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커피심포니⑧] 2002월드컵 “대~한민국” 함성과 커피 향미의 ‘공진’
[아시아엔=이동형 CCA 커피로스터, 단국대 커피학과 석사과정] 코로나19로 인해 장기간 격리되면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사무치도록 그립다. 2002년 6월 월드컵 당시 온 국민이 붉은 티셔츠를 맞춰 입고 경기장으로, 광장으로, 카페로 모여 어깨동무를 하고 한 목소리로 응원한 것이 소중한 경험이었음을 새삼 깨닫고 있다.
그때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우리의 경기력으론 남의 잔치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깨고 4강에 올라갔고, 전국의 광장이 인파로 일렁였다. 세계 언론은 붉은 물결(Red Wave)을 톱기사로 다루며, 응원 자체를 즐기는 대한민국의 품격 있는 문화를 높이 평가했다.
당시 현장을 경험했다면 그 때 엄청난 에너지를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을 것이다. 스포츠가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은 흥미진진한 경기 자체뿐 아니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을 찾는 지인들에게 이유를 물으면 공통적으로 ‘더불어 응원할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라고 말한다. 사람이 모일수록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함께 할수록 커지는 그 ‘맛’이란 무엇일까? 바로 공명, 다른 말로 공진(共振, Resonance)현상이다. 각자의 목소리는 진동을 유발하는 ‘고유주파수’를 갖고 있다. 같거나 비슷한 주파수가 만나게 되면 더 크게 진동하는데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이 함께 호흡하고 응원하는 가운데 비슷한 진동수들이 만나 커지면서 경기장을 들썩이게 만든다. 아무리 작은 진동이라도 같은 주파수를 만나게 되면 몇배나 더 큰 에너지를 생성한다.
1940년 11월 7일 미국 워싱턴주 타코마해협의 현수교가 무너졌다. 설계와 시공을 담당했던 회사 모두 시속 200k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시속 70km에 불과한 바람에 1km에 가까운 길고 거대한 철골 구조물은 엿가락처럼 휘어지면서 주저앉았다.
공명 바로 ‘진동수의 일치’로 인해 붕괴된 것으로 조사됐다. 다리의 고유진동수와 바람의 진동수가 같아 진동에너지가 엄청나게 증폭했던 것이다. 이 후 공진 현상의 원리와 에너지를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다.
2002년 광장에서 우리가 느낀 그 기운은 실로 말할 수 없이 큰 진동에너지였다. 목 높아 응원가를 불렀던 사람들 용광로와 같은 에너지 속에 있었고 무한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커피에도 놀라운 에너지가 있다. 커피의 복합적인 맛과 향들을 느끼는 순간 이 에너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코로 들어오는 향(Aroma)에서 달달하고 고소한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이어 살며시 입술을 통과해 혀에 커피가 얹혀지는 순간 새콤하면서 단맛이 감지되면서 첫 사랑의 추억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커피가 달다고 갸우뚱하는 분들도 있겠다. 이제껏 우리가 마셔왔던 커피는 쓰고 떨떠름했을지 모르나 마셨을 때 쓴맛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면 단맛이 있다는 얘기다. 단맛이 없는 쓴맛이라면 다시 그 잔에 손이 가지 않게 만들 것이다.
커피를 입에서 목으로 사르르 넘기면 연구개(軟口蓋) 뒤쪽으로 숨 쉴 때마다 고소한 향, 심지어 꽃향기가 피어난다. 목 저편으로 넘어간 커피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입에 남아서 침을 고이게 하고, 은은한 향을 남겨 여운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커피의 향과 맛의 물결은 코에서 입으로, 입에서 다시 코로 양상이 바뀌면서 서로 어우러져 잔잔한 하모니를 만든다. 미세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이 떨리는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역사적으로 많은 사상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민중들이 커피를 마셔왔다.
커피에서 이 에너지를 받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나누면서 생각의 에너지로 바꾸었다. 같은 향미 음료인 와인은 생각을 잠잠하게 만들어 주지만, 커피는 생각을 더 증폭시켜 준다. 와인이 ‘상쇄의 음료’라면 커피는 ‘증폭의 음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