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커피심포니③] ‘카페바움’ 폐업소식 듣고 생각난 이름들

카페 바움의 전경

[아시아엔=이동형 CCA 커피로스터] 라이프치히에 사는 친구가 얼마 전 한국을 다녀가면서 “‘카페 바움’(Coffe Baum)이 문을 닫았더라. 알고 있니?” 하는 것이다. 커피애호가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다. 그토록 가고 싶었던 카페···. 인터넷으로 관련 자료를 추적해보니 사실이다. 폐업 이유는 더욱 안타까웠다. 임대 연장을 더 이상 할 수 없어 2018년 12월까지만 운영되고 모든 영업이 종료된다는 내용으로 현지 언론 기사가 검색됐다.

기사대로 라면 문을 닫은 지 반년이 훌쩍 넘었다는 말인데, 허망했다. 커피로 살아가는 전문가임을 자부하고, 더욱이 성악을 전공했다며 라이프치히와 바흐를 종종 거론하던 당사자로서 민망한 마음마저 들었다.

1694년 ‘아라비아의 커피나무’라는 뜻을 담아 ‘카페 바움’으로 출발한 이 카페는 동독 치하에 한동안 휴업한 시기를 제외하고는 300여년 한결같이 세계의 커피 순례자들을 맞이해 왔다. 괴테, 바흐, 멘델스존, 리스트, 바그너, 슈만, 나폴레옹 등 걸출한 인물들이 사랑했던 카페가 이렇게 사라지는 것이란 말인가? 들여다보니 이런 딱한 사정이 있을 줄 몰랐다.

건물이 오래된 탓에 소방과 위생에 관한 시설을 새롭게 바꿔야 하는 문제가 있었지만,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하는 이유가 컸다. 최근 3, 4년간 훈련을 받으려는 견습생이 줄어들어 32명의 전문인력이 일해야 하는 카페에 12명 밖에 남지 않았다. 때문에 손님 받기를 매우 벅차했다.

슬픈 기색이 역력한 운영자 부부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카페의 단골이었던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던진 말이 떠올랐다.

“청춘이 지나간 뒤 사람들은 알게 된다. 청춘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아름다운 빛을.”

카페 바움은 라이프치히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바흐가 묻힌 토마스 교회(St. Thomas Church)가 있다. 토마스 교회에서 합창단의 공연을 감상한 뒤 맞은편 길로 나가 카페 바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음미하면서 음악과 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이 라이프치히 관광의 큰 즐거움이다.

에스프레소를 물감으로 사용해 그린 바흐의 초상 <유사랑 화백>

상상해 보시라. 괴테가 앉아 <파우스트>를 구상하고, 바흐와 멘델스존은 한 손에 커피를 다른 손으로는 악상을 떠올리며 허공을 지휘하고 있다. 뒤편에서는 구스타프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낭만주의 음악을 대신할 새로운 음악사조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카페 바움은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었다.

거장들의 발자취와 영혼을 느껴보고자 세계 곳곳에서 찾아 드는 사람들로 북적이여 누군가의 시샘도 받을 만했는데,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부부에게 인력 부족으로 인해 되레 스트레스를 주었던 모양이다.

라이프치히는 독일 작센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음악과 문학의 중심지이다. 1517년, 마틴 루터에 의해 종교개혁이 시작된 할레(Halle)와 인접해 있어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중심지로도 꼽힌다. 이곳에서 바흐가 27년간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있으면서 절정기를 불태웠다. 바흐는 왕성한 체력과 창작열, 그리고 깊은 신앙심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있으면서 신앙에 대한 열정을 잃어 후기에는 세속 음악 작곡에 치중했다. 대표적인 곡이 <푸가의 기법>,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다. 라이프치히 초기에는 <마태수난곡>(BWV244)과 같은 명곡을 남겼다.

바흐는 이 두 편의 세속 음악 작곡집으로 ‘음악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다. 물론 일본 사람들이 붙인 명칭이다. 마치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넘버원, 예멘 모카 마타리, 하와이안 코나 엑스트라 팬시 커피가 일본사람들의 마케팅에 의해 ‘세계 3대커피’가 된 것처럼……

그의 세속 곡 중에 널리 알려진 <커피 칸타타> 또한 라이프치히에서 작곡되었다. 이 곡도 카페 바움과 관련이 있다. 카페 바움의 인기로 인해 인근에 세워진 7개의 카페 중 하나인 ‘카페 짐머만’의 주인이 바흐에게 부탁해 자신의 카페를 홍보하기 위해 곡을 주문했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카페 짐머만은 1943년,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괴테 또한 이곳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토마스 교회 오른쪽, 옛 시청광장쪽으로 두 블럭만 가면 라이프치히대학교가 있다. 괴테는 아버지 성화 때문에 법학을 공부하고 있지만 그의 관심은 온통 문학에 쏠렸다. 아버지의 기대와 자신의 열망 사이에서 고뇌하던 괴테는 즐겨 찾던 아우어바흐 술집(Auerbachs Keller)에서 인류의 대작 <파우스트>를 구상했다. 토마스 교회와 라이프치히대학교 사이에 위치한 이 술집은 지하에 있는데 마치 지하 무덤으로 내려가는 느낌을 듯한 느낌을 준다. 지금도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서 파우스트의 등장인물 조각들이 무섭게(?) 손님들을 대한다. 낮에는 카페 바움에서, 밤에는 지하 선술집에서 <파우스트>에 매달렸다.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아름답도다. 너의 영혼은 내 것이 될 것이다”라는 괴테의 외침은 어쩌면 카페 비움을 향한 헌사였는지도 모르겠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