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 필리핀 법조계서 한국이 배울 점은?
[아시아엔=문종구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최근 “아직도 필리핀에 3백여만명의 마약복용자들이 있고, 마약왕들과 그들을 보호하는 5천명의 고위공직자, 경찰 명단을 가지고 있다”고 공표했다.
이 발언으로 필리핀 법조계가 발칵 뒤집혔다. 검사출신이기도 한 두테르테는 이렇게 덧붙였다.
“마약범들이 화려한 경력의 훌륭한 변호사들의 도움으로 재판을 지연시키거나 보석으로 풀려나 계속 마약범죄를 일으키고 있다. 그들을 변호하며 마약전쟁을 훼방놓고 있는 변호사들이 마약전쟁의 다음 타깃이 될 것이다.”
이에 필리핀 변호사협회가 즉각 반발했다. 그들은 “어떠한 범죄이든 피의자들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두테르테의 발언은 변호사들을 겁주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협회는 그러면서도 “회원들의 비윤리적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왜 대통령과 변호사협회는 이같은 공방을 벌인 것일까? 필리핀은 재판정에서 판사 앞에서 선서하지 않더라도 검찰과 법원 제출 진술서 및 준비서면에 허위사실을 기재하면 위증죄로 처벌받는다. 불공정하고 직무유기를 하는 판검사들 역시 행정소송 대상이 된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진술서와 준비서면에 온갖 거짓말을 써 넣어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다. 잘못된 판결과 결정을 한 판검사들에 대해 피해 당사자가 소송을 해서 판결·결정을 뒤집거나 판검사가 처벌을 받거나 조그만 책임이라도 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한국의 유능한 변호사들은 그들의 고객들이 거짓말을 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진술서와 준비서면이 판사의 마음을 낚기 수월한 법률용어와 修辭로 매끄럽게 정리한다.
필리핀은 한국보다 여러 면에서 뒤떨어졌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평가지만, 법원에서만큼은 거짓말쟁이와 사기꾼 판칠 수 있는 여지가 한국보다 훨씬 적다.
한국에서도 변호사의 거짓말을 알고도 모르는 체하거나, 허위내용이 적시된 준비서면을 작성할 경우 위증죄 또는 위증공모죄로 처벌하는 법률을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들었다.
이곳 교민들과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한국에서 소송에서 실제 발생했던 일이다. 당시 판사는 피고의 온갖 거짓진술을 증거로 인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연히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판사는 이곳에서 개인사업을 하는 교민을 한국 대기업에서 파견한 주재원으로 인식하고 판결했다. 흑자였던 회사를 적자로 만든 교민 피고인에 대해 적자인 회사를 흑자로 전환한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며 사실을 왜곡하기까지 했다. 명백한 사실관계를 오인하여 잘못된 판결에 의한 직무유기를 하는 판사가 거의 제재를 받지 않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후진국 필리핀에서 마약과의 전쟁의 진행과정과 필리핀 법조계의 반응을 주시하고 있는 이유다. 필리핀 변호사협회 발표처럼 한국의 법조계 인사들도 비윤리적 행위를 스스로 용납하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