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문화 3.0시대⑩] “미국이여 똥이나 먹어라!”···구겐하임 미술관의 ‘황금변기’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아메리카(2016)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1917)
-리차드 해밀턴(Richard Hamilton)의 ‘오늘날 우리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 1956)
-재스퍼 존스(Jasper Johns)의 세 개의 국기들(1958)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무제 “결합”(untitled “combine”, 1963)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Whaam!, 1963)
산업화의 산물(Ready-made)들을 개념화하라
[아시아엔=김인철 시각문화평론가, 전주비전대 교수, 캐나다 SFU 연구교수, (전)한국미협 이사] 지난 9월 15일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일반관람객이 직접 사용할 수 있는 ‘황금 변기’가 설치됐다. 이번에 제작된 ‘황금 변기’는 이탈리아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마우리치오 카텔란(55) 작품이다. 카텔란은 28세까지 정규 미술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시체 공시소 직원과 간호사 등의 일을 하다 뒤늦게 미술계에 입문해 도발과 역설, 풍자와 해학 넘치는 작품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가 ‘아메리카’(America)라고 명명한 이 변기는 전체가 18K 금으로 만들어졌다.
독특한 이력의 작가, 그리고 황금으로 이루어진 변기라는 것과 꽤 명성 있는 전시장인 구겐하임이라는 사실들이 더해져 작품은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1887~1968)이 1917년 발표한 작품 ‘샘’(Fountain)과 바로 연결이 된다. 뒤샹은 1917년 시장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R. Mutt’라고 붓으로 흘려 쓴 뒤 가명으로 뉴욕의 독립미술가협회(Society of Independent Artists) 전시회에 출품했다. 뒤샹의 작품은 결국 전시를 거부당했지만, 미술계에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커다란 의문을 일으키면서 이른바 ‘레디메이드’(ready-made)의 개념을 만들었다. 이게 바로 필자가 ‘시각 문화 3.0’을 거론하게끔 나서게 만든 작품이며 이미 지난해 <아시아N>에 언급한 적이 있다.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의, 전시용의’ 작품이라는 뜻으로, 뒤샹의 도발 이후 예술품에 보다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뒤샹은 소변기나 삽, 타자기처럼 대량생산된 물건을 전혀 변형시키지 않고 제목만 첨부한 후 전시함으로써 산업적으로 만들어진 물품들을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조각품으로 변화시켰다. 그의 의도는 미술 창작과정에 동반되는 신체적 활동과 손재주에만 이루어지는 관심을 지성적이며 보다 철학적인 것으로 돌리려는 것이었다. 즉 아름다움과 조형은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며 어디서나 손에 넣을 수 있는 레디 메이드를 발견하면 새롭게 창작된 작품이 된다는 의도였다.
이러한 뒤샹의 레디메이드 개념은 전후 서구 미술의 또 다른 한 축이었던 팝 아트(Pop art)와 신사실주의(New Realism) 및 개념미술(Conceptual Art)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팝’(pop)이라는 명칭은 ‘popular’의 약자로 보아 무방하다. 즉 일상생활에 범람하는 통속적 이미지에서 얻을 수 있는 특징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용어를 말한다. 팝아트는 필자가 앞서 살펴본 엥포르멜 등으로 알려진 서정적 추상과 뉴욕에서 이루어진 추상표현주의 특히, 액션 페인팅이라 불리는 전성기의 추상미술에 대한 거부로 시작되었다.
일반적으로 미술평론가 로렌스 알로웨이에 의하여 광고문화가 창조한 대중예술이란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팝아트가 비평용어로 채택되기 이전부터 팝아트의 징후들이 영국에서 나타났다. 즉 1949년 무렵 일단의 젊은 작가들의 공동작품 및 그것과 관련된 토론 가운데 팝아트란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대중소비문화에 대한 관심 아래 1956년 열린 ‘이것이 내 일이다’ 전시에 리처드 해밀턴이 출품한 ‘오늘날 우리 가정을 이토록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Just what is it that makes today’s homes so different, so appealing?)라는 작품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팝아트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영국의 팝아트는 발생초기부터 사회비판의 의도를 뚜렷이 하면서 구태의연한 사회질서에 대한 비판으로서 사회와 예술을 접목시키고자 했던 젊은 작가들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반면 미국의 팝아트는 미적·예술적 가치가 있다는 사상에 고무되었고 현대의 테크놀로지 문명에 대한 낙관주의를 기조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면을 보였다. 미국 팝아트 초기 작가에 해당하는 제스퍼 존스는 1958년작 ‘세 개의 국기들’, 1959년작 ‘채색된 숫자’ 등의 작품에서 보듯이 회화를 재현적 표현이라기보다 오브제(object)로 표현했다. 여기서 오브제란 191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일어난 다다(Dadaism)에서 비롯된 표현방법을 말한다. 다다는 세기말과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천재적 미술가들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각자의 조국으로 돌아가 전사하는 등 대단한 정치적 변동을 겪은 후 이 세상 모든 가치를 부정하며 일어난, 일종의 허무주의를 나타낸 유럽의 예술운동이다. 이들은 기존 생활주변의 물건들을 가져다 전시장에 전시하는 등 이른바 오브제에 의한 표현을 시도했다, 뒤샹은 이런 표현의 연장을 이루었고 그게 팝아트로 연결되며 네오 다다(Neo Dada)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위에 이미 언급한 레디메이드와 오브제와의 차이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뒤샹은 이들을 확실하게 구분 짓고 있다. 그의 레디메이드는 다다와 이를 계승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이른바 ‘발견된 오브제’와는 다른 것이며, 자신의 레디메이드는 개인 취미의 문제이지 발견된 오브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즉 이렇게 발견된 오브제가 아름다운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기호라는 것이다.
아무튼 네오 다다이스트 로버트 라우셴버그는 채색된 화면과 여러 가지 오브제를 결합시킨 콤바인 페인팅을 시도했는데 신문이나 잡지의 사진 또는 그림들을 사용하여 잡다한 사물들과 함께 강력하고 혼잡스런 이미지를 만들었다. 여기서 나아가 사용되는 오브제들로는 무전기, 자명종 시계 때로는 세워 놓을 수 있는 여러 3차원적 오브제도 있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경우는 만화(caricature)의 형식, 주제, 기법 등을 그대로 사용하여 싸구려 만화가 인쇄되는 제판 과정에서 생긴 망점(網點, dots)을 세밀하게 재현하여 확대된 매체를 오브제로 사용했다. 그는 또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넓은 붓 자국을 만화양식으로 변형시킨 대규모 연작을 발표했는데 이는 당시 시각 이미지 세계를 이끌던 추상표현주의의 표현방법이 과장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