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커피심포니⑥] 오페라 ‘루살카’에 비치는 스페셜티 커피의 향미
[아시아엔=이동형 CCA 커피로스터] 환한 달을 보면 두 손을 모으게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요즘 그 마음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사무친다. 달빛에서 비롯되는 영험한 기운이라는 게, 사실 달과 지구의 자전과 공전 사이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에너지의 변화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에 영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아슈다롯, 이슈타르, 마니, 루나, 찬드라, 하피 등 달빛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왔다. 우리가 달빛에서 리듬과 멜로디를 느낄 수 있는 덕분이다.
‘신세계 교향곡’으로 유명한 체코의 안토닌 드보르작은 달을 향해 우아하면서 간절함이 가득 배인 노래를 지었다. ‘달에게 바치는 노래’가 그것이다. 이 노래는 3막 오페라 ‘루살카(Rusalka)’의 1막에 나오는 소프라노 아리아이다.
“깊고 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당신은 온 세상을 비추어 주십니다./
당신은 이 넓은 세상을 다니면서 인생들의 삶을 굽어보시나이다./
달님이시여, 잠시만이라도 멈추어 나의 사랑이 어디에 있는지 말씀해 주소서./
은빛 달님이시여, 부디 그에게 내 두 팔이 그를 감싸고 있노라 전해주소서.”
이 오페라는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The Little Mermaid)’의 내용을 기반으로 야로슬라프 크바필(1868~1950)에 의해 먼저 대본으로 쓰여졌다. 그 시기 드보르작은 블타바(몰다우) 강가에 위치한 카페 슬라비아(Caf? Slavia)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884년 문을 연 이 카페는 카프카, 스메타나, ‘프라하의 봄’을 이끈 바츨라프 하벨 등 체코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모인 아지트였다.
크바필이 대본을 오페라로 완성시킬 작곡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 카페 단골이었던 드보르작에게도 들려왔다. 평소 그가 자주 앉았던 창가 자리에서는 블타바강과 건너편 프라하성이 자연스럽게 한 눈에 들어와 영감을 얻기에 딱 좋은 장소였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카페 엘리펀트에서 바라보았던 에딘버러 성처럼 말이다. 드로르작은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흔쾌히 작곡을 수락했다.
프라하 성은 체코의 왕들과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이 살았던 곳이다. 멀리서 그 성을 바라보던 드보르작은 왕자님을 바라보던 인어공주의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광경이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떠올랐을 것이다. 밤에는 창가에 앉은 그의 커피 잔에 뜬 보름달이 영험한 기운을 보태줬을 것이다. 노래에서 ‘깊고 높은 하늘’이란 대목의 멜로디는 은은한 달빛을 떠올리게 한다.
무한한 생명을 가진 루살카가 왕자님을 사랑한다는 내용은 흔한 동화처럼 가볍게 들리기도 하겠지만 인간을 사랑한 올림프스의 신들만큼 진지하다. 인간의 어떤 면모가 루살카로 하여금 ‘불멸의 생명’까지 포기하게 한 것일까? 커피애호가들이 그 흔한 커피를 생명처럼 여기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잔의 스페셜티 커피에서 느껴지는 향기와 입에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맛과 향은 분명 인간만이 느끼는 감각이요 감성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품에 안을 때 느껴지는 전율과 같은 행복감이 커피에도 있다.
재스민과 살구 그리고 벌꿀의 향이 가득한 게이샤 커피를 마셨던 누군가 “컵 안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고백한 장면이 오버랩 된다. 식을수록 마법처럼 깊게 단맛이 스며드는 스페셜티 커피는 드보르작의 달빛만큼이나 보드랍게 우리의 관능을 감싸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