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 영장기각] 법치와 민심 사이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의 말은 중학생만 되면 아는 말이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구절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영어로 하면, “The art is long, life is short, opportunity is fleeing, experiment is uncertain, judgement is difficult”이다.
히포크라테스도 실험이 불분명하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어떤 판단이든 쉽지 않다. 특히 가치가 개재되는 도덕적 판단이나 사법적 판단은 어렵다.
박영수 특검이 청구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조의연 영장담당 판사가 기각했다. 최고의 법조인으로 구성된 특검이 법리 구성에서 지적받은 것은 뼈아픈 일격이다. 특검은 유감이라는 반웅을 보였으나 특검수사는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정치인들은 대체로 국민의 반재벌정서에 편승하여 비판적이다. 삼성의 재력 앞에 사법부가 굴복한 것으로 보는 비판이 많다. 그런 가운데서도 안희정 충남지사가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서 우리가 늘 존중하는 입장을 갖는 것이 법치의 엄격성과 법치의 정의를 위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조의연 판사는 법원 내에서 원칙주의자로 평판이 높다고 한다. 조 판사가 법원장에 물어보고 그 지침을 따랐을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법원은 동일체원칙에 따라 상사가 지시하는 조직이 아니며, 각자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한다. 조의연 판사가 좌고우면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박영수 특검에 어긋나는 판단에 도달하기까지 고심을 겪었을 것이다. 이만큼 사법부가 살아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정치인들은 이를 상찬했어야 했다.
사법부가 이만한 신뢰를 얻기까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1959년 자유당 정부 시절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사형당했다. 아무리 이승만 독재라고 하나 사법부가 정권 입맛에 맞추어 판결하는 것은 별로 없었다. 건국 초기 이승만 대통령,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은 3부 요인으로서는 동격이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의 기능이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김병로 대법원장이 조봉암에 대한 사형 판결에 간여했을 것으로 보지 않지만, 어쨌든 김병로가 사법부 수장일 때의 판결이었고 법원으로서는 아픈 흠결(欠缺)이었다. 2011년 대법원전원 합의체가 재심에서 당시 판결이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고 국민에 사과했다. 이처럼 사법부는 진보하고 있다. 조 판사도 이런 맥락에서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본다.
한국을 떠나는 영국 기자가 ‘민심과 법치’라는 칼럼을 내어놓았다. 한국의 현실을 정확히 보고 개선해야 될 점을 매섭게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 영국 기자는 民心을 people’s sentiment라고 번역했다. 많은 정치인이나 평론가들이 촛불민심을 국민의 뜻이라고 한다. 근대사회가 중세와 구분되는 것은 법의 지배(rule of law)다. 영국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이 살기 좋고 인정 많은 장점을 가진 나라이나, 아직 국가가 운영되는 기본 즉 법치가 정립되지 않은 나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法治보다 民心이 통하는 나라, 정확하고 뼈아픈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