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루키] 강성태 “모든 학생에게 멘토 만들어 주겠다”

<인터뷰> ‘공부의 신’ 강성태 공신 대표

강성태 공신 대표.

중고생들에게 무료 공부법 멘토링
“향후 10년간 교육장 100개 계획”

공신 강성태(30) 대표는 턱을 괸 채 느릿느릿 말했다. 강연 후 사인회까지 하고 온 터라 몸도 지쳐 보였다. 하지만 답변은 십점만점에 십점. 강연료, 우울했던 해병대시절 이야기, 회사 경영의 어려움 등 내밀한 이야기까지 꺼내어 들려줬다.

– 외부강연이 많겠다.
“강연 요청이 많기 한데, 참석자가 많거나 중요한 것만 한다. 회사 일을 해야 하니까.”

– 강연료는 얼마나 받나.
“정해져 있진 않다. 오늘 같은 경우는 100만원 수준. 큰 기업에서 초청하는 경우에는 그 이상을 받기도 한다. 500만원을 받은 적도 있다.”

– 공신닷컴 직원은 몇 명인가.
“6명이 상근으로 일한다.?그 외 300∼400명의 멘토가 있다.”

– 월급 챙겨주기도 쉽지 않겠다.
“아직까지 밀린 적은 없다. 2008년 사회적 기업으로 출발했는데 2010년 8월까지는 수익사업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직원도 적었지만, 외부 강연이나 강의를 통해 받은 돈으로 충당하곤 했다. 저소득층 학생 멘토링으로 시작한 일이라 돈을 번다는 게 좀 그랬다. 하지만 공신닷컴이 지속가능하려면 콘텐트 일부는 유료화가 필요했다.”

– 멘토링 외 무슨 일을 하나.
“인터넷 강의, 문제집 콘텐트 제공, 7개 교육장을 관리한다. 문제집의 경우 제작, 출판은 서울대 사회적기업 동아리 후배들에게 맡겼다. 가격을 시중 문제집의 절반인 6500원으로 해 반응이 좋았다. 바인더로 제작해 내지만 살 경우 더 저렴하게 구입이 가능하고, 자기만의 문제집으로 꾸밀 수 있다. 그런데 문제집의 경우 직접 보고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인터넷으로만 판매하는데 한계가 있었다. 출판사 사정이 좋지 않아 계속해서 나올지 모르겠다.”

– 의미있는 일인데 계속 나와야 하지 않을까.
“공신 회원 22만명 관리도 벅차다. 출판 노하우가 없기 때문에 직접 하기는 어렵다.”

–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이 오면 협력할 의향이 있는지.
“우리와 취지가 맞으면 생각할 수 있다.”

“중앙일보 교육 수익사업에 공신 이용”

-?‘공부의 신’ 상호를 도용하는 학원, 출판사가 꽤 있는 것 같다.
“사회적 기업을 컨설팅해주는 법률 회사에서 소송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많은 곳에서 무단으로 우리 상호를 사용한다. 심지어 중앙일보도 그렇다. 사회공헌사업으로 중앙일보와 일을 해왔지만 시작할 때 수익사업 부분은 이야기된 바 없었다. 지금 중앙일보에서 ‘공부의 신’을 사용해 수익사업을 하고 있다. 그걸 우리가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많다.”

– 공부의 신이 이만큼 알려진 데는 중앙일보의 역할도 있었을텐데.
“물론 그런 부분이 있다. 내부적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출처를 빼서 어떻게 된 거냐 물어봤는데 별 답변이 없다. 나보다 공신 멘토들의 실망이 더 크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공신닷컴 시작한 후 몸무게가 10kg 빠졌다.”

중앙일보는 현재 공부의 신 프로젝트란 명칭으로 독자적인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하는 일, 모양새는 공신과 유사하다.

– 회사 경영이 쉽지 않다.
“군에 있을 때 78kg이었는데 요즘 68∼70kg 오간다. 체성분 검사 결과 비정상적으로 지방이 없다고 하더라. 살 빠졌다는 말이 스트레스다. 그나마 지금은 아픈 데가 없어 다행이다.”

– 회사를 접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일 자체는 정말 좋다. 하고 싶은 일이었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일한다는 사실도 기쁘고. 힘들긴 하지만, 성장하는 과정이고 배우는 것도 많다.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한다.”

– 경영학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겠다.
“많이 생각한다. 다른 회사 인턴으로라도 들어가 경험해 보고 싶을 정도다. 회계, 회의 방법 등 모르는 게 많다. 돈을 벌어서 월급을 주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도 관리해야 하는데 능력이 부족하다. 카이스트에서 한 학기 동안 사회적기업에 대해 배운 적은 있는데, 회사 경영에 대해서는 따로 배운 적이 없다.”

“나의 멘토는 문용린·안철수 교수”

– 홈페이지에서 자필로 쓴 비전문을 읽었다. 모든 학생에게 멘토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다분히 이상적인 꿈이지만 정말 그러고 싶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부터 일반 학생들까지 모두 멘토가 필요하다. 한 명이라도 응원해주는 멘토가 있으면 문제아는 생기지 않는다. 롤 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돈 없는 것보다 더 큰 문제다.”

– 강대표의 멘토는 누군가.
“문용린 서울대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결혼 주례도 서 주셨다. 문 교수님의 도덕성과 다중지능 이론 관련 강연은 MP3 파일로 받아 100번 정도 들었다. 2008년 사회적 기업을 시작하면서 안철수 교수님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당시 사회적 기업에 대해 자료도 적고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안 교수님이 많이 알려주셨다. 비전과 핵심가치에 대한 중요성을 안 교수님을 통해 배웠다.”

– 요즘도 연락하나.
“그 이후로는 거의 연락 못했다.”

– 비슷한 일을 하던 이준석 씨는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아 갔다. 정치권에서 연락은 없나.
“없었던 것은 아닌데, 관심이 없다. 사회적 기업으로 더 좋은 일을 많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교육 봉사계가 크지 않아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였던 이준석 씨와?불려 다닌 적이 많았다. 청와대도 가고. 좀 걱정이 된다. 혹여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 좋지 않은 영향이 가지 않을까 해서. 이준석씨 대해서는 걱정은 없다. 워낙 뛰어난 분이니까.”

2010년 결혼, 아내는 예비법조인

– 요즘 학교폭력 문제가 이슈다. 중고생을 보면서 느끼는 점은.
“가장 답답한 것은 자신의 가능성을 믿지 않고 꿈이 없다는 점이다. 공부를 하루 종일 하는데 왜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 다 하니까 한다.”

– 강 대표의 중고교 시절은 어땠나.
“나도 마찬가지로 아무 생각 없이 남들 하니까 공부하는 학생이었다. 대학가서도 한참을 방황하고 적응을 못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사경고를 두 번 받았다. 그때까지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선택한 이유도 친한 친구가 가서 따라 간 거다. 집에 대학 나온 사람이 없어서 조언을 받기 힘들었다.”

– 대학시절 공부의 신 동아리를 시작한 것으로 아는데.
“3학년 마치고 군대 다녀와서 정신을 차렸다. 그때 시작했다.”

– 해병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지원 동기가 궁금하다.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지원했다. 폐인 같았다. 이거 외에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하나 제대로 이뤄놓은 것도 없고, 나중에는 정말 이렇게 끝나는 건가 두렵기도 했다.”

– 군 생활이 힘들지 않았나.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갔다. 김포 2사단 기갑부대의 통신병이었는데, 기합이 셌다.? 어리버리 한데다, 말도 더듬고 굼떠서 통신병으로 최악이었다.”

– 지원한 것을 후회했겠다.
“당시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그 덕분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며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래서 전역하자마자 공신도 할 수 있었다.”

– 기혼남이라고 해서 조금 놀랐다.
“2010년 결혼했다. 좀 이른 편이다. 아내는 고등학교, 대학교 3년 후배다. 의류학 전공하고 지금은 연세대 로스쿨 졸업반이다. 아직 아기는 없고.”

– 부부싸움은 한 적 없나.
“말이 없다보니 아내 입장에서는 좀 답답해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더라. 뭐라하면 다 들어주는 편이다. 선배니까.”

강성태 대표는

198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일산 백석고 졸업 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했다. 3학년 마치고 해병대에 입대,?2사단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했다. 2006년 4학년 복학 후 마지막 여름방학을 의미있게 보내고자 저소득층 청소년 멘토링 동아리 ‘공신’을 설립했다. 동생과 여러 학생들을 과외 지도하면서 쌓은 공부법 노하우를 전달하기로 한 것. 동생의 장학금으로 홈페이지 등을 구축하며 많은 청소년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중앙일간지 1면에 보도된 후 책 ‘공부의 신’, ‘공부의 신 돈없이 공부하기‘ 등을 발간하고 ’공부의 제왕‘이라는 TV 프로그램에 MC로 등장하며 이름을 널리 알렸다. 탤런트 유승호가 출연해 인기를 모은 드라마 ’공부의 신‘ 대본작업도 도와줬다.

대학 졸업 후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에게 공신 멘토 한 명씩을 만들어주겠다’는 비전을 갖고 2008년 사회적기업인 ’공신‘을 설립했다. 그동안 소셜벤처 경진대회 대상, 한국대학생대중문화감시단 촛불상 등을 수상했으며 공신은 청소년 권장사이트로 지정받았다.

공신(www.gongsin.com)은

대한민국 모든 청소년에게 효율적인 공부법을 무료로 멘토링 해주는 인터넷 사이트. 현재 온라인에서 300∼400명, 오프라인에서 60명의 정예 멘토들이 활동 중이다. 회원은 22만명. 멘티는 자기와 어울리는 멘토를 선택해 지정할 수도 있다. 멘티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자기주도 학습 진단지를 만들어 맞춤형 학습전략을 제시해 준다.

수능 기출 문제들로 시중 문제집의 반값인 6500원에 문제집도 만들었다. 공신 멘토들이 기출문제 중 가장 핵심이 되는 문제들만 엄선해 문제집을 역었다. 바인더로 만들어 내지만 살 수 도 있다. 한 장씩 분리가 가능한 오답노트도 만들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멘토링 어플리케이션도 개발했다. 이 어플은 디지털미디어 고등학교 공신 후배들이 기획해 제작까지 도맡았다. 교과부 주최 어플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으며,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에서 공부로 검색하면 가장 상위에 뜨는 ‘킬러 어플’이다.

현재 공신은 서울시내 7개 교육장을 갖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의 도움을 받아 10년 내에 최소 100개의 교육장을 만든다는?계획이다.

공신 모델은 인도네시아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강성태 대표의 동생 강성영 씨가?코이카 요원으로 인도네시아에 가서 공신을 만들었다. 현재 300여 명의 멘토들이 참여하는 등 현지 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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