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 당신은 시지프스인가 프로메테우스인가?”

[아시아엔=황효진 공인회계사, 전 인천도시공사 사장] 새해 벽두, 대학 동문들과 10박 12일로 멕시코와 쿠바를 다녀왔다. 1959년 쿠바혁명의 결정적 승리를 마련한 전투가 있던 산타 클라라도 방문했다. 그곳에서 30년 만에 발굴된 체 게바라의 유해 앞에 묵념하고 나와서 보니 벌판에 우뚝 서 있는 그의 동상이 보였다. 생각이 없을 수 없었다. 그 단상을 올린다.

체 게바라

쿠바, 역사상 두 번의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500여년 전 예수회 사제들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손에 들고 백지(tabula rasa)같은 하얀 마음을 간직한 카리브 인디오들과 사도행전적 예수공동체를 꿈꾸었다.

그러나 탐욕에 물든 식민주의자들의 카니발(식인) 행각에 인디오들은 천국의 복음을 제대로 들을 겨를도 없이 아마겟돈 화염 속으로 처참하게 던져졌다.

초대 예수공동체를 꿈꾼 쿠바, 인디오의 하얀 마음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하얀 설탕을 짜내는 검은 노예의 시름으로 가득한 디스토피아가 되었다.

60여년 전 오합지졸 로빈훗들이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손에 들고 새로운 인간(new man)들로 가득한 유토피아를 또다시 꿈꾸었다.

그러나 역사가 사면한 무모한 운동의 열정은 지구적 냉전의 한파에 곧바로 얼어붙고 도덕적 자극은 좀처럼 작동하지 않았다. 광장을 뜨겁게 달구던 revolucion(혁명)은 삽시간에 박물관에 처박히고 탐욕에 눈먼 robolucion(도둑질)이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새로운 인간을 꿈꾼 쿠바,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물질적 자극에 굶주린 옛사람들로 가득한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되었다.

산산조각 난 유토피아의 꿈, 그 꿈 조각들이 도처에 마리아 성상(聖像)과 마르티 동상(銅像)을 빚어냈다. 하얀 마음과 새로운 인간들은 도대체 어디로 떠났는가?

30년 만에 산타 클라라에 재가 되어 돌아온 체에게 묻는다.

“성실한 인간(hombre sincero)을 뛰어넘는 새로운 인간(hombre nuevo)을 보았느냐? 영원한 승리(la victoria siempre)는 맛 보았는가?”

체,
그 무너질 꿈(mission impossible)을 헛되이 전하여 허허벌판에 돌인간으로 곧추 서서 영원히 총 들고 서는 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체,
그대는 시지프스인가? 프로메테우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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