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 독서칼럼] 김광석 ‘서른 즈음에’와 손원평 ‘서른의 반격’
[아시아엔=석혜탁 <아시아엔> 기획위원] 손원평의 소설 <서른의 반격>을 손에 쥐게 됐다. 소설가이기 전에 영화감독이었던 그녀. <아몬드>에 이어 이번엔 어떤 영화 같은 소설을 보여줄까? 독자이자 관객의 시선으로 <서른의 반격> 입장권을 끊는다.
#. ‘일반명사’들의 유쾌한 공적 분노
언론학자 강준만 교수는 “사람들은 왜 분노를 잃었을까? 이 의문이 나를 분노케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분노는 개인적인 차원의 사적 분노가 아닌 ‘공적(公的) 분노’, ‘사회적 분노’를 의미한다. 그는 사람들이 분노해야 마땅한 일에도 되레 이를 문제시하는 사람을 별나게 바라보는 배경으로 네 가지를 뽑았다. 원죄의식, 공범의식, 냉소주의, 보신주의다.
심원평의 소설 <서른의 반격>에는 공적 분노의 가치를 잊지 않고 있는 씩씩한 인물들이 나온다. 이들의 ‘반격’이 때로는 약간 어설프고 허술하기도 하지만, 각자 처한 현 상황이 여러모로 녹록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그 진정성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듯하다.
나이 서른이 되었으나 대기업 부설 아카데미의 인턴사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지혜, 연일 대의를 위한 가치의 전복을 주장하지만 정작 아버지에게는 ‘허송세월’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지혜의 동갑내기 인턴사원 규옥, 아직 빛 보지 못한 것도 모자라 거대자본에 창작물을 도난당한 작가 무인, 권력을 갖게 된 유명인에게 레시피를 뺏긴 ‘딸 바보’ 남은 아저씨. 이들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일반명사에 가깝고, 굵은 대문자보다는 가느다란 소문자가 더 어울리는 존재들이다.
이 ‘일반명사’들은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을 수 있다는 공통된 믿음으로 굳건한 연대를 시도한다. 주인공이 아닌 관객, 예술가가 아니라 대중의 위치에 있었던 이들의 놀라운 변화요, 불굴의 도전이다. 시민을 정치적 포토제닉의 피사체로 보고 ‘민심 탐방’이라는 허울로 동네 시장에 온 국회의원 한영철에게 계란을 던지고, 자본의 힘으로 문화 영역에서까지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대형영화사의 시사회 현장에서 사자후를 토하며 몸을 던지기도 한다.
이들의 투쟁대상은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강자이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것을 모를 정도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나이가 다들 아닌데도, 이들은 의연하게 분전한다. 물론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이들은 중간중간 적잖은 갈등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만둘까 고민하며 끝없이 흔들리고, 자신들이 벌이려는 ‘거사’의 의미에 대해서도 조금씩 다른 결의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 살 수는 없다는 지상명제가 이들의 저항에 힘을 불어준다. 아울러 그동안 ‘늘 소리치고 있는데도 없는 사람’이었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상황을 뒤엎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그게 당연한 줄 알고, 그렇게 해도 되는 것처럼 대하는 살풍경한 세상에서 호흡하고 있기 때문이다.
#. 청춘을 위한 의자는 없다
규옥은 ‘의자의 마법’을 이야기한다. 멋들어지고 화려한 주인공의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마법에 빠지고, 그 외의 많고 많은 그저 그런 의자들 중 한곳에 앉으면 권위를 지녔다고 평가되는 맨앞의 의자 주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는 마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끄덕임’은 프랑스의 법률가 에티엔 드 라 보에티가 말했던 ‘자발적 복종’을 연상케 한다.
청춘을 위한 의자는 없다. 어쩌다 운이 좋아 의자를 찾았다 해도, 구석진 곳에 놓인 남루한 형상의 의자일 공산이 크다. ‘접이식 철제의자’와 ‘고풍스런 장식이 들어간 고급 앤티크 의자’의 대비가 적이 상징적이다. 그나마 청춘이 앉을 기회라도 엿볼 수 있는 의자는 물론 전자에 해당한다.
극심한 취업난 속 면접장 분위기를 떠올려보자. 소설에서도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을 하는 아카데미 인턴 자리 하나에도 적잖은 청춘들이 몰려온다. 경쟁률이 무려 84대 1이다. 83명을 떨어뜨려야 한다. 철제의자에 엉덩이라도 잠시 걸쳐두는 호사를 누리려면, 면접관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한다.
면접관과 면접자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면접장으로 활용되는 빈 강의실에는 의자가 몇 개 되지 않는다. 자연히 면접 분위기는 엄숙하고 권위주의적인 공기로 가득해 숨이 막힐 듯하다.
#. 거짓말을 해야 자존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지혜는 자기소개하는 시간을 정말 싫어한다. 딱히 유대관계를 맺고 있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이름, 나이, 직업을 털어놓아야 하는 불가해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업을 얘기할 때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누군가에게 자기소개는 자신의 초라함과 불편하게 마주하고, 본인의 불안정한 사회적 지위를 재증명하는 시간이다.
수영장에서 그녀는 서른이 된 백수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나이를 네살 깎고 모 기업에 막 입사했다고 둘러댄다. 물론 그 거짓말의 유효기간은 길지 못하다. 사물함에서 그녀의 책이 바닥에 떨어지게 되는데, 하필 그 책이 면접 지침서일 줄이야.
이런 지혜를 위무해주는 친구가 있으니 정진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 늘 다가와주는 정말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벗이다. 툭하면 그를 만나러 간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남자친구냐고 묻곤 한다. ‘정진’은 ‘정말 진짜’를 줄인 말이다. ‘정말 진짜’에 힘을 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정진은 역설적이게도 실체가 없는 유령 친구다.
지혜는 자꾸 거짓말쟁이가 되어 간다. 비단 지혜만의 이야기겠는가.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혹은 우리가 가진 것을 포장하기 위해 허언을 내뱉는다. 방법이 없다. 바닥 밑까지 뚫고 내려가고 있는 우리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임시방편이다. 거짓말은 청춘을 지탱해주는 최후의 보루가 됐다.
#. 서툰 앙가주망, 그리고 ‘같이’의 가치
이들의 반격은 속이 시원하고 통쾌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여타 액션영화의 화끈한 플롯과는 거리가 멀다. 외려 가슴이 갑갑하기도 하고, 허무하고 씁쓸한 감정에 부딪히기도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이들과 동지의식을 느꼈던 독자들로서는 다소 섭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의 경쾌한 반란 과정에서 ‘자발적 복종’이라는 피동적 삶의 방식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사회의식 함양과 주체성 회복으로 진화한다. 서툴고 투박한 앙가주망이 모여 사회를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공통의 믿음, ‘같이’의 가치, 우리 한명 한명이 무대 위에 올라가 주인공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엿보게 된다.
이것이 체 게바라 티셔츠를 입은 소설 속 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책을 덮었을 때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유인 듯하다. 영웅적 서사가 아님에도 작은 영웅들을 우리들 마음속에 소환해내는 데 성공한 손원평의 문학적 반격, 이것이 가져다주는 잔잔한 울림을 공유하고 싶은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