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서 이렇게 말했더라면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산업화 결과 현대식 상층집단이 형성돼 왔다. 그런데 한국의 상층은 오히려 ‘오블리제 없는 노블레스’, 즉 ‘의무를 망각한 신분 집단’에 가깝다. 우리 상층의 이런 특성은 무엇보다 재물과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식 천민문화’에 기인한 다.

천민문화는 사실 ‘천민적 졸부’의 문화이며, 이들에게 오블리제란 경제적 낭비이자 사회적 과시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즉 누릴 특권은 다 누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만연하게 된 이유다.

한국에서 상층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 상층과는 아예 비교대상이 못 된다. 국민에게 상층(上層)은 국민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집단이어야 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층은 지극히 우려스럽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벌이나 대기업의 경제적 상층 또한 마찬가지다.

한국의 상층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 집단의 상층이기 때문에 존경이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국의 상층이 이 모양이다 보니 전 계층에 도덕불감증이 확산되고 각종비리가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지위에 맞는 ‘도덕적 의무감’을 말한다. 높은 지위든 낮은 지위든 사람들은 모두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는 ‘높은 지위’만을 말하고, 그것도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지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사람들의 높은 지위에 부합하는 도덕적 양심과 거기에 합당한 행동을 요구한다.

왜 이들의 도덕적 의무감이 중요한가? 왜 그들만의 도덕적 의무감을 문제 삼는 것일까? 도덕적 의무감은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다 중요하다. 그런데 왜 우리 상층은 ‘천민적(賤民的) 상층’이라고 불릴까? 그것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층은 돈과 힘과 높은 지위는 있어도 도덕성은 사회 내 어떤 계층보다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 상층이 ‘존경받는 상층’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이 나라를 떠나겠다고 아우성이다. ‘헬 조선’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광복 71주년 기념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 법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되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양보,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보다는 불신과 불 타협, 상대방에 대한 인신공격들로 사회를 혼란시키는 일도 가중되어 가고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젊은이들을 질책한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은 뭔가 착각한 게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은 그 대신 ‘콩 한쪽도 서로 나누며 이겨내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언급하며 ‘천민적 상층부’를 향해 사자후(獅子吼)를 터뜨려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얼마 전 나향욱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기자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신분제를 공고화 시켜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출발선상이 다른 것이 현실이고 상하 간의 격차는 어쩔 수 없다” “민중은 개, 돼지로 보고 먹고 살게만 해 주면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통령의 생각이 그러할진대 ‘천민적 상층’의 특권의식이 어떻게 고쳐지겠는가?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지도층이 국가나 집단의 위기 때 현장으로 달려가 서슴없이 목숨을 바친다는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의무를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들은 불안하다 하면 외국으로 도망갈 궁리부터 한다. 장관 청문회에서 보면, 대개가 자신이나 자식들의 병역기피는 단골메뉴다. ‘단독이민’이나 ‘국외 영주권 취득’을 자녀들의 병역기피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머리가 어지러우면 끝이 따라서 어지러워진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자연 맑아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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