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한반도!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이달 초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3당 대표들이 모여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눴다. 얼마나 그 모습이 기대되고 모양새가 흐뭇해 국민들이 소통에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재검토와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 사퇴,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기한 보장, 법인세 정상화 등의 대화가 오고 갔던 모양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기대와 달리 아무 소득도 없이 서로 간 “소통에 높은 절벽만 확인했다”는 것이 야당과 세인의 총평이었다. 한의학 원전인 <황제내경>(黃帝內徑)에는 통즉불통 불통즉통(通卽不痛 不通卽痛)이란 어구가 있다. 즉,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못하면 아프다”라는 의미다.
몸의 한 군데가 이상해져서 피가 통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상태가 계속되며 피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 괴사(壞死)가 되어 결국 도려내야 하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필자다. 당뇨병을 한 30여년 앓았더니 양쪽 다리에 피가 통하지 못해 막힌 혈관을 뚫는 시술을 두번이나 받고도 다리가 너무 아파 거의 걷지를 못한다.
불통은 과거에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방법을 우상화함으로써 오류에 빠지게 되어서 생긴다. 심지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려는 정도의 오만을 뜻하는 것이다. 지나친 불통은 자기과신과 오만에서 생기는 폭력을 의미한다. 불통은 오만과 독선이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으니 아무 말 말고 다들 나만 따라오면 된다는 독불장군 식 사고다. 이에 반해 소통은 상대방에 대한 겸허한 배려를 통해 함께 더불어 나아가고자 하는 국민 한명 한명을 존중하는 민주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여유당전서> 권 22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 소통과 불통에 대한 글이 나온다.
“勿遽生別見 亦勿遽屬過境 須融會?究 務得說者本旨 反復參驗”(물거생별견 역물거속과경 수융회연구 무득설자본지 반복참험) 즉 “대뜸 다른 의견을 만들어내지 말고/ 또한 대뜸 지나간 일로 여기지도 말고/ 모름지기 자세히 연구하여/ 말하는 이의 본지(本旨)를 알고자 힘쓰고/ 반복하여 증험(證驗)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도산사숙록은 퇴계 이황(1501~1570)을 사숙하며 얻은 것을 기록하여 정리한 책이다. 1795년 다산은 중국인 신부 주문모 변복잠입사건에 연루되어 금정역 찰방(金井驛察訪)으로 좌천된다. 그해 겨울, 그는 이웃집에서 <퇴계집>을 얻어 매일 아침 세수한 후 거기에 수록된 편지 한 편씩을 읽었다. 오전에 공무를 보고 오후가 되면 편지를 읽으며 깨달은 점을 부연하여 기록하였는데, 그 기록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퇴계가 젊은 율곡 이이(1536~1584)에게 답한 편지를 읽고 다산은 퇴계의 편지 가운데 한 구절을 초록한 뒤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퇴계는 율곡의 편지를 읽으면서 그가 선유(先儒)의 학설에서 옳지 않은 부분을 찾아내서 깎아내리고 배척한다는 인상을 받은 모양이다. 다산은 이에 대해 초학자들이 공부하며 장자(長者)나 선생(先生)에게 질문할 때는 이럴 수밖에 없는 법이니 율곡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부연한다. 선유의 학설 가운데 문제점을 찾아내서 새로운 의견을 제출하고자 애쓰는 것은 큰 병통이고, 그렇다고 해서 아예 생각을 하지 않고 옛것을 인습하는 것 또한 실득(實得)이 없다. 선유의 학설에서 의문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대뜸 다른 의견을 만들어내지 말고 또한 대뜸 지나간 일로 여기지도 말고, 모름지기 자세히 연구하여 말하는 이의 본지(本旨)를 알고자 힘쓰고 반복해서 증험하여야 한다.
그래서 내가 잘못 알았던 것이라면 한번 웃고 말 일이고, 그 학설이 잘못되었음을 더욱 잘 알게 된다면 너그럽게 봐주고 바른 해석을 하면 되지 호들갑 떨 것은 없다고 한다. 다산은 ‘도산사숙록’에서 자신의 경솔함을 종종 반성하였다. 그런데 이 조목 역시 퇴계의 편지를 부연하면서 자신을 경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의 첫 글자 물거(勿遽)를 음미해 볼 만하다. 다산은 새로운 의견을 내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도 아니고 지나간 일로 치부하는 것 자체를 반대한 것도 아니다. ‘대뜸’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해 버리는 조급함을 경계한 것이다. 융회연구(融會硏究), 반복참험(反復參驗)하여야 선유의 의견이 도출된 맥락과 그 본래 의미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루 연구하고 반복 참험해야 비로소 자신의 생각을 전개할 수 있다. 남의 생각을 이해하는 데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 특히 나와 다른 생각에 너무 ‘대뜸’ 반응하지 않았던가? 우리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세히 연구해서 그 본지를 알아내려 힘쓰고 또 반복해서 증험해 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최소한 ‘대뜸’ 판단을 내리는 조급함만 없애더라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기회가 많아졌다. 사람들이 서로 자기의 의견을 개진하면서 이견(異見)을 가진 사람들과 충돌하여 많은 분란(紛亂)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견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들도 이러한 데 나라를 이끌어 가는 분들이 오죽 하겠는가? 종교도 마찬 가지다. 지도자가 고집불통이면 피가 안 통해 제 다리처럼 온 몸이 아파오고 심지어는 어느 부분이 괴사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어제부터 여야의 충돌로 정기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부디 통즉불통! 통하면 아프지 않는다. 나라의 정치가 원활하게 소통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