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커피심포니⑤] 커피, ‘악마의 음료’가 아닌 이유 ‘불협화음’서 찾다
[아시아엔=이동형 CCA 커피로스터] ‘화음(Chord)’이란 높이가 다른 둘 이상의 음들이 동시에 소리는 내는 현상을 말한다. 다른 음들이 잘 어울리면 ‘협화(consonance)’, 불안한 느낌을 주는 조합이 되면 ‘불협화(dissonance)’이다. 불협화가 아주 쓸모 없는 것은 아니다. 협화나 불협화의 화음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연결돼 ‘화성(Harmony)’을 구성한다.
음악을 만들 때 일반적으로 3, 4개의 음을 쌓아 화음을 만들고, 이러한 화음을 연속적으로 연결한다. 협화음만 사용하면 음악이 단조롭고, 불협화를 많이 쓰면 복잡하고 모호해지거나 심지어 듣기 싫은 소음이 될 수도 있다. 신비스러운 몽환적 인상 때문에 명상음악으로 자주 사용되는 ‘뉴에이지(New-age music)’ 스타일의 곡들이 협화와 불협화의 경계를 잘 이용한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하나 해보자. 지금 당신이 듣는 음악을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음악의 한복판인 1400년대로 가져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시기에는 뉴에이지뿐 아니라 강렬한 비트의 락(Rock), K-pop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불협화음, 예를 들어 ‘도’와 ‘파#’의 조합(증4도, Tritone)은 ‘악마의 음’이라고 해서 사용을 금지했다. 화성적으로 모호한 현대의 곡들은 중세 기준에선 모두 ‘악마의 음악’이다.
현대음악을 듣고 있는 당신은 단언컨대 이교도로 낙인 찍혀 돌아오는 타임머신을 탈 수 없게 것이다. 물론 영화처럼 운명적 사랑을 만나 극적으로 탈출하는 상상도 해볼 수는 있겠다.
완벽한 하나님(God)에게 ‘불안함’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종교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불안한 화성을 연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제한은 당시 종교 음악가들에게 상당한 불편을 주었을 것이다. 음악가들은 고전음악시대를 지나 낭만시대에 접어들면서 화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현대에 와서는 증4도는 극적인 표현을 위한 중요한 음악적 언어가 됐다.
커피 역사에서도 악마라는 딱지가 붙어있던 때가 있었다. 16세기말 아름아름 커피가 소개됐을 때, 유럽은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슬람인들로부터 되찾아야 한다는 다짐을 수세기 동안 벼르고 있던 상태다. 그들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무슬림 악마에게서 예루살렘을 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반대로 이슬람인들은 유럽 기독교인들을 ‘하얀 악마’라고 불렀다. 이런 상황에서 이슬람국가에서 전해진 커피에는 ‘악마의 음료’ 라는 딱지가 붙었다.
하지만 이는 교회의 일부 시각일 뿐 유럽 사람들은 문화, 예술 전반에 걸쳐 옛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 중심 사상을 되살리고 있었다. 이러한 르네상스의 정신 앞에서 커피는 더 이상 신(God)도 막을 수 없는 음료였던 것이다. 커피의 각성효과가 개개인의 지성을 자극하면서 계몽은 유럽의 시대정신이 됐다. ‘악마의 음료이니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는 교회의 명령은 먹히지 않았다.
17세기 교황 클레멘스 8세가 커피에 세례를 주며 커피 음용을 허용할 상황이 됐을 때, 커피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퍼져 있었을지 모른다. 커피에 ‘악마의 음료’라는 딱지를 붙인 가톨릭의 수장으로서 민망함도 타개하고 권위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이 커피에 자유를 준 것처럼 꾸미고자 한 정치적 행위에 불과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요즘 커피 음료 중에는 칼로리가 높아 먹기를 주저할 수 밖에 없는 메뉴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렇게 해로움을 줄 위험성이 있는 메뉴에 ‘악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 중세적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주의해야 했다. 악마라는 용어가 ‘치명적 매력’으로 둔갑돼 소통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커피애호가들이 카페에는 없는 레시피를 만들어 ‘악마의 추천 음료’라고 소개하고 있다.
중세 사람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지금 시대에 온다면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악마’가 부정의 부정, 곧 강한 긍정의 뜻처럼 사용돼, 커피가 거부할 수 없는 음료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세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