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과학정책보다 ‘과학을 위한 정책’에 힘쓰기를

Science – The Endless Frontier

[아시아엔=이상묵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흔히 미국 과학기술 정책의 출발점을 1945년 버니바 부시(Vannevar Bush)가 당시 대통령이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에게 올린 ‘과학 ? 그 끝없는 프론티어 (Science – The Endless Frontier)’ 란 제목의 공개 서한으로 본다.

그는 오늘날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의 전신인 과학기술개발실(OSRD)의 수장으로서 레이다며 원자폭탄 같은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미국의 2차 대전 승리를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또한 그는 전후에 과학기술재단(NSF)을 창립하여 오늘날 미국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부시와 많은 사안들에서 대립했던 막강한 서버지니아 상원의원 할리 킬고어(Harley Kilgore)의 역할이다.

과학기술의 엄청난 힘을 본 위정자들은 과연 과학기술의 향배를 과학자들에게 맡기는 것이 옳은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부시는 국가의 과학정책을 만드는 일에 과학자들이 당연히 참여해야 한다고 했으나 킬고어는 그러기에는 과학이 너무나 중대하다고 하며 과학자가 아닌 관료와 정치인들이 주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킬고어의 입장에 동의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당장 눈앞에 있는 과학적인 문제를 잘 풀 수는 있지만 국가와 사회 전체를 내다보는 안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실제 과학을 하는 우리 당사자들보다 경제학이며 사회과학을 전공해온 국가 고위 정책 결정자들이 과학을 더 신봉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국가 GDP의 70% 이상이 과학기술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이들이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러한 믿음 덕분에 과학기술에 대한 정부 예산은 모든 정부에서 꾸준히 증가하였다.

이것을 액면 그대로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가끔 우리 과학자들이 과학 정책(Science Policy)과 과학을 위한 정책(Policy for Science)을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전자는 우리에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고 국가 전체의 경제 성장 그리고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면 후자는 우리 과학자들이 어떻게 더 좋은 과학적 연구를 하고 이를 본받아 미래의 후속 과학자 세대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과학을 탐구 그 자체와 발견의 즐거움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오늘도 나가서 국가 발전과 경제 성장에 한몫을 거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실을 나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과학정책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하였다. 하지만 이 세상에 끝없이 성장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둔화되고 S자 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고 모두들 외친다. 예전에 큰 반도체 회사 부사장을 만났다. 그는 일본만 쫓아가면 되던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자기네들 앞에 아무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안하다고 했다.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마침 올해가 UN이 정한 세계 기초과학의 해이다. 하지만 대학원을 들어오는 기초과학 분야 학생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언론과 사회에서도 앞으로 어떤 분야가 뜬다는 둥 새로운 유행어(buzzword)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데 어떤 응용분야도 기초과학에서 출발한다. 더욱이 최근에는 과학기술 부처 이외에 다양한 부처들에서도 나름대로 산하에 출연 연구기관들을 두고 자체적으로 과학기술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눈앞 성과에만 급급한 나머지 전체적인 기초과학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말로는 기초는 과학기술부가 하고 다른 부처들은 응용을 하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구분도 없고 주먹구구 식이다. 또한 이런 공무원들의 급한 마음을 잘 아는 사람들에 의해 투자가 한쪽에 편중되기도 하고 기본적 연구윤리도 무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서 국가경제를 어떻게 이끌어가겠다는 청사진도 좋다. 하지만 과학정책이 아닌 진짜 과학을 위한 정책도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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