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문화 2.0 시대 下] 산업화 앞세운 인간상실 시대, ‘인상주의’ 전성기 열었다

르네상스 후기, 매너리즘 시기의 회화 ‘긴 목의 성모’(Parmigianino’s Madonna with the Long Neck, 1534-40). 파르미자니노 作
르네상스 후기, 매너리즘 시기의 회화 ‘긴 목의 성모’(Parmigianino’s Madonna with the Long Neck, 1534-40). 파르미자니노 作

[아시아엔=김인철 전주비전대 교수] 근대의 시작은 바로 모더니즘과 함께였고, 이는 당연히 시각문화와 중요한 연결고리를 갖는다. 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징은 종교적 신념을 배제하는 동시에, 계몽주의적 사고 역시 거부한 근대적 사고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기는 대체적으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의 시기이다. 한편 시각문화에서 모더니즘의 시기는 대략 1860년대 이후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그렇다면, 1860년대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1860년대의 전세계는 정치사회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크게 요동친 시기였다. 미국에서 노예제도 폐지로 인한 대서양 노예무역의 위기는 이윽고 남북전쟁이라는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이후 전쟁은 끝나지만 흑인노예해방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종차별이라는 새로운 장벽이 만들어졌다. 멕시코에서는 프랑스의 침공 이후 황제 체제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연합국의 파라과이 침략전쟁이 일어나 거의 60%에 달하는 파라과이 인구가 살해되었다. 북아메리카에선 영국에 의한 캐나다 지배가 이루어졌다.

유럽에선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러시아 왕국이 덴마크를 침공하였고, 이는 오스트리아 제국과의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프러시아는 독일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프러시아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한편 크고 작은 전쟁 속에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졌다.

러시아 제국에선 봉기가 일어났고, 중국에서는 제2차 아편전쟁이 일어나는 한편, 태평천국의 난이 기승을 부려 난징이 함락되었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이 이루어지면서, 무사 계급은 생존을 위한 정치세력으로 변모하여 왕권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오리족과 뉴질랜드 식민정부와의 전쟁이 있었다.

정치적으로 부침을 겪었으나, 기술적으로는 획기적인 진보들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미대륙 횡단 철도가 완성되었으며 이집트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었다. 최초의 잠수함이 진수되었고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전신망이 구축되어 유럽과 미국 간의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되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고 맥스웰이 전기와 자기장 이론을 확립했다. 조셉 리스터가 수술 과정에서 석탄산 소독을 도입해 수술 중 감염으로 사망하는 환자의 수를 대폭 줄였다. 멘델도 유전 법칙을 발표했지만, 이는 1900년대까지 크게 인정받진 못하였다. 첫번째와 두번째 세계박람회(EXPO)가 런던과 파리에서 개최되며, 새로운 과학기술들이 전세계인에 선보여졌다.

바로크 회화 ‘진주 귀걸이의 소녀’(A girl with a pearl earring, Johannes Vermeer, 1665). 요하네스 베르메르 作
바로크 회화 ‘진주 귀걸이의 소녀’(A girl with a pearl earring, Johannes Vermeer, 1665). 요하네스 베르메르 作

‘19세기 식민지 경영’ 시각문화 질적 변화 이끌어
문학을 비롯한 예술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빅토르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썼고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쥘 베른의 ‘해저 2만리’가 출간되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이때 세상의 빛을 봤다.

같은 시기, 시각문화에서 이루어진 가장 획기적인 변혁은 ‘인상주의(印象主義·Impressionism)’의 대두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각문화 2.0 시대의 끝자락은 필자가 전회에 언급한 르네상스 이후로부터 1860년대까지의 기간을 지칭한다.

르네상스 이후 이탈리아의 발전은 답보 상태였다. 기법적으로 정체된 시각적 양상, 이른바 매너리즘(Mannerism)에 빠져 있었다. 이 시기 유럽의 정치사회는 기독교의 기준을 따르던 ‘구태’를 말끔하게 벗어버리고 산업화에 매진했다.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세계를 상대로 상업자본에 집착하면서 시각문화도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새롭게 자리매김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그들이 후원한 중산층 세력을 등에 업고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를 이루어 갔다. 그 결과 세계를 대상으로 한 ‘식민지 경영’이라는 경쟁에 치열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으로 이어지는 대서양의 패권은 시각문화의 질적 변화와도 관련이 깊었다.

이탈리아를 기준으로 북유럽 지역인 플랑드르에서 이루어진 바로크(Baroque)와 프랑스로 연결된 로코코(Rococo) 양식은 이 지역의 경제적 부흥과 무관하지 않다. 귀족도 아니고 종교적 지도자도 아닌 단순 경제적 계급이었던 제3계급인 부르주아들의 눈은 매서웠다. 그들은 시각적으로 개성 있는 작품들을 선호했으며, 한편으로는 이 시대의 작품들을 투자의 개념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리하여 작가들은 잔인한 세계에 내몰리기 시작했다. 바로크, 로코코라는 양식의 개념 모두 부르주아 출신 비평가들의 혹평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고전주의 회화 ‘나폴레옹 대관식’(Coronation of Napoleon and Josephine, Jacques-Louis David, 1805-1807). 자크 루이 다비드 作
고전주의 회화 ‘나폴레옹 대관식’(Coronation of Napoleon and Josephine, Jacques-Louis David, 1805-1807). 자크 루이 다비드 作

시각문화 2.0시대 종말 단초된 물질문명 중심 사회
그들에게 만족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리하여 작가들은 공부하고 노력하여 그들의 눈에 들어야 생존하는 시기가 시작되었다. 작가들은 체계적으로 그리스-로마 미술을 다시 공부하여 고전주의를 새롭게 정립했으니, 이를 신고전주의(Neo-classism)라 부른다. 어떤 이들은 고전주의의 몰개성에 반발하여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담은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는 낭만주의(Romanticism)의 시초다.

이미지의 형식(形式, Form)을 중시한 고전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내용(內容·Contents)을 중시한 낭만주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서유럽의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는 물질문명 중심으로 이어져 인간의 실종을 가져오게 되었다. 사실주의(Realism)는 이런 사회 문제를 고발하는데 충실한 역할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드디어 사물을 바라보는 방법의 변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게 인상주의이다.

시각문화에 있어서 인상주의는 2.0 시대의 종말이자 3.0시대의 서막이 되는 셈이다.

사실주의 회화 ‘돌 깨는 사람들’(Stone-Breakers, Gustave Courbet, 1849). 귀스타브 쿠르베 作
사실주의 회화 ‘돌 깨는 사람들’(Stone-Breakers, Gustave Courbet, 1849). 귀스타브 쿠르베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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