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출신 노벨상 수상 2인의 ‘너무나 다른’ 마지막 길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조선시대 말기, 경상도 경산에 ‘김해생’이라는 만석꾼 부자가 살았다. 그는 구두쇠라서 밥상에는 언제나 보리밥에 된장국뿐이었다. 어쩌다 쌀밥에 생선이라도 올라오면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먹다가는 집안이 망한다” 하며 호통을 친다. 그래서 가족들은 주인에게는 꽁보리밥을 따로 지어주고 자기들은 몰래 쌀밥에 고깃국을 먹는다.

‘김해생’은 한 평생 재산을 늘리기 위해 돈의 노예로 살았고, 수많은 재물을 모았으나 한푼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시에 저승사자가 찾아왔다. ‘김해생’은 깜짝 놀랐으나 그렇다고 수많은 재산을 그대로 이 세상에 다 두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갑 속에 감추어 두었던 돈 뭉치를 꺼내어 양손에 한 다발씩 꼭 움켜쥐고 입에다 한 다발 물고 죽었다.

자식들은 울며, 장례를 지내야 하는데 장례비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손에 꽉 쥐고 있는 돈을 빼려고 해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 많은 돈을 시신과 함께 묻기에는 너무 아까워 결국 손가락을 자르고 이빨을 뽑아 버리고 빼내었다.

프랑스에는 ‘알버트’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두 사람이 있었다. 알버트 까뮈(Albert Camus, 1913~1960)와 알버트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이다. 까뮈는 ‘이방인’, ‘시지프스의 신화’, ‘반항적인 인간’, ‘오해’, ‘계엄령’ 등 수준 높은 작품을 썼고 1957년에는 ‘전락’이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슈바이처는 신학자요, 철학자며, 음악가요, 의사였다. 수바이처는 프랑스 식민지인 가봉에 건너가 원시림 속에 병원을 세우고 흑인의 벗이 되었다.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뛰어난 재능과 노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분들이다. 또한 그와 걸맞은 이름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세상에 남긴 것은 서로 다르다. 까뮈는 노벨문학상 상금으로 파리 근교에 좋은 별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생을 즐기며 편안히 살다가 교통사로 생명을 잃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노벨평화상 상금으로 아프리카 밀림 지대에 나병환자를 위한 병원과 수용소를 세워 거기서 일생을 봉사했다. 두 사람은 지금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들이 남겨놓은 별장과 병원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런데 까뮈의 명성과 재능에 비해 그가 남긴 별장은 어쩐지 아쉬움과 애석함을 느끼게 한다. 반면 슈바이처가 남긴 병원과 행적은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하고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J. F. Kennedy, 1917~1963)는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 네 가지 역사적인 질문을 받게 된다”고 했다.

첫째, 당신은 진정 용감하게 살았는가?

둘째, 당신은 얼마나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가?

셋째, 당신은 매일 매일 성실하게 살았는가?

넷째, 당신은 무엇에 당신 자신을 헌신했는가?

이 가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우리가 죽음 앞에 섰다면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죽은 다음에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고 기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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