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나라의 운세다”···임진왜란 ‘선조’·구한말 ‘고종’·미국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고종이 왕이 된 것은 사실상 대원군의 치세다. 수렴청정을 한 조대비에게서 왕을 인수받은 것도 열두살의 명복이 아니라 아버지인 흥선이었는데, 이는 조대비와 함께 한 안동 김씨에 대한 쿠데타였다.

외척 세도 60년을 끝내고 왕권을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은 10년만에 민비에 밀려 물러났다. 이도 대원군에 대한 쿠데타였다. 민비는 여흥 민씨 집안인데 여기서는 인목대비 등 많은 왕비를 배출했다. 민비는 고종을 제치고 국정에 나섰다.

일본은 미우라(三浦) 주한 공사를 시켜 민비를 시해한다. 을미사변乙未事變이다. 이에 민중이 강력히 반발한다. 일본에 대한 본격적 항거는 이때로부터 시작된다. 백범 김구가 길에서 만난 일본군을 죽인 때가 이때다. 1974년 일본에서 건너온 문세광이 육영수 여사를 저격한 것과 같다. 대원군과 민비는 드문 인걸이었다.

조선 운명이 좌우되는 결정적인 때에 이들이 대립하지 않고 협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고종은 한일합방(병탄)이 일어난 다음 일본이 주는 상여금으로 살았다. 순조는 이왕, 고종은 이태왕으로 불렸다. 그들을 처리하기 위한 사무처로 이왕직李王職이 있었다. 영친왕 이은(垠)은 일본군에서 중장까지 진급했으며 육군대학 교수부장을 거쳐 항공사령관까지 지냈다. 호칭도 군 계급인 ㅇㅇ중장이 아니라 영친왕 전하殿下로 불렸다.

고종은 임진왜란 당시의 선조와 같다. 선조가 의주에서 강을 건너 명明에 가려했으나 이항복李恒福이 “한발을 디디면 조선은 주상主上의 땅이 아니라”는 말에 멈췄다. 세자인 광해군은 함경도에서 분조分朝를 이끌고 있었다. 그러나 임란 후 선조는 광해군을 버리고 영창대군을 세자로 삼으려 한다.

광해군이 들어서자 영창을 죽인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인조반정이다. 광포狂暴, 무도無道한 연산군을 물러나게 한 중종반정과는 색깔이 달랐다.

선조는 우유부단優柔不斷했다. 임진왜란을 제압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순신을 투옥했다가 다시 부른 것을 보더라도 드러난다. 선조와 고종은 결정적인 시기에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선조에는 다행히 이순신이 있었다. 2백년 후 정조대왕이 선조의 후손인 것은 맞다. 이것만이 선조의 역할이다. 이래서 어머니가 중요하다. 고종 시대에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던가를 꼽아보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모두 나라의 운세다.

바이든이 의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트럼프를 탄핵하지 않으려 한다. 트럼프는 이취임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니 참석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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