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쓴 다산 정약용이 진경준·우병우·홍만표를 만난다면 무슨 말 하실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다산(茶山)의 <목민심서> ‘율기(律己) 제2조 청심(淸心)’장에 “청렴하다는 명성이 사방에 퍼져서 좋은 소문이 날로 드러나면 또한 인생의 지극한 영화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고려시대 윤선좌(尹宣佐, 1265~1343)가 충숙왕 때 한양 부윤이 되었다. 얼마 후에 왕과 공주가 용산(龍山)에 갔는데, 왕이 좌우를 보고 이르기를, “윤선좌는 청렴하고 검소해서 목민관을 삼았으니 너희들은 조심하여 그를 괴롭히거나 번거롭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고려 전녹생(田祿生, 1318~1375)이 경주 판관(慶州判官)이 되어 정사를 청백하게 했다. 이제현이 시를 지어 그를 칭송했다. “전랑(田郞)이 우리 계림의 판관 되니(田郞作?吾鷄林)/ 연세많은 분들이 그 맑은 덕 사모하네(父老至今懷淸德)”

또한 조선조 형조판서를 지낸 이규령(李奎齡, 1625~1694)이 젊어서 수원 부사를 지냈다. 청렴하고 자애로운 정치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들리자 송시열이 편지를 보내 칭송했다. “큰물이 산을 둘러싸면 지척에서 말하는 사람의 소리도 들을 수 없지만, 유독 어진 소리만은 귓전에 쟁쟁하다.”

조선 5백년, 부정과 부패가 판치던 세상이었지만 곳곳에는 이렇게 청렴한 목민관이 많아서 무너져가는 나라를 지탱해주었다. 세상에 무서운 것은 부정·비리·부패다. 부패한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았던 것도 인류 역사상 명확한 사실이다.

다산의 <목민심서>는 망해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고 무너져가는 공직사회를 올바르게 바로잡아 국운이 더 길게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서 지은 책이다. 72조항으로 구성된 <목민심서>에는 조항마다 중요하지 않은 내용이 없다. 목민관이나 공직자들은 결단코 청렴해야만 된다고 강조한 ‘청심(淸心)’ 조항과 하급관리들을 제대로 단속하여 치밀하고 정성스러운 행정을 펴도록 단속하라는 ‘속리(束吏)’ 조항에 역점을 두었다.

목민관은 스스로 솔선수범하여 털끝 하나의 티끌이라고 묻지 않아야 한다. 공직자의 모범이 될 때에만 아랫사람들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탐관오리들이 백성을 무한대로 착취하던 조선왕조 후기로부터 일본 식민지시대를 지나 새롭게 정부가 세워진 뒤에도 부정부패는 사라지지 않아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바로 힘없는 일반 백성들이다.

인간으로서의 지극한 영화는 부귀에 있지 않다. 고관대작이 되어 권력을 누리는 재미도 아니다. 오직 조그마한 고을의 목민관인 낮은 지위더라도 청렴하고 깨끗한 정사를 편다는 소문이 사방에 퍼진다면 그 이상의 영화가 없다.

“청렴한 고을을 지나면 맑은 기운이 사람에게 스며든다”는 그런 청렴, 옥 항아리처럼 맑고 밝고 훈훈한 봄바람처럼 은혜로운 것이 청렴이다.

주자(朱子, 1130~1200)는 “가시나무는 쳐내도 다시 길어나는데 지란(芝蘭)은 길러도 죽기 쉽다”고 했다. 선(善)은 하기 어렵고, 악은 범하기 쉽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심(惡心)이 처음 날 때 단호하게 끊어버리고, 선심(善心)은 놓치지 말고 잘 배양하여 불종선근(佛種善根)이 뿌리 깊게 내리도록 힘을 쓰는 것이 인생최고의 영화다.

대학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 사법·행정 양시 패스, 고시 수석 등은 대다수 한국인이 부러워하는 일이다. 합격자는 고향 네거리나 출신학교 정문에 이름 석자 드날리는 영예를 누린다. 그들의 노력과 의지에는 존경을, 능력에 대해서는 부러움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가문의 영광’이 국가나 사회의 영광이었을까? 최근 진경준·우병우·홍만표 검사와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 등의 드러난 행태를 보면서 ‘시험 귀재’가 ‘사익추구 귀재’가 되어 반사회적 행태를 저지르고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사실은 여간 씁쓸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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