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문화 2.0 시대 上] 종교절대자 담은 중세, 거기에 예술은 없었다
[아시아엔=김인철 전주비전대 교수] 서유럽에서 4세기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전 지역이 이 신흥종교 세력에 편입됐다. 이윽고 세상은 정교가 일치되는 강력한 유일신의 세상으로 변화된다. 다양한 존재의 철학을 비롯한 가치 관념, 여러 신들이 나타났고 이들이 다분히 인간적 면모를 보였던 다양성은 모두 기독교라는 한 곳, 한 사고 방식, 믿음으로 모아진다.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시각적 조형물들 역시 모습이 달라진다.
역사상 이렇게 정교가 막강하게 일치된 시절은 없었다. 기독교가 정치적 일치라는 목적으로 자리잡아야만 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과거 유산을 지워버리는 일이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얀 불교 석불들을 무참히 파괴한 탈레반 세력과 중동 지역에 남아 있는 기독교 유적지를 파괴하고 있는 IS 세력의 만행과 다름 없다. 자신들의 종교만을 위하여 과거의 종교 유산을 철저히 없애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찬란하면서도 인간적이었던 그리스 문명의 자취들이 거의 파괴됐다.
인간의 시각은 절대적 위치의 존재가 의도한 목적에 따라가게 마련이다. 현재 북한에서 이루어지는 시각문화를 보면 이해가 쉽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시각적 결과물들은 거의 정치적 목적, 구체적으로 말하면 절대적 지도자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집단의 목적 달성을 선동하는 역할만을 한다.
중세 기독교 시대의 시작과 더불어 비롯된 시각문화는 이른바 ‘우상파괴’라는 명목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권위주의적인 일정한 규범을 확립하게 된다. 그렇게 하여 현재의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에서는 이런 그림들이 경쟁적으로 제작됐다. 더욱이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이전의 불명확한 신의 존재(기독교의 유일신이 아닌)를 숭배한 자취를 배격해야만 했다. 이런 분위기는 건축물에서 더욱 두드러졌는데 지하에서 비롯된 종교라는 콤플렉스를 극복하려는 듯 바질리카의 모습은 비잔틴, 로마네스크, 고딕이라는 한층 웅장한 양식으로 점차 발전해갔다.
그렇게 이뤄진 교회의 부속 조각 역시 눈부시게 제작됐다. 그림이라는 2차원 시각문화는 그리스 시대의 독립적이고 인간적인 모습을 잃어버리는 대신 초월자의 존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치열한 경쟁의식은 종교적 권위에 충성하려는 시각적 데모(demonstration)로 치달았다.
여기서 우리는 시각문화의 목적지향적 기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철저히 종교적 절대자의 명령에 따라 선택된 작가들에 의해 제작되고, 이런 결과물에서는 작가의 의도는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오로지 교황이나 대주교와 같은 이들의 만족을 위하여 제작돼 그것이 충족되면 작가들은 최소한의 생활은 물론 때로는 풍족한 보상이 보장됐다. 작가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예술가라고 불릴 수 없는 존재로, 그저 단순한 생활인에 지나지 않았다.
여기까지가 시각문화 2.0 시대의 전반기 모습이다.
정리하면, 시각문화 1.0 시대는 원시사회에서 종교적 권위가 확립되기 이전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시각적 결과물은 인간의 생활을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거나, 무형의 신들에게 경외심을 보여 생존을 보장받으려는 애절한 바램으로 이뤄졌다. 동굴벽화부터 시작된 시각물의 범위와 규모는 점차 많은 기능이 더해져 기호를 이루고, 이것은 문자라는 모습의 단계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역사의 기록은 시각문화 1.0 시대를 규정하는 큰 사건이다.
시각문화 2.0 시대의 시작은 기독교의 정립에 따른 초월적이고 권위적인 제정일치 시대로 치닫는 시기이다. 따라서 권위주의, 절대자의 뜻에 맞는 작품이었을 뿐 작가의 의도나 개성은 흔적이 없던 때다.
당시의 그림을 보면 양식이나 규범, 아름다움, 구조적 만족감이나 색채의 적정성 등 일련의 미술기법과는 거리가 먼, 서툴게 제작된 모습들이 주류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