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문제해결 ‘2제’···’교육 통한 정보격차 해소’·’중증장애인 재택근무로 고용확대’
[아시아엔=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정보통신 영역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에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라는 말이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격차가 커진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기술 발전이 많은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할 수도 있지만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특별한 기능들이 없다면 오히려 사회적 역차별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이런 일들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요즘 어디를 가나 키오스크가 있는데 장애인뿐 아니라 이런 것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사용이 매우 불편하다. 변화하는 기술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밥도 혼자 주문하기 힘들고 커피도 마시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는, 장애의 종류와 정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특별한 장치가 있어야 한다. 나는 16년 전 서울대 학생들을 이끌고 야외 지질조사를 나갔다가 운전하던 차량이 전복돼 목 아래가 완전히 마비된 중도 장애인이다. 다행히 사고 전 많은 교육을 받아 큰 불편 없이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선천적인 장애인들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내 경우,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 없지만 특별한 장치(보조공학기기) 덕분에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요즘 컴퓨터와 스마트폰만 제대로 쓸 수 있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진장 많다. 또 전동 휠체어가 있어 웬만한 곳도 혼자서 드나들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장애를 입게 된 것은 불행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현대 과학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다친 것이 그중 다행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의학적·사회적 재활 넘어 정신적·영적 재활 이르도록 함께 배려를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장애인의 경우 그 유형과 정도가 다양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는 만능 솔루션은 없다. 하지만 체계적인 교육과 기술을 통해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또 그것이 고소득의 직업으로 이어진다면, 흔히 장애인들이 겪는 고통인 경제적인 어려움, 사회 적응과 참여의 어려움, 가족 간의 갈등이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이 바로 직업으로 이어지는 교육이다.
사고 후 받는 여러 가지 치료와 교육을 재활이라고 한다. 나는 스스로 재활을 상당히 잘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덕분인지 사고 6개월 만에 강단으로 복귀해 강의를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가끔씩 장애인들에게 진정한 재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내 생각에는 재활을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는 것 같다. 첫 단계가 의료적인 재활이다. 의학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사망률은 낮아지고, 병원에서 치료만 받아야 했을 사람들이 밖에서도 활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같이 목뼈가 부러져 다친 환자들의 경우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요도염으로 대부분 3개월 안에 사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의료기술의 발전 덕분에 이런 사람들이 생존해서 사회에 존재하고, 이들을 위한 여러 가지 시설과 배려가 필요해지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사회적 재활이라고 하며 진정한 재활에 이르는 두 번째 단계라고 본다.
나는 세 번째 단계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의학적, 사회적 재활과 구분된다는 뜻에서 정신적인 또는 영적인 재활이라고 부르겠다. 그리고 이 3단계에 이르러야 진정한 재활이 이뤄졌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살면서 스스로 택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내가 태어날 때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기를 스스로 정할 수 없고 국적도 그러하다.
나는 농담으로 만약 내게 선택권이 있었으면 미국의 빌 게이츠 아들로 태어나기를 원했을 거라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것이 스스로 정하지 못해도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미련을 버리고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카드 게임을 하다가 들어온 패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꿀 수 없듯이 때로는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에게 해당된다.
장애인에게 ‘교육’과 ‘근무환경’이 뭣보다 중요
장애인이 되면 소홀해지기 쉬운 것이 교육이다. 많은 장애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장애 그 자체에만 신경을 쓰는데 그러다 보면 공부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나는 가끔 장애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이 이런 식으로 계속 발전하다 보면 웬만한 장애는 극복 가능해질 것이고, 만약 학생들이 미래에 차별을 받는다면 그것은 장애 자체가 아니고 어쩌면 장애인이라 교육에 소홀했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고소득 직장이 보장되면 많은 장애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의무 고용 비율이라는 것이 있어 기업과 기관에서 일정 비율의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게 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그래도 중증 장애인들은 소외될 수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서는 장애인을 고용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규격에 맞는 화장실 등을 고쳐야 한다. 기존 시설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또 장애인 입장에서는 설령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건강이 나빠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중증 장애인들의 고용은 매우 요원하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참여자가 적은 것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중증 장애인들의 고용을 늘리기 위해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새로운 ICT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왔다. 아무래도 장애인에게 가장 편한 곳은 본인 주거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재택근무를 접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행정 수도가 세종시로 이전되면서 많은 공무원들이 서울에 출장을 와서도 인터넷 보안 속에서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들이 여기저기 생겼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경험했다.
이러한 재택근무 시스템을 제대로만 갖춘다면 중증 장애인들도 수준 높은 일을 할 수 있고 경제적인 자립도 가능해질 수 있다. 장애인에게 일은 단순히 생계 수단을 넘어 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누구도 남의 도움만을 받고 살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처음에 내가 중증 장애인 재택근무를 통한 국가 데이터 사업을 이야기했을 때 많은 이들이 시큰둥했지만 이제는 너무 당연하고 당장 시행해야 할 사업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실력도 좋고 따뜻한 마음 가진 사람이 진짜 인재
정부는 인공지능을 운운하며 4차 산업을 떠든다. 인공지능은 기계를 학습시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와 사례를 입력하는 것이 관건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데이터들이 아날로그나 수기 방식으로 쌓여 있다. 이러한 자료를 제대로 디지털화해야 인공지능 자동화가 이뤄질 텐데 또 한편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호들갑을 떤다. 이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인 교육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장애인들을 교육하고 활용함으로써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정말 특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영어로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는데 그것은 영어 음성인식 기술 덕분이다. 최근 한글도 어느 정도 가능해졌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나는 글(자연어)뿐만 아니라 실제 컴퓨터로 복잡한 프로그래밍도 직접 해서 모두가 신기해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이 코딩 기술이 장애인을 위해서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외국 개발자들 중에는 너무나 손을 혹사해 나중에는 타이핑하는 것이 힘들어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자 이들 가운데 몇몇이 손이 아닌 음성으로 타이핑하는 방식을 개발했는데 내가 이것을 빌려다 쓰는 것이다.
지난 16년간 기술 발달을 보면서 느낀 것은 때로는 장애인을 위하는 마음에서 발전된 기술도 중요하지만 좋은 기술자들은 늘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나 기기를 만든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상은 단순히 실력이 좋은 사람이 아니고 실력도 좋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