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주범 김기춘과 ‘홍길동전’ 허균의 ‘호민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나는 새도 떨어뜨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이 정권의 실세 왕실장 김기춘과 조윤선 문광부장관의 구속을 지켜보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여간 실감나는 것이 아니다. 그 수많은 선현들이 그리도 경책(警策)을 했건만,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이 여간 가엽게 느껴지는 게 아니다.
허균(許筠, 1569~1618)의 ‘호민론(豪民論)’이 있다. 허균은 선조에서 광해군대에 걸쳐 활약한 정치가이자 학자였다. 한국사에는 수많은 인물이 역사의 무대를 장식하며 명멸해갔지만 허균처럼 극적인 삶을 산 인물도 흔하지 않다.
허균의 ‘호민론’을 살펴보자.
천하에 두려워해야 할 바는 오직 백성일 뿐이다. 홍수·화재·호랑이·표범보다도 훨씬 더 백성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항상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려먹음은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대저 이루어진 것만을 함께 즐거워하느라 항상 눈앞의 일에 얽매이고, 그냥 따라서 법이나 지키면서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이란 항민(恒民)이다.
항민이란 두렵지 않다. 모질게 빼앗겨서 살이 벗겨지고 뼈골이 부숴지며 집안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바쳐서 한없는 요구에 제공하느라 시름하고 탄식하면서 그들의 윗사람을 탓하는 사람들이란 원민(怨民)이다. 원민도 결코 두렵지 않다. 자취를 푸줏간 속에 숨기고 몰래 딴 마음을 품고서 천지간(天地間)을 흘겨보다가 혹시 시대적인 변고라도 있다면 자기의 소원을 실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란 호민(豪民)이다. 대저 호민이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사람들이다.
호민(豪民)은 나라의 허술한 틈을 엿보고 일의 형세가 편승할 만한가를 노리다가, 팔을 휘두르며 밭두렁 위에서 한 차례 소리 지르면, 저들 원민이란 자들이 소리만 듣고도 모여들어 모의하지 않고도 함께 외쳐대기 마련이다. 저들 항민이란 자들도 역시 살아갈 길을 찾느라 호미?고무래?창 자루를 들고 따라와서 무도한 놈들을 쳐 죽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진(秦)나라의 멸망은 진승(陳勝)?오광(吳廣) 때문이었고, 한(漢)나라가 어지러워진 것도 역시 황건적(黃巾賊)이 원인이었다. 당(唐)나라가 쇠퇴하자 왕선지(王仙芝)와 황소(黃巢)가 틈을 타고 일어섰는데, 마침내 그것 때문에 백성과 나라가 멸망하고야 말았다.
이런 것은 모두 백성을 괴롭혀서 자기 배만 채우던 죄과이며, 호민들이 그러한 틈을 편승할 수 있어서였다. 대저 하늘이 사목(司牧 임금)을 세운 것은 양민(養民)하기 위함이고, 한 사람이 위에서 방자하게 눈을 부릅뜨고, 메워도 차지 않는 구렁 같은 욕심을 채우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저들 진한 이래의 화란은 당연한 결과이지 불행한 일이 아니었다.
허균은 ‘호민론’에서 “천하에 두려워 할 바는 백성뿐이다”라고 전제한 후에 백성을 호민과 원민, 항민으로 나누었다. 여기에서 항민은 ‘무식하고 천하며, 자신의 권리나 이익을 주장할 의식이 없는 백성’을 말한다. 그리고 원민은 ‘정치가로부터 피해를 입고 원망만 하지 스스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백성’으로 지금의 개념으로는 나약한 지식인을 뜻한다. 이와는 달리 호민은 ‘자신이 받는 부당한 대우와 사회 모순에 과감하게 대응하는 백성’을 뜻한다.
이렇게 시대의 사명을 인식하고 현실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이 호민이다. 호민의 주도로 원민과 항민들이 합세하여 무도한 무리들을 물리친다는 것이 호민론의 요지다. 그러니까 허균의 ‘호민론’은 “국왕은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백성의 위에 군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강조한다. 그리하여 백성의 위대한 힘을 자각시키고 있다.
1월 19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무수석 시절,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지시에 따라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블랙리스트를 전혀 본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하던 ‘법꾸라지’ 김 전 실장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조 장관의 자백으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총괄 지휘한 혐의가 더욱 짙어졌다.
특검 소환 당시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한다”며 조사실로 향한 조 장관은 자신이 관여한 것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이 모든 게 청와대 ‘왕실장’인 김 전 실장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따랐을 뿐이라며 ‘공모’ 의혹에 대해 선긋기에 나섰다.
그럼 왜 이 블랙리스트가 이런 엄청난 사태를 불러온 것일까? 이는 국가권력이 헌법상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위헌사항이기 때문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정부지원에서 배제한 블랙리스트사건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국민을 임의로 차별하는 위헌행위라는 점에서 충격과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관리하며 문화·예술 분야에 개입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표현·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인 중대범죄라고 특검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동아일보 1월 19일자 보도에 따르면 첫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이 2014년 5월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을 지시한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의 일이다. 정부의 부실대응에 대한 각계의 비판여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좌파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정부예산이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신동철(56)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주도해 80여명의 문화계 인사명단을 작성한 것이다. 이후 청와대와 문체부로 문서가 오가면서 리스트에 담긴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1만명에 육박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