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맨발의 영웅’ 아베베 비킬라와 무하마드 알리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오래 전 일이다. 일본 최고 명문 공대를 수석 졸업한 천재학생이 공부를 더하라는 교수와 선배들 권유를 뿌리치고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마쓰시다전기회사’에 입사지원서를 접수시켰다. 그는 수석을 놓친 적이 없고 항상 남보다 우수한 성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던 천재학생이었기에 공부를 포기하고 취업을 하겠다고 할 때 사람들은 남들이 이해 못하는 숨은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 천만 뜻밖에 합격자 명단에 천재의 이름은 빠져 있었다. 그는 몇 번이고 확인했지만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일등을 놓친 적이 없는 그가 분명히 수석으로 합격될 것으로 자신했건만 수석은커녕 합격자 명단에도 오르지 못한 것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발표를 기대했던 그는 풀이 죽은 채 환호하는 합격자와 합격자 가족들을 뒤로하고 핏기 없는 얼굴로 힘없이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에 돌아온 그는 그날 저녁 평생 처음 맛보는 불합격에 따른 좌절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에 들었다가 영원한 잠에 빠지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가족들은 이미 숨을 거둔 그를 발견하고 큰 슬픔에 빠져 오열하고 있을 때 긴급전보로 ‘합격통지서’가 도착했다. 그는 자신이 예상한대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실력으로 합격했던 것이다. 수석으로 합격했기 때문에 일반 합격자명단에 넣지 않고 별도로 적혀있는 그의 이름을 전산실무자의 실수로 합격자 명단에서 빠뜨린 것이었다.
당시 이 사건은 일본사회에 큰 화제가 되었으며 회사의 실수로 천재를 죽였다는 비난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세월이 흘러 사건이 잠잠할 무렵 한 기자가 그 회사 회장인 마쓰시다 고노스케를 찾아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총수는 회사의 실수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깊이 사과했다.
그러면서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의 죽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차라리 다행스런 일입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말에 기자가 그 이유를 묻자 총수는 “단 한번의 실패를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심약한 사람이라면 이 다음 중역이 되었을 때 만약 회사가 위기에 봉착한다면 모든 것을 쉽게 포기함으로써 회사를 더욱 위기에 빠뜨리고 전사원의 삶이 걸려있는 회사를 비극으로 끝을 맺는 우를 범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했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지도자나 리더의 그릇된 판단으로 나라가 망하고 수많은 백성들이 곤경에 빠지는 일이 흔하다. 개인의 삶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이지만 국가나 회사경영을 맡은 지도자나 리더는 많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기에 실패를 이겨낼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지도자나 리더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다.
맨발의 기관차 아베베 비킬라(Abebe Bikila, 1932~1973)는 마라톤의 천재였다. 1960년 9월 10일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장. 로마의 개선문을 통과하는 영광의 우승자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관중들은 잠시 후 제일 먼저 들어선 사람을 보고 어리둥절해 하기 시작했다.
검은 피부에 깡마른 체구, 더구나 맨발이기까지 한 아베베 비킬라 때문이었다. 한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선수였다. 그 때문에 주최 측 또한 이름을 두번이나 정정하며 우왕좌왕했다. 6.25 참전용사였던 에티오피아 황실 근위병 아베베는 2시간 15분 16초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세계 마라톤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아프리카 흑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었고 25년 전 조국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이탈리아에 대한 멋진 설욕이기도 했다. 그리고 1964년 10월 21일 도쿄올림픽에서도 2시간 12분 11초로 역시 세계신기록으로 또 한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셀라시에 에티오피아 황제는 ‘맨발의 영웅’을 일등병에서 중위로 수직 상승시키고 자동차를 하사했다. 그는 세계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러나 1969년 3월. 탄탄대로를 달리던 아베베의 인생에 큰 시련이 닥친다. 그는 4년 뒤의 멕시코올림픽에서도 자기는 우승한다고 호언장담했다. 코치의 말도 안 듣고 연습도 잘 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마라톤의 천재라고 하면서 멕시코 시티가 해발이 높아서 멕시코마라톤은 자기에게 더 유리하다고 큰소리 쳤다.
연습장까지 매일 아침 맨발로 달려가던 아베베는 새 차를 운전하고 가는 선수가 되었다. 그는 유명인사들의 파티에도 초대를 받아 가서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아졌고 ‘천재’라는 자부심 때문에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출전했다가 멕시코에서는 낭패를 보았다.
아베베는 도중에 기권하여 ‘영웅’의 자리에서 불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셀라시 황제의 나라’ 영웅을 누구도 환영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차사고가 나서, 몇년 전까지는 영웅이던 이 사나이는 하반신이 마비되었다.
그 후, 아베베는 장애인들을 위하여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다가 개썰매경주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1973년 세상을 떠났다. 마흔 한살이었다. 엊그제 숨진 무하마드 알리가 유독 생각나는 이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