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운’이란 본래 없는 것이다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운(運)이 좋아 일이 잘 풀리는 사람도 있고, 운이 나빠 일을 망치는 사람도 있다. 과연 운이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운은 운명(運命), 운수(運數), 운세(運勢)의 준말로 사람의 힘을 초월한 천운(天運)과 기수(基數)를 말한다.
자전거경기 중 골인지점을 얼마 앞두고 3등 선수의 자전거에 펑크가 나자 그를 앞지르지 않고 뒤에서 천천히 달린 4등 선수의 뉴스를 보았다. 자전거가 망가졌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를 메고 끝까지 달린 선수도 정말 멋졌고, 동메달을 딸 수 있음에도 앞 선수의 뒤에서 천천히 달린 선수도 여간 멋진 것이 아니었다.
4등 선수는 “운도 실력”이라는 흔한 말로 합리화하며 달려 들어가 3등을 할 수도 있었다. 그 운을 포기한 4등 선수!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지는 그런 뉴스였다.
지난 6월4일 열반한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1976년 한국에 왔을 때, 필자가 안내역을 맡은 적이 있다. 특히 그때 필자의 아우 김태호 선수가 장충체육관의 환영대회에서 링에 올라 알리와 공개스파링을 한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알리는 이런 말을 했다. “진정한 챔피언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이용해선 안돼요!”
40대 중반의 나이에 회사에서 명퇴한 한 남자가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냇가를 거닐다가 무심코 발밑을 보았다. 개구리 한 마리가 불어난 물에 쓸려가지 않으려고 늘어진 버들가지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점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지가 높아 아무리 애를 써도 잡히지 않았다.
개구리를 보고 그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어리석은 개구리 같으니라고 노력할 걸 노력해야지…” 그런데 그때 강한 바람이 휘 몰아쳐 버들가지가 휙~하고 개구리가 있는 쪽으로 휘어졌다. 마침내 개구리는 버들가지를 붙들고는 조금씩 올라갔다.
순간 그 남자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어리석은 건 개구리가 아니라 바로 나로구나! 미물에 불과한 개구리도 목숨을 걸고 노력한 끝에 한번의 우연을 행운으로 바꾸었거늘, 나는 저 개구리만큼 노력도 해보지 않고 이제껏 어찌 불만만 가득했단 말인가?”
“운도 실력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른다. 남의 행운을 부러워만 할 게 아니라 기회가 왔을 때 단 번에 잡을 수 있도록 실력을 쌓으라는 뜻 이다. ‘운’을 거꾸로 뒤집어보면 ‘공’이 된다. ‘공(功)’을 들이면 성공하는 ‘운’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세상에 공짜란 없다. “운이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성공한 사람들을 보고 “그 사람 참 운이 좋네” 라고 말하거나 ‘나는 왜 운이 없을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리는 공평하다. 좋은 일과 나쁜 일도 일생 전체로 보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가게 되어있다.
운이라는 것은 ‘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한다. 밤이 있으면 낮이 있고, 음이 있으면 양이 있듯이 세상 모든 일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하면서 번갈아 온다. 그것이 바로 업(業)의 결과이고 호리(毫釐)도 틀림없는 인과의 세계다.
사람은 몸과 입과 생각으로 업을 짓는다. 이를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라고 한다. 즉 신체적인 행위로 인한 업은 신업(身業), 언어로 인한 업은 구업(口業), 마음으로 인한 업은 의업(意業)이라고 한다.
세 가지 업이 축적되어 에너지를 가진 업력(業力)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면 업의 훈습(薰習)은 거듭되어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만들고 심지어는 우리의 얼굴, 생각마저도 그 업의 훈습에 따라 변하게 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는 업을 짓고 있다. 그것을 ‘작업(作業)’이라 한다. 작업의 결과가 이생에서의 ‘업보(業報)’라는 것이다. 전생에서 지은 업대로 인생이 주어지는 것이니 얼마나 공평한가?
운이 좋은 사람은 나쁜 때가 왔을 때는 포기하지 않고 극복해나가서 언젠가 다시 좋은 때가 왔을 때 시련을 통해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더욱 도약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업을 잘못 지은 사람은 게으르고 금방 포기해 좋은 때가 와도 잘 살리지 못하고 놓쳐버린다.
운이라는 게 존재해서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업을 잘 지으면서 공평하게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좋은 때와 나쁜 때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일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나쁜 때가 찾아오고 업장(業障)이 연이어 몰려와도 좌절하지 말고 “이 시련은 나로 하여금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고 더욱 좋은 업을 지으면 좋은 운은 반드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