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반기문 총장님 “‘지극정성’ 없이 이뤄지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원불교를 처음 여신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지극정성(地極精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정당한 일에 지극한 정성을 들이면 그 정성의 정도와 일의 성질에 따라서 빠름과 늦음은 있을지언정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다. 그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적으로 그 일이 잘 진행되어 점차로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도 있고,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기운이 응하여 일시에 그 목적이 이루어지는 수도 있다.”

하늘이 감동할 만한 정성을 지성(至誠)이라 한다. 지극한 정성을 다함으로써 하늘의 감응에 이르는 것이다. 감응이란 하늘이 사람에게 감동하여 응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이 감동할 만한 정성이 없는데 어찌 하늘이 감동할 것이며, 사람이 응답할 만한 정성이 없는데 어찌 하늘이 응답하겠는가?

정성이 지극하지 않으면 정성이 없는 것과 같고, 감동해도 응답이 없으면 감동하지 않은 것과 같다. 꿈이 간절해지면 뜻이 생기고, 뜻이 간절하면 길이 열리게 되어 있다. 문제는 꿈이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감동할 만큼 정성스럽게 가꾸는 꿈이 있나? 그 꿈은 아무래도 서원(誓願)과 발심(發心)일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 그건 아무래도 정성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발심을 하고서는 정성이 부족해 중도에 그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인은 자신이 한 말을 실행하는 것, 언행이 일치되는 것을 ‘정성, 진실, 참되다’라고 보았다.

지성이라는 것은 사람이 행하는 하늘의 도를 말한다. 얼마만큼 하늘의 도에 이르렀는가 하는 경지에 따라 앞일을 미리 알 수가 있다고 했다. 즉 선을 행한 자는 선한 길조가 있게 되어 미리 알 수 있고, 그 반대로 선하지 아니한 행위를 한 자는 그 흉조가 미리 있게 된다.

어느 물질이든 정점(極)에 도달하면 변한다. 우리가 숨 쉴 수 있는 이 공기가 한없이 부드러운 기체지만 영하 270도로 냉각시키면 철판처럼 강한 고체로 변한다. 그 성질 자체가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이처럼 불가사의한 현상, 즉 지성이면 감천되는 이치는 두 가지 현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내 몸밖에서 그 현상을 이루어 나타나게 하는 것이며, 둘은 내 몸 안에서 직접 이루어 나타내는 현상이다. 내 몸밖에서 이루어져 나타난 현상은 나의 지극한 정성에 따라 상대가 있을 때는 상대에게서 이루어져 나타나고, 상대가 없을 때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맹종구순’(孟宗求筍)이라는 말이 있다. 옛날 맹종이라는 사람이 병석에 누워 있는 어머님의 병간호에 구할 수 있는 약은 전부 시탕(侍湯) 하였으나 어머니의 병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맹종의 어머니는 “죽순나물이나 한번 먹었으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고 했다.

맹종은 이 소리를 듣고 그의 어머니 앞에서는 구해드리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추운 겨울에 죽순이 있을 리 만무다. 그래도 맹종은 대밭에 나가 큰 소리로 “죽순을 구하려 왔다!”하고 외치고는 엉엉 울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원을 이루어드릴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서였다. 그때였다. 눈 덮인 대밭 여기저기서 죽순이 솟아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맹종의 지성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다. 정성은 쏟지 않고 좋은 결과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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