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선동·돈의동 ‘종로3가 방랑기’···“돌고도는 물레방아 인생!”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그곳엔 옛 향기 그대로”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서울 종로3가에서 보면 북쪽에 비원이 있다. 그 길 왼편 동네가 익선동이다.
1920년대. 초가집을 기와 올린 한옥으로 재개발했다. 규모는 10평 내지 30평. 서민가옥이다. 그 윗동네에는 대원군의 99칸 집이 남아있다.
1960, 70년대 기생관광시대 요정이 번성했다. 일본인들이 고객이었다. 80년대 강남시대가 열리면서 퇴조했다.
종사하던 여성들이 드나들던 미장원이나 한복집이 아직도 몇 있다. 예전 모습 그대로 눈에 띈다.
며칠 전 친구가 그곳에서 한정식 먹었다 한다. 자주 가던 그 송월(松月)이었다 한다. 아직도 영업한다니, 과거가 살아 있구나···.
기대 살던 쪽방
익선동 오른편으로 종묘가 있다. 돌담길 끼고 돈의동 쪽방촌이 형성돼 있다. 일본인 관광객이 문전성시를 이루던 시절 소위 기생과 그 기둥서방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팁이라는 봉사료가 벌이였다. 남정네는 거기에 기생했다. 그래도 엄마 병원비며, 동생 학비 댔다. 그런 세월이었다.
그래서인가 일대에는 점집이 아직도 많다. 희망을 점에서 엿보았었다. 그때 그 사람들은 어디론지 다 흩어졌다. 인생역전이나 일확천금은 이루었는지.
별반 달라지지 않은 삶을 그 이후에도 살았을 듯하다. 형편이 펴는 날은 거부되었을 터이다.
그곳 거주지는 1평이나 2평이다. 주민은 나가고 들어온다. 인생유전(人生流轉) 현장이다. 대저 사람 사는 곳은 사는 사람들의 거울이다. 속성이 그대로 나타난다. 고급스럽게 표현하면 문화다. 먹고 사는 모습 반영된다.
이제 그곳은 날품 파는 떠돌이들이 모여든다. 일 있어서 일당 받으면 하루 묵는다. 벌이 없으면 종로3가역 지하도로 간다.
사건이 발생했다. 50대 쪽방사람이 주인집 치와와를 훔쳤다. 죽인 뒤 털 태우려다가 불을 냈다. 소방차가 출동하는 바람에 들통 났다. 절도로 불구속됐다. 배가 고파서 멍멍탕 해먹으려 했다 한다. 치와와는 대략 키 18cm에 몸무게는 500g이다. 보신탕용 황구하고는 전혀 다르다. 애완견이다.
요리해 봐야 한 줌이나 될까 말까. 그걸 잡아먹으려 할 정도의 굶주림.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