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커피심포니④] 파리 살롱계 농락하며 뒤마와 베르디에 영향 끼친 여인 ‘마리 뒤플레시’
[아시아엔=이동형 CCA커피로스터] “모두 즐기자, 술과 노래를, 아름다운 밤과 쾌락을. 이 기쁨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리라.”
살롱에 모인 사람들 모두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 쾌락의 노래를 부른다. 이때 청년 알프레도가 일어나 살롱의 여주인을 바라보면서 외친다.
“사랑 속에 참 행복이 깃든다오. 따뜻한 입술로 마시는 이것은 사랑의 잔이오.” 순진한 알프레도가 ‘파리 사교계의 여왕’ 비올레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이다. 파티가 한창 무르익었을 때, 그것도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비올레타는 “환락은 나의 생명이라오”를 노래하며 공개 구애를 거절한다.
살롱의 향락문화에 젖어 살던 비올레타는 사실 순수한 청년에게서 사랑고백을 받는 것이 두려웠다. 더욱이 심각한 병까지 앓고 있기에, 스스로 사랑을 꿈꿀 수 없다고 자책했던 것이다.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La Traviata)’는 이렇게 진행된다.
베르디가 프랑스 극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동백꽃 여인>을 토대로 작곡한 작품이다. 우리에겐 일본식 표현인 ‘춘희(椿姬)’로 익숙하다.
뒤마는 파리의 살롱계를 농락했던 실존인물 ‘마리 뒤플레시’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을 썼다. 뒤마는 이 여인과 1년여 동거했다고 전해진다. 마리는 1847년 23세에 숨져 짧을 삶을 살았지만 살롱계의 전무후무한 인물로 회자된다.
그녀가 운영했던 살롱에서는 정치인, 작곡가, 작가, 귀족 등이 매일 그녀와 파티를 즐기려고 모여들었다. 마리는 마지막 숨을 쉬면서 “나는 언제나 다시 살아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라고 말했다. 유언은 실현됐다. 그녀와 함께 어울렸던 문학가와 예술가들이 각자 작품 속에서 그녀를 부활시킨 것이다.
뒤마는 <동백꽃 여인>을 통해, 3개월간 짧게 동거했던 리스트는 피아노 작품 ‘사랑의 꿈’에서 그녀를 환생시켰다. 베르디 역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 마리를 비올레타로 살려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에 등장시킨 소냐 역시 마리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마리는 실제 라트라비타의 비올레타처럼 폐렴으로 숨졌다. 그녀는 사망하기까지 매년 10만프랑 이상을 품위 유지비로 사용했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 <레 미제라블>을 보면 당시 1프랑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장발장이 12시간 막노동의 대가로 1.2프랑을 받은 것으로 묘사된다. 그는 월 20일, 1년 동안 일하면 288프랑을 벌게 된다. 마리가 1년동안 사용한 10만프랑은 장발장과 같은 노동자 348명이 1년간 꼬박 모아야 하는 액수다.
현재 우리나라 시급 기준으로 12시간 일을 하면 12만원 가량 받는다. 월 20일 일한다고 할 때, 연봉이 2880만원이다. 348명이면 100억원이다. 마리는 품위를 유지하는데 1년에 100억원을 사용한 셈이다.
살롱이 이토록 사치스럽던 이유를 프랑스 역사 속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마리가 살아간 1800년대의 프랑스는 왕정과 공화정이 엎치락뒤치락하던 혼란스런 시대였다. 이 때에 살롱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10만프랑을 사용했다는 것은 귀족들조차도 상상할 수 없는 큰 돈이다.
프랑스혁명 이후 귀족들이 대거 사라졌고 부유한 사람들도 몸을 사렸다. 지식인과 예술인들도 비싼 살롱보다는 카페를 더 찾았다.
보봐르, 쇼펜하우어, 바이런, 괴테, 니체, 모네, 쇼팽, 리스트, 바그너, 브람스 등 이 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카페에서 ‘향연’을 벌였다. 1600년대 랑부이에 부인에게서 시작된 살롱에서의 지식 향연은 1800년대에는 마침내 카페로 옮겨지게 된다.
카페인의 각성효과와 함께 지성인들의 주머니 사정이 적잖은 역할을 했다. 물론 살롱을 찾는 부자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식인이 떠난 살롱은 더 이상 매력적인 공간일 수 없었다. 지성인 없는 곳에서 사치는 향락과 퇴폐로 흐르기 마련이다.
지식을 향한 인간 본연의 욕구는 사람들을 카페로 모여들게 했다. 18세기, 19세기 프랑스의 카페들은 마리와 같은 사교계의 거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식은 더 이상 귀족들의 치장품에 머물지 않고 카페를 통해 대중 사이로 퍼져나갔다.
살롱이 향락을 떠오르게 하고, 카페가 계몽을 떠오르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