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이든 태극기든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냉동고에서 꽁꽁 얼은 큰 감을 꺼내 이를 뜨거운 물로 씻어냈더니 먹기 좋게 껍질이 깨끗이 벗겨졌다. 순간 빙탄불상용(氷炭不相容)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각났다. 얼음과 숯(불)은 서로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서로 어긋나 맞지 않는 사이로 화합할 수 없는 사이를 비유한다.
얼음과 불은 정녕 화합할 수 없는 것일까? 분명히 내 눈앞에서 꽁꽁 얼은 감과 뜨거운 물이 화합해 환골탈태(換骨奪胎)되어 먹기 좋은 감으로 변모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앞두고 광화문 광장의 촛불과 대한문 앞의 태극기 물결이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 보듯이 으르렁거리고 있다.
그야말로 ‘빙탄불상용’의 형국이다. 이 빙탄불상용이라는 사자성어는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동방삭(東方朔)이 초(楚)나라의 우국 시인 굴원(屈原)을 추모하여 ‘칠간’(七諫)7수를 지은 것에 나온다. 그 중 ‘자비’(自悲)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얼음과 숯이 서로 같이할 수 없음이여/ 내 본디 목숨이 길지 못한 것을 알았노라/ 홀로 고생하다 죽어 낙이 없음이여/ 그대 연수(年數)를 다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노라(氷炭不可以相幷兮/ 吾固知乎命之不長/ 哀獨苦死之無樂兮/ 惜子年之未央
굴원은 초나라의 왕족으로 태어나 초나라 회왕(懷王) 때 좌도(보좌관)에 임명되어 내정과 외교에서 활약했다. 삼려대부(三閭大夫) 즉 소(昭)·굴(屈)·경(景)의 세 귀족 집안을 다스리던 벼슬에 올랐으나, 법령 입안 때 근상(?尙) 등 정적들의 중상모략으로 왕의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굴원은 초나라가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책(合綜策)을 주장했다. 그러나 회왕은 연횡책(連橫策)을 받아들여 제나라와 단교하고 진나라와 화친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진나라에 기만당했다.
그 후 진나라의 소왕(昭王)이 회왕에게 진나라 방문을 요청했다. 굴원은 이를 반대했지만 회왕은 막내아들 자란(子蘭)의 권유에 따라 진나라를 방문했다가 억류당해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하고 말았다.
큰아들 횡(橫)이 회왕의 뒤를 이어 경양왕(頃襄王)이 되고, 막내아들 자란은 영윤(令尹, 재상)으로 임명되었다. 굴원은 자란이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라고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장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굴원은 이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마침내 멱라(汨羅)에 몸을 던져 죽었다.
‘빙탄불상용’은 이처럼 굴원의 강직한 충성과 간신들의 아첨이 서로 용납될 수 없음을 비유하여 쓴 말이다. 지금 이 나라는 충신과 간신이 뒤엉켜 끝 모르는 정쟁을 일삼고, 끝내는 대통령까지 탄핵을 당하고 있다. 거기에 국민들은 ‘촛불’과 ‘태극기’로 나뉘어 불구대천의 원수를 보듯 하고 있는 미증유(未曾有)의 환난에 휩싸여 있다.
이 빙탄불상용의 사태를 꽁꽁 언 감과 뜨거운 물이 합해져 먹기 좋은 감으로 바뀌듯 우리나라도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 용납해 나라의 위기를 구하고 화합할 수 있는 방법도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다.
지난 13일, 여야 4당의 대표들이 모여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사건에 대해 인용이든 기각이든 어느 쪽으로 결정을 내리더라도 승복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주재한 회동에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제안에 다른 당 원내대표들이 모두 동의했다. 합의 형식은 구두였지만 회동 후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 등 모든 사람이 동의 사실을 확인했다.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승복이고 말고 할 것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 당연한 결정을 거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이 있다면 헌법 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 축출돼야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은 촛불 집회, 태극기 집회 현장에서 불복 선동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이 나오면 뒤집어엎겠다는 것이다.
주요 대선주자들마저 승복을 제대로 약속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식이면 헌재 결정 후 나라가 혼란과 격돌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주요 정당들이 모두 나서 승복을 약속한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여야 4당은 앞으로 의원총회 등의 결의를 거쳐 국민 앞에 공개선언까지 해야 한다. 이 과정 하나하나가 나라의 불행을 막는 방파제가 되고, 우리 민주 헌정 질서를 한 차원 높일 것이다. 대선 주자들도 지지층을 향해 적극적으로 승복을 호소하고 설득해야 혼란이 진정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빙탄불상용’이 아니고 ‘빙탄상용’(氷炭相容)의 상생상화(相生相和)의 진정한 리더십이다.
문제는 ‘촛불’과 ‘태극기’ 집회 세력이다. 두 집회는 시간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폭력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헌재 결정 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두 집회 주최측이 ‘승복합의’에 동참해 위험한 불확실성을 줄여주면 참으로 다행이겠다. 두 진영은 서로 생각이 다른 같은 국민이지 적(敵)이 아니다.
광장은 민의의 전달과 토론의 장이다. 이 본연의 역할을 넘어 양 집단이 사법적 판단까지 좌지우지하려 한다면 광장은 민주주의의 ‘꽃’이 아닌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이나 합하면 강하고, 나누이면 약해진다. 그리고 합하면 흥하고 나누이면 망하는 것이 하늘의 이치다. 이처럼 마음의 단결이 없이 어찌 완전하고 강력한 나라를 세울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이 나라를 어떻게 세운 나라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꽁꽁 언 감과 뜨거운 물이 합해지니 먹기 좋은 감으로 바뀌었다. ‘빙탄불상용’의 두 집단이 이제 헌재의 판단이 나오면 ‘인용’이든 ‘기각’이든 모두 승복하여 ‘빙탄상용’ 하는 나라로 발전시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