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사령관 과연 어떤 자리?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선포된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령관은 계엄지역안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한마디로 엄청난 권한이요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는 ‘헌정의 기본질서가 유지되는 한에서’ 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에서 비상계엄은 6·25 때를 제외하고는 4·19, 5·16, 10·26 등 헌정질서가 근본적으로 파행이 되는 상황에서 내려졌다. 따라서 계엄사령관은 송요찬, 장도영, 정승화 장군 등의 전례에서 보듯이 마음만 먹으면 통치권력을 장악하는 지근거리에 있게 된다. 그러나 민주적 헌정질서가 확립된 오늘날 이런 불행한 사태는 일어나서는 안 되고, 일어날 수도 없다.
계엄사령관은 권력이 아니라 임무와 책임이라는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전시에 군의 작전수행을 지원, 보장하도록 국가의 전 역량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계엄업무는 매우 방대한 일이다. 대통령의 전쟁지도를 보좌하고 육해공 전군의 작전을 지휘하며 동맹군과의 전략 작전 협조에 진력하여야 하는 합참의장에 계엄사령관의 임무를 더하여 부여한다는 것은 전쟁수행의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헌병, 법무, 공보 참모로 구성되는 계엄사의 편성에서 보듯이 이는 기본적으로 군정업무이다. 작전지휘를 본령으로 하는 합참의장에 계업업무를 부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군정을 담당하는 참모총장에 맡겨야 된다.
전시 작전통제권을 빨리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된다. 합참이 제대로 역할과 기능을 다하겠다고 한다면 계엄업무에 정신을 돌릴 여유가 없는데, 말은 자주국방이라고 하면서 실제는 미군에 의존하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깊이 논의되지 않고 잘못된 상태에서 관행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휘통일의 원칙상 작전명령은 합참의장 단독으로 부터 나오지만 그 작전명령을 구상하는 것은 합참의장과 육해공군참모총장이 공동책임을 진다는 Collective Responsibility에 투철할 필요가 있다. 영국 런던의 다우닝가 10번지 수상관저에 바로 인접하여 Cabinet War Room이 있다. 2차대전 당시 처칠 수상을 비롯한 전시내각과 앨넌 부루크 등 합동참모들이 모여 전쟁지도와 작전지휘를 한 곳이다. 우리의 B-2 방커같은 곳인데 이들이 얼마나 긴밀하고 능률적으로 국가 및 군사 지휘부를 움직였던가를 볼 수 있는 산 교육장이다. 우리 합참도 이를 참조하여 자신이 국가보위의 핵심이요 최후보루라는 정신이 배어나올 수 있도록 구조와 운영을 쇄신하여야 한다.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겸하는 것은 중이 염불보다 잿밥에 한눈 파는 작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미연합사 즉 미군이 있는 것을 믿고 있는 때문이다. 군정업무에 진력해야 할 계룡대의 장성들이 ‘체력단련’에 온통 정신을 놓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해군참모총장을 거쳐 합참의장을 지낸 최윤희 제독이 법정 구속되었다. 함대사령관, 작전사령관도 거치지 않은 사람을 해군총장에 임명하고 나아가 합참의장에까지 등용한 통수권자의 파천황(破天荒)적 인사가 가져온 험한 업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