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모르게 하면 ‘축복 두배’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적공(積功)은 어떤 일에 많은 힘을 들이며 애를 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적공을 드러내놓고 하는 사람도 있고, 숨어서 적공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어떤 시민단체에 가입해 활동할 때인데, 세상에 좋은 일 하자고 모인 사람들이 맨날 모여서 도박을 하거나 술판을 벌이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겨울에 연탄 한 차를 달동네에 실어다 주고 요란하게 사진을 찍고 난리법석을 떤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뭐 좀 해놓고 자랑하는 사람을 보면 좋아 보이지 않는다.
10년 이상 “소년소녀 가장에 써달라”는 전주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의 얘기는 얼마나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지? 지난 연말에도 어김없이 A4용지 박스 안에 빨간 돼지저금통 1개와 5만원권 다발 10개 등 5033만9810원이 담겨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기부한 돈은 모두 4억4764만1560원이라고 한다.
숨은 공덕은 나타난 공덕을 초월한다. 각자 지은 바대로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천차만별로 벌어진 그 모습들을 가만히 지켜보면 그 누구의 탓도 아니다. 각자 자신이 그동안 심신작용을 따라 지었던 결과다.
세상에 나타나 있는 현상은 보이지 않는 진리(인과, 마음, 심신작용)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숨은 것과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나타난 것을 바라보되 나타나기 이전 소식을 잘 알아차려야 한다. 즉 나타난 것을 바라보면서 그 이전 것을 간파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며, 이전 것에서 모든 것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나타난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숨은 것에 여여(如如)할 수 있는 심법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나타날 때 이전 것에 근원하여 나타나므로 드러난 명예와 재산과 인연에 묶이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숨어 있지만 나타날 수 있는 근원을 다 품고 있고 우리가 넉넉할 수 있는 것이다.
식물도 겨울에 찬 기운이 뿌리로 다 내려가 저장, 함축 하였다가 봄에 그 뿌리의 기운에 힘을 얻어 자란다. 나타난 것이 숨은 것이요 숨은 것이 나타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숨은 적공에 정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대나무 중에 최고로 치는 ‘모죽(毛竹)’은 씨를 뿌린 후 5년 동안 아무리 물을 주고 가꿔도 싹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어느 날, 손가락만한 죽순이 돋아나 주 성장기인 4월이 되면 갑자기 하루에 80cm씩 쑥쑥 자라기 시작해서 30m까지 자란다.
그렇다면 왜 5년이란 세월동안 자라지 않았던 것일까? 이에 의문을 가진 학자들이 땅을 파 보았더니 대나무의 뿌리가 땅속 깊이 사방으로 수십m 넓게 뻗어나가 자리 잡고 있더란다. 5년 동안 숨죽인 듯이 사방으로 뿌리를 뻗으며 견고하게 내실을 다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5년이 경과한 후에야 ‘모죽’은 당당하게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적공을 해도 중도에 쉽게 포기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포기를 모른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에게는 실패와 고생을 거듭해도 분명 성공할 날이 올 것이라는 긍정적 사고로 차곡차곡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있다.
숨은 적공에 자수(自修)·자각(自覺)·자립(自立)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자수는 생활 속에서 바른 표준을 세워 스스로 닦아 나가자는 것이다. 일관된 정성을 들이면 마침내 도력이 쌓여 세상의 큰 스승이 되는 것이다.
둘째, 자각은 일과 이치로 천만 사물을 접하고 대할 때 서로 배우고 익히며 생각하고 연마하는 것이다. 꾸준히 노력하면 마음 하늘(心天)에 지혜의 태양(慧日)이 솟아 시방세계에 밝은 빛을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자립은 개인이나 교단이나 국가나 세계를 막론하고 정신·육신·물질의 모든 생활에서 자력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자립의 힘이 세상에 넘쳐흐를 때 바로 인류사회에 큰 보은(報恩)이 되는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거짓 없이 그 일에만 충실한다. 그래서 시일이 갈수록 그 일과 공덕이 찬란하게 드러난다. 반대로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일에는 충실하지 아니하면서 이름과 공(功)만 구하므로 결국 이름과 공이 헛되이 없어지고 만다.
무슨 일에나 공을 쌓으려면 숨은 적공을 해야 한다. 연탄 한 차 실어다 주고 플래카드를 내걸며, 사진이나 찍고 신문에 내고 야단법석을 떠는 행위는 적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