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형의 커피심포니⑨] 르네상스시대 ‘커피’와 ‘와인’
[아시아엔=이동형 CCA 커피로스터, 하기리컬처 대표] 우리는 지금 새 시대를 열기 위해 ‘이질적인 분야’를 합쳐 새로운 길을 찾고자 애쓰고 있다. 이것을 융합(融合)이라고 하고, 4차산업의 핵심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지금 처음 시도하는 일이 아니다. 14세기 새로움을 추구하고 실행했던 이탈리아 상인들이 있었다. 중세 암흑시대의 고리를 끊고 근대로 나아갈 동력을 마련한 르네상스(Renaissance). 주역은 피렌체 메디치(Medici) 가문이었다.
400여년에 걸친 십자군전쟁 이후, 중세사회를 지배해 오던 교회의 권위는 흔들렸다. 상공업과 무역업이 활발하여 도시가 발달하고 서민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인간다운 문화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메디치가문은 한걸음 더 나아가 서양철학의 근간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상의 한계와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1493년 이탈리아 페라라에서 개최 예정이던 공의회가 전염병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메디치가문은 모든 비용을 들여 피렌체로 공의회를 유치했다.
행사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동방교회 지도자들은 극진한 대접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플라톤의 서적을 포함한 수많은 고대 그리스 자료들을 메디치가문에 선물로 줬다. 메디치가문은 수많은 학자, 예술가를 모아 플라톤아카데미를 설립하고 그리스 인문학과 예술에 대한 연구와 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19세기 영국 작가 월터 페이터(Walter Pater)는 ‘페리클레스 시절의 아테네와 함께 인류사에 유례가 없다’고 할 정도로 피렌체의 노력에 찬사를 보냈다.
르네상스의 본질은 ‘이질적인 분야들의 융합’으로 볼 수도 있겠다. 전문 경영인 프란스 요한슨(Frans Johansson)은 다양한 생각과 이질적인 것이 만나서 새로움이 탄생하는 현상을 ‘메디치효과(Medici Effect)’라고 불렀다.
영원한 것은 없듯이 1492년 로렌초 데 메디치의 사망과 이어진 프랑스 침공으로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 때 ‘레반트의 여왕’이라 불리며 지중해 무역을 독점했던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양식의 ‘베네치아 르네상스’가 시작됐다.
당시 베네치아는 막강한 해상무역을 기반으로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되었기 때문에 피렌체와 로마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서 특유한 문화가 형성됐다. 피렌체와 로마를 중심으로 발달하였던 르네상스문화에 또다른 이질적인 문화의 향(香)이 덧입혀졌기 때문이다.
당시 베네치아는 밑그림이나 기초 도안을 그리지 않고 바로 색을 칠하는 ‘알라 프리마 (Alla Prima)’라는 독특한 기법이 성행했다. 빛과 어둠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카라바조 역시 밀라노에서 로마로 들어가기 전에 베네치아에서 이 기법을 배웠다. 음악에서도 베네치아는 독특했다.
유럽 최초의 대중 오페라극장인 산 카시아노(San Cassiano) 극장이 1537년 개관했다. 당시 문화가 귀족 중심이라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파격’ 그 자체였다. 산 마르코 성당의 악장이었던 몬테베르디는 이 극장을 위해 많은 가극을 작곡했는데 1639년 베네치아축제 기간에 올린 <율리시스의 귀환>과 1642년 <오르페오>가 대표작이다.
몬테베르디는 르네상스음악과 바로크음악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면서 역사상 ‘제대로 된’ 오페라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그 덕분에 ‘오페라의 아버지’라는 칭호가 따랐다.
르네상스시대에 기악곡이 발달했는데,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악보가 저렴하게 보급돼 서민들도 음악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게 되면서 베네치아음악은 유럽음악의 중심이 됐다. 사족을 달자면, ‘세속음악의 발달’이라는 교회의 평가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서민음악의 부흥’이었다.
베네치아 사람들을 통해 커피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새로움을 추구한 그들에 의해 커피가 전해진 덕분에 파급효과가 배가 됐다. 의사 알피니에 의해 베네치아에 소개된 커피는 교황 클레멘스 8세의 세례를 통해 이슬람이 즐기는 악마의 음료에서 그리스도인을 위한 축복으로 바뀌었다.
클레멘스 8세의 재임기간이 1592년~1605년인 점을 감안한다면 1592년 베네치아에 소개된 커피가 빠르게 교황을 통해 음료로 공인 받기에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도전정신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후 1645년 베네치아에 이탈리아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다는 전언이다. 기록상으로는 1683년 ‘카페 플로리안’이 베네치아 최초의 커피하우스이지만.
모여 앉아 토론하기를 좋아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와인은 좋은 음료이기 했지만 항상 끝이 좋지 않았다. 알코올 성분으로 인한 취기와, 술기운 때문에 긴 시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기는 불가능 했다.
커피는 달랐다. 마실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또렷해졌다. 동방에서 온 정신을 맑게 해주는 이 음료는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했던 ‘이질적인’ 음료이기도 하거니와 인간다운 문화를 갈망하는 시민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에 제격이었다. 커피야말로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을 품은 음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