 있는 도서관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1만권이 있는 도서관을 100개를 만드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이겠죠.
더 나아가 공원의 모양도 생각해볼 때가 됐어요. 공원을 만들면 제일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공원변에 접해서 사는 사람들이거든요. 이때 정방형에 가까운 공원을 만드느냐 아니면 선형의 공원을 만드느냐, 우리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100제곱미터 면적의 공원을 만들면 정방형의 경우 가로 10m 세로 10m에서 총 40m의 변을 가지게 됩니다. 만약에 이 면적을 가로 1 세로 10의 비율로 늘리면 변의 길이가 약 1.7배 증가한 70m가 되고요, 1 대 100으로 더 강하게 늘리면 변의 길이가 5배 증가한 200m로 늘어납니다. 더 늘릴수록 변의 길이가 늘어나는 거죠.
용산공원 면적이 90만평인데요, 주변 둘레 길이가 12km입니다. 여기서 같은 90만평을 경의선 숲길 같은 폭이 16m의 공원으로 길게 늘리면 변의 길이가 360km로 늘어납니다. 30배가 늘어나서 30배나 더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거죠.
그렇다고 용산공원을 그렇게 만들자는 얘기는 아니에요. 옆에 계신 최재천 교수님이 반대하실 거고 저도 반대합니다. 기존의 공원은 생태공원으로서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두는 거고 향후 다른 공원들은 가급적이면 선형으로 만들면 효과가 좋다는 말입니다.
연남동-공덕동, 경의선 숲길로 연결된 공동체
경의선 숲길 같은 공원들은 또 다른 특징이 하나 있어요. 다른 지역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경의선 숲길 공원이 생기기 전에는 홍대 앞의 연남동과 마포구 공덕동은 완전히 다른 동네였거든요. 공원이 만들어진 이후 공덕동 사람들은 마포구 연남동으로 가고, 연남동 사람들은 공덕동으로 산책을 갑니다. 서로 오가면서 같은 공간을 나누는 공동체가 되는 거죠.
도시 안에 선형의 공원이 많이 만들어질수록 지역 간의 격차는 줄어들고 공통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길 수 있죠. 그런데 문제는 땅이 없어요. 땅을 확보하는 그나마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도로를 비우는 것입니다.
어떻게 도로를 비울 수 있을까요? 사람의 이동을 억제할 수는 없으니까 물류를 밑으로 내려 보내는 방법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차량 물류가 차지하는 게 전체 도로 약 3분의1 정도인데 트럭을 내려 보내 트럭이 다니는 터널을 뚫으려면 돈이 많이 들겠죠. 대신 자율주행 로봇 같은 작은 로봇들만 다니는 터널을 지하에다 하수도를 뚫듯이 만들어 놓으면 물류를 분산시킬 수 있어요.
서울 4차선 도로의 밑에 사진과 같이 물류 터널을 뚫으면 지상의 차량이 줄어들고, 또 그곳에 선형의 공원을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이게 왜 중요할까요? 이렇게 새로운 공간이 계층 간을 이동하는 사다리가 되기 때문이에요.
역사를 보면 과거 유럽 사회가 계층 사이로 힘들었던 시절에 아일랜드나 이탈리아 같은 사람들이 다 미국땅으로 넘어갔어요. 그곳에서 깃발만 꽂으면 자기 땅을 가질 수 있었죠. 기회의 땅을 공짜로 얻은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고 미국을 세웠습니다. 미국 동부에서 부를 축적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기차길이 뚫리니 서부로 향했고, 그곳에서 실리콘 밸리를 만들어 돈을 벌었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예요. 과거 지방에서 자기 땅 없이 농사를 지으시던 분들이 서울이라고 하는 새로운 도시가 생겼을 때 서울로 와서 돈을 벌었죠. 누가 돈을 벌었느냐. 도시에서 도시민들이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 예를 들어서 아파트라든지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들이 돈을 벌었죠. 그래서 정주영씨가 돈을 제일 많이 벌었고, 전자제품 만들었던 LG나 삼성도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1970년대 그랬던 재벌기업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장악을 했을 때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이 발생했어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말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가상 공간이라는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면서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컴퓨터도 잘 없던 시절에 광케이블을 깔고 가상 공간을 만들었더니 그 곳에서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새로운 신흥 부호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거죠. 우리는 끊임없이 공간의 혁명을 이뤄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짧은 역사를 보면 1970년대 대표적인 공간의 개혁은 아파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땅은 극소수의 지주들만 소유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빈 허공에다가 철근 콘크리트와 엘리베이터로 아파트를 지었더니 갑자기 부동산 자산이 생긴 거죠.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부동산 자산이 뻥튀기 되면서 아파트를 사는 중산층 사람들은 누구나 다 지주가 되는 그런 세상이 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1990년대에는 가상 공간이 그런 역할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벤처기업으로 향했고, 청년들 중 자산이 없던 사람도 가상 공간이라고 하는 일종의 부동산 자산을 공짜로 갖게 된 거죠. 그 자산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할 기회를 얻었고요.
그래서 2020년대 지금의 우리는 ‘어떠한 공간적 혁명을 하고 있는가’ 한번 생각해봐야 되는 겁니다. 사실 1990년대 ‘인터넷 혁명’ ‘가상 공간 혁명’ 이후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그런 혁명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중화, 공간과 에너지 활용의 효율성 이끌다
원래 이런 기술들은 발달할수록 눈에 보이지 않는 데로 숨습니다. 전선도 지중화 됐고요, 상하수도 지하철도 다 지중화 됐어요. 인프라 시설들을 지하로 옮기는 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지중화는 에너지 효율적으로도 좋습니다. 우리가 피자 한 판을 오토바이로 배달시켜 먹으면 오토바이 운전자와 오토바이 무게까지 해서 161kg을 운반해야 합니다. 반면 지하의 물류터널을 다니는 자율주행 로봇은 불과 11kg만 운반하면 되죠.
혹자는 ‘드론을 쓰면 어떻겠냐’는 많이 합니다. 그러나 드론은 수평 이동할 때도 에너지를 쓰고, 떠 있는 내내 중력을 거스르기 위해서도 에너지를 써야 하거든요. 에너지 효율성으로 봤을 때 드론은 아주 안 좋은 케이스예요. 1kg짜리 물건을 하나 띄우려 해도 무겁기 때문에 모터가 커져야 되고, 모터가 커지면 배터리가 커져야 되죠. 베터리가 무거워지면 또 모터도 비례해 커지는 악순환이 생겨요. 드론은 에너지뿐만 아니라 소음의 문제도 유발해요. 그래서 도심 속에서는 쓰기 힘든 시스템입니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것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 공간으로 넣고 지상의 16차선 도로를 절반 정도 줄여서 선형의 공원을 만든다고 가정하면, 그런 사회는 사람들이 더 많이 소통하고 더 많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사회가 될 거예요. 더 많은 공동체들이 자생적으로 만들지는 사회가 지속가능한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공간의 디자인을 바꾸면 사회를 바꿀 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두 가지 방법이 있죠. 하나는 소프트웨어적인 방법, 다른 하나는 하드웨어적인 방법. 소프트웨어적인 방법들은 세금과 행정 정책들이며, 하드웨어적인 방법은 공간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는 많이 힘들지만 공간을 바꿔서, 즉 하드웨어를 통해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조금씩 바꾼다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유현준 스페이스컨설팅그룹 대표 건축가이자 홍익대 건축대학 건축학 전공 교수. 국내외 30여차례의 건축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으로도 실적을 인정받았다. 대표저서 ‘공간이 만든 공간’이 있으며, 홍익대 교양수업 ‘현대건축의 흐름’은 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얻어 책으로도 출판됐다. ‘알쓸신잡’ 등을 통해 건축을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내 대중에게도 친숙하다. 현재 유튜브 ‘셜록현준’ 채널을 통해 공간으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