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경NYPD 탄생④] ‘콜트권총’으로 떼돈 번 ‘콜트’는 살인범, 그러나…
[아시아엔=김중겸 치안발전포럼 이사장, 전 경찰청 수사국장] 살인사건 또 발생. cigar girl 살해 후 채 두달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1841년 9월 17일 인쇄업자 새뮤얼 애담스Samuel Adams는 책 인쇄비를 받으려고 아침 일찍 저자 존 콜드웰 콜트John Caldwell Colt 찾아갔다.
콜트 집 건너편에 사는 사람이 창가에서 담배 피우고 있었다. 젊은 신사가 콜트 집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했다.
싸우는 소리가 났다. 호기심 발동. 가까이 가서 들여다봤다. 두 사람이 돈을 더 내라, 못 내겠다 티격태격하고 있었다.
해질 무렵. 짐마차가 왔다. 콜트와 마부가 큰 나무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도와줄까 하다가 너무 참견하는 듯해 그만 뒀다.
애덤스 부인이 바로 움직이다
인쇄업자 애덤스의 부인은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평소 잘 아는 시장에게 부탁했다. “좀 찾아봐 달라” 했다. 신문광고도 냈다.
9월 18일, 콜트는 애덤스의 인쇄소에 나타났다. 종업원에게 “사장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다.
“아니, 어제 선생님 댁에 가셨는데, 못 만나셨나요? 거, 참, 이상하네요.”
찔끔했다. 황급히 되돌아나갔다. 뭐 들킬 일이야 없겠지. 만나지 못했다고 시치미 뚝 떼자, 다짐하며 집으로 향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집 앞에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시장과 경관constable, 애덤스 부인, 동네주민들이었다.
앞집 사람이 신문광고의 인상착의를 보고 연락했기 때문이었다. 콜트는 질문공세에 묵묵부답했다.
그때 다른 경관이 어제 나무상자 실어 갔던 짐마차 마부를 데려왔다. 마부는 부두에 있는 화물선에 적재했다고 했다. 모두 그곳으로 갔다.
1달러 3센트가 사람 죽여
선창에서 나무상자 꺼내왔다. 덮개 뜯어내니 소금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악취가 풍겼다. 부패가 진행중이었다.
조심스럽게 확인해 나갔다. 손에 낀 금반지와 다리의 상처흔적을 보니 애덤스였다.
내일 아침 9시 출항. 뉴올리언스의 허위주소로 배달될 참이었다. 그러면 완전범죄! 바로 그 직전에 체포됐다.
“왜 죽였어?” “인쇄비를 하나하나 확인했지요. 애덤스 계산으로는 1달러 35센트가 더 나왔어요. 다 달라는 거예요. 욱! 부화 치밀었지요.”
진술은 이어졌다. “마침 손도끼가 눈에 들어 왔어요. 내려쳤지요. 대여섯 번. 쓰러지더라고요. 죽었어요.”
집 수색을 하니 거실 바닥에서 핏자국 나왔다. 탁자 위에는 애덤스의 금으로 된 회중시계가 놓여 있었다.
돈으로 변호하고 돈으로 복역
콜트 권총으로 떼돈 번 사무엘 콜트. 그는 존 콜트의 동생이었다. 형 재판에 변호사를 세명이나 고용했다. 정신이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교도소생활은 호텔생활이나 다름없었다. 고급 침대와 집기 들여 놨다. 샤워시설도 만들었다.
단 한번도 교도소 밥 먹지 않았다. 동생이 돈 다 댔다. 교도관에게도 듬뿍듬뿍 쥐어줬다. 총장사 피장사로 번 돈 이럴 때 쓰자고 써댔다.
1842년 9월 28일. 사건발생 1년 후다. 교수형 판결났다.
1842년. 11월 14일. 교수형 집행일. 일찍 목사 주례로 교도소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끝나고 나서 형 집행시간 기다리던 중이었다. 갑자기 정전됐다. 세 시간 후 복구. 콜트는 감방에서 칼에 찔려 죽어 있었다. 자살?
과연 존 콜트는 자살했는가. 교도소에서 맞이한 부인과 함께 어디로 도망갔는가.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봤다는 소문 무성했다.
썩은 제도지만 새 제도도 두렵다
부잣집 콜트의 1달러 35센트 안 주려고 저지른 살인. 돈에 좌우되는 교도소생활, 감옥에서의 결혼과 자살을 위장한 탈주. 부패 백화점이었다.
게다가 어이없는 실종수사. 시장이 부탁받고 직접 나섰다. 그러면 연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묵살 당한다? 스스로 수사한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우리가 편안하게 다리 뻗고 자지 못한다. 뭔가 좀 정비된 경찰제도-수사제도가 있어야 한다.
살인범 잡지 못하고 잡은 살인범 도주케 한 뉴욕시 치안체제. 무능의 원인이 구시대 야경체제와 부패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시민들이 야경을 대체할 새로운 스타일의 경찰제도 즉 1829년 출범한 런던경찰청 제도의 도입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 제도가 무자비한 체포와 고문과 투옥의 도구가 된다면? 두려웠다. 반대 목소리 끈질겼다.
우리가 식민지 영국군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고통 받았는가. 벌써 잊었는가. 자유 박탈당했다. 인권 유린당했다.
프랑스와 독일과 러시아를 보라. 황제의 수족이 경찰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잡아다가 죽인다. 경찰조직은 탄압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