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장 유감’···뭇백성 피맛골로 내쫓는 21세기 권세가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완장(腕章)은 팔에 감거나 붙이는 휘장(徽章)을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완장을 차면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다. 일종의 권력이 생기는 거로 여긴다. 팔에 감는 완장은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멀리서도 구별할 수 있다. 따라서 완장은 ‘권력, 권한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윤흥길 <완장>

오래 전에 읽은 윤홍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이 생각 난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권력을 둘러싼 인간 본성을 풍자와 해학으로 잘 그려냈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부르는 곳도 없어 백수건달로 사는 주인공은 어느 날 동네 저수지를 지켜달라는 청을 받는다.

폼도 나지 않고 보수도 마땅치 않은 일이지만 주인공은 딱히 할 일도 없는 처지였기에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처음에 저수지 지키는 일을 대충 하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저수지감독’이라는 완장을 차게 되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그의 권위를 인정하기 시작한다.

그는 거기서 권력의 맛을 느끼며 점점 안하무인이 되어간다. 별 볼 일 없던 그는 처음에 주눅이든 표정으로 저수지기 일을 했다. 하지만 완장은 신기하게도 사람들을 굴복시키고 권위를 높여주는 힘이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에 빠져 있다. 이러한 진영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확증편향, 이중잣대 등을 동원하여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야당 시절 무조건 결사반대했던 정책을 자기들이 여당이 되고 나서 추진하거나, 여당 시절 자기들이 추진해놓고 야당이 되자 결사반대하는 경우도 빈발한다.

자기들 입맛대로 행동하면 좋은 사람이라고 하고, 자기들의 입맛에 맞지 아니하면 적폐라고 치부해 난도질을 한다. 즉, 진영에 따라 같은 주장이라도 자기 진영의 것이라면 옳고 상대 진영의 것은 틀렸다는 이중잣대, 내로남불로 이어지기 다반사(茶飯事)다.

나라와 국민들을 위해서 귀한 일을 좀 해달라고 감투를 씌워주고 완장을 달아 주었더니 제 본분을 잊고 엉뚱한 일에 감투를 사용한다. 착한 국민들을 힘들고 괴롭게 만드니 우리는 언제까지 그런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나 한숨만 나온다.

종로 대로와 피맛골

우리말에 ‘거덜’이라는 말이 있다. 재물을 마구 써버리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 거덜 났네!” 그런데 원래 ‘거덜’은 조선시대에 말을 관리하던 관청인 사복시(司僕寺)의 하인을 가리킨다. 그 거덜이 귀인의 행차가 있을 때 그에 앞서가며 길을 틔우는 것이다. 즉, 임금이나 높은 사람을 모시고 갈 때 잡인의 통행을 통제하기 위하여 이렇게 외쳐대던 하인을 말한다.

“쉬~~물럿거라~ 물럿거라!! 대감마님 행차시오.” 지체 높은 지배자의 곁에서 “쉬~~ 물렀거라!” 하고 외치는 거덜은, 단지 권마성(勸馬聲)을 외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길거리에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다. 그 시대 고관들의 주요 통로였던 종로 길의 백성들은 이로 인해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피맛골

또 높은 관리들이 지나갈 때마다 고개를 굽히며 예를 갖춰야 했고, 행렬이 다 지나갈 때까지 계속 구부리고 있어야 했다. 이처럼 일일이 예를 갖추다 보면 도무지 제 갈 길을 제 시간에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예를 갖추지 않았다가는 현장에서 바로 거덜의 발길질에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피맛골’이다. 이른바 ‘힘없는 백성’, 즉 ‘아랫것’들은 아예 구불구불 하지만 지저분한 뒷골목으로 다니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했던 것이다. ‘피맛골’은 높은 사람의 말을 피한다(避馬)는 데서 온 말이다. 사실은 그 말 옆에 따르거나 앞장서서 거들먹거리는 거덜을 피하는 것이었다.

낮은 신분이지만 지체 높은 사람들을 직접 모시다 보니 우월감에 사로잡혀 몸을 몹시 흔들며 우쭐거렸다. 이 때문에 사람이 몸을 흔드는 것을 가리켜 ‘거들먹거린다’ 하고, 몹시 몸을 흔드는 말을 ‘거덜마’라고 불렀다. 또한 거덜들의 횡포가 심하여 그들에게 착취를 당했을 때 ‘거덜났다’는 말을 썼다.

기록에 남은 ‘거덜’은 관직상 명칭은 ‘견마배’(牽馬陪)로 종7품의 잡직(雜職)을 말한다. 그리고 ‘피맛골’은 지금 종로1가의 먹자골목이다.

완장을 차면 자신도 모르게 우쭐해지면서 남을 누르고 싶은 충동이 생기는 모양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바로 ‘완장의 폐해’다.

권력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겸비하여 늘 국민을 위해 섬기고 하늘에 구하는 마음 아닐까 싶다.

지금 완장을 둘러찬 높은 분들의 횡포가 도를 넘고 있다. 완장은 국민을 위해 차는 것이다. 세상 모든 완장 찬 분들은 완장의 위력을 잘 써야 한다. 완장은 잘 쓰면 복을 지을 수 있지만, 잘못 쓰면 자신의 몸이 베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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