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실화소설 ‘더미’ 50] 필리핀版 ‘친절한 금자씨’

[아시아엔=문종구 <아시아엔> 필리핀 특파원, <필리핀바로알기> <자유로운 새> 저자]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하는 그의 등을 사내들이 밀치며 집 안으로 들어가라는 시늉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 그가 갑자기 헉!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순간 망연자실한 그의 아랫도리가 오줌으로 흥건히 젖었다. 거실 중앙에는 마까리오가 의자에 앉아서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미스터 김! 오랜만이야!”

“어떻게…… 나, 나를 찾아냈소?”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좌절감과 공포가 묻어 있었다.

“그것은 네깟 놈이 알 것 없고…… 나를 바로 알아보는 걸 보니 이 사진의 주인공들도 알아보겠군.”

마까리오가 건네 준 사진 속에는 중년으로 보이는 어떤 여인과 초등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눈이 찢어진 사내아이가 초라한 행색으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여인은 얼핏 리나인 듯 했지만, 지금 30대 초반일 터인데 사진 속 여인은 너무 나이 들어 보여 누군지 확실히 알아볼 수 없었다.

마까리오가 입을 열었다. 리나가 그의 더미로 이용만 당하다가 결국 모든 민/형사상 책임을 혼자 뒤집어썼던 것, 3개월 동안이나 철창신세를 졌던 것, 그리고 결혼을 약속받고 동거했지만 버림받은 후부터 지금까지의 비참했던 생활을 설명했다. 애비 없이 자라고 있는 그의 아들에 대해서도 얘기하는 마까리오의 목소리는 무자비하게 침착했다.

얘기를 듣는 동안 달후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나 뉘우침이나 죄책의 기색이 억지로라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어떤 보복을 당하게 될지 몰라 섬뜩하고 아슬아슬한 공포에 휩싸여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눈으로 흘러드는 땀을 닦으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세 명의 사내들은 뭐라 자기들 말로 시시덕거리며 쇠몽둥이와 밧줄, 포장용 테이프를 챙기고 있었다. 그는 이제 되돌아갈 수는 없으며 결국 여기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인가 하는 두려움에 전율했다.

“무…… 무엇을 원하십니까?”

마까리오가 다시 그가 손에 들고 있는 사진에 눈을 두었다. 그러자 그는 얼른 그 사진을 바닥에 내던지고선 손을 싹싹 빌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면 리나가 받았던 피해에 대한 보상이 될 것입니다.”

마까리오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걸하는 그의 온몸은 땀과 오줌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역한 땀내와 지린내가 초가집 거실의 공기를 오염시키고 있었다. 마까리오는 그의 비굴하고 더러운 꼴을 내려 보다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사진에 눈을 돌렸다. 리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만일 저나 훈이에게 아무런 애정이나 관심이 없다면 저도 여태처럼 앞으로도 잊고 살 테니 그냥 돌아오셔도 돼요.”

이 못된 한국 놈은 리나와 훈에게 애정이나 관심이 털끝만큼도 없는 듯 느껴졌다. 그러자 무식하고 단순한 마까리오의 가슴이 치를 떨며 사납게 뒤틀렸다. 밤하늘은 맑았고, 초가집 주위에는 으스스한 달빛이 고요히 쌓이고 있었다.

다음날 달후는 홍 회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이제 계약체결만 남았으니 다나오 시장과 오스메에게 커미션을 줘야 한다고 보고했다. 그날 오후 홍 회장은 미화 5만불을 달후가 불러주는, 홍 회장이 처음 들어보는 필리핀 사람의 계좌로 송금했다. 시장과 오스메가 그네들의 계좌로 직접 받는 것을 꺼려한다고 달후가 설명했기 때문이다. 계약서는 입금이 확인된 다음 시 의회의 의결을 거쳐서 서명할 것이니 계약 당사자인 홍 회장은 열흘 후에 세부로 가기로 했다.

그로부터 사흘 후, 토미는 호텔 주차장에 방치되어 있는 코로나를 회수해 간 뒤 일꾼들을 시켜 차 안팎을 구석구석 박박 문질러 닦았다. 달후의 차량임대계약서와 운전면허증 사본은 불태워버렸다. 리나는 다시는 자기를 찾지 말라고 했다는 달후의 전언을 형부를 통해 들으며 미화 5천 불이 들어있는 봉투를 받았다.

그 뒤, 홍 회장뿐만 아니라 토미도, 승대도, 임 형사도, 오스메도, 그 누구도 달후를 본 사람이 없었다. 그에게 아무 관심이 없었고 서로 연락하지 않고 살던 가족들은 당연히 그가 지구상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이미 죽었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홍 회장만이 사기꾼 달후를 찾아내 죽여 버리겠다고 벼르며 사람을 사서 풀었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필리핀 경찰에게 부탁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필리핀 경찰은 예산이 없어서 굳이 자신의 지갑을 열어 수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뢰자들로부터 돈을 받지 않으면 범죄인 수사나 실종자 수색에 착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홍 회장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홍 회장의 돈이 입금된 계좌는 어렵사리 찾았다. 하지만 그것도 십년 전에 사망한 어느 촌부의 이름으로 홍 회장이 송금하기 불과 이틀 전에 개설된 것이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통장을 개설할 수 있었고, 5만불이라는 거액을 어떻게 인출해 갔는지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라며 은행 관계자들이 무관심한 표정으로 말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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