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마스터 이준구, 알리·이소룡에서 최은희·레이건·부시까지
미국 상·하원 의원들에게 45년간 태권도를 가르치고 그들이 한국을 찾도록 영감을 불어 넣어준 세계 태권도의 대부 이준구 국제10021클럽 총재.
재미동포인 그가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싱가포르 한국의날’ 강의 요청을 받고 싱가포르로 가는 길에 들른 것이다.?팔순을 맞은 이 총재는 오랜만에 방문한 고국에서 잠시 몸과 마음을 내려 놓았다. AsiaN 이상기 발행인, 민경찬 부국장이 11월28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서 그를 만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좌우명을 묻자 질문과도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왜 사세요? 이것이 인생의 목표다. 왜 사는지를 정립하면 만사가 다 해결된다. 행복하기 위해서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유일한 행복의 길이다.”
세상은 어지럽지 않은가? “지금 세계는?서로 미워하고 있다. 진리를 알면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행복해진다. 거짓말로 시작하니 마음이 추해져서 서로 증오하는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1932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성균관 박사를 따면서 각각 아들, 딸을 정혼시켰다고 했다. 각각 아들은 3살, 딸은 6살 때의 일이다. 그때의 약속으로 결혼한 부부 사이에서 이 총재가 태어났다. 2남3녀 중 셋째다.
충청도 시골마을의 이준구는 어떻게 미국에서 역대 대통령들과 교류하며 성공한 이민자의 반열에 오른 것일까?
어린 시절 일화 한토막.? “6살 때 5살 여자애한테 맞고 와서 울었다. 순사 딸이었는데 겁이 나서 반항도 못했다. 어머니가 왜 맞고 왔냐고 또 때리셨다. 그때 결심했다.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자신감을 길러야겠다고.”
어린 이준구는 역기도 들었고, 서울 ‘청도관’을 찾아 당수도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태권도를 배운 것은 16살때. ?마침 미국영화도 보게 됐다. 스크린에 마릴린 먼로가 나왔다. 이준구는 그녀에게 한 눈에 반했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금발 미녀와 결혼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태권도였다. 그는 열심히 영어와 태권도를 익혔다.
24살에 군인으로 미국에 다녀온 청년 이준구는 이듬해인 1957년 유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정착했다.
그런데 마릴린 먼로는 만났을까? ?”먼로는 못 만났지만 그녀의 첫 남편인 조 디마지오는 만났다. 1976년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워싱턴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함께 세계의 무도인, 야구인, 검술인으로 만나 상을 받았다.”
첫사랑에 대한 이 총재의 회상이 계속됐다. 배우 최은희씨도 이 총재의 마음을 샀다. “영화 보고 반했다. 최은희씨가 안양에서 영화학교 교장이었을 때 나를 초청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강연하는 자리였다. 신상옥씨가 연출한 흑권(1973년)이라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는데 그때 가까워졌다.” 이 총재는 최은희씨와 그렇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총재는 1962년 워싱턴에 첫 태권도장을 냈다. 그 때 서구의 대사들에게 편지를 썼다. 이 총재는 “대사 자녀들을 도장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여기서 인성교육을 시키고 성적도 높여주겠다고 약속했다. 우등생 아니면 검은 띠 안주면 되는 거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태권도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180개국 6000만명의 태권도인이 생겼다. 가라데가 아직까지 올림픽 종목이 아닌데 비해 태권도는 올림픽 종목에 올랐다. 그 발판을 만든 것이다. “태권도에 대한 인식은 천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싸우는 거라며 못하게 하셨다. 그런 태권도를 미국에 와서 세계에 널리 알렸다는데에 자부심이 있다.”
이 총재는 45년간 미국 상하원의원 400여명에게 태권도를 무료로 가르쳤다. 그들이 감사하다며 지난해 팔순잔치를 미국 국회에서 열어줬다. 당시 그는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1분에 100번 하는 팔굽혀펴기와 송판 깨기, 머리에 올린 물잔이 쏟아지지 않도록 하는 발차기도 보여줬다.
그는 새벽 5시반에 일어나 예수, 부처, 조부모, 양가부모를 포함해 조지워싱턴에까지 두 번씩 절한다고 했다. 따로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 중 미국의 조지워싱턴 전 대통령도 있었다.
“조지워싱턴은 인류사회에 큰 일을 했다. 대통령이었지만 왕으로 군림하지 않았다. 대통령도 3번 이상 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민주주의를 실천했기 때문에 지금 민주주의가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보다 미국에서 더 유명한 그는 역대 대통령 등 정계 뿐 아니라 전 세계 다양한 인맥과 친분으로도 유명하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때는 직업교육고문을 맡았고 부시 대통령때는 체육고문, 아들 부시 대통령 때는 아시아태평양정책고문을 맡았다.
홍콩배우 이소룡은 1960년대 초반 시애틀에서 만났다. 이 총재는 이소룡에게 발차기를 가르쳤고 이소룡은 이 총재에게 주먹질을 가르쳐줬다고 했다. 이소룡과의 인연은 그가 사망한 1973년까지 이어졌다.
전설적인 복서 무하마드 알리와의 인연도 소개했다. 알리는 이 총재에게 배운 아큐 펀치(Accu-Punch)로 영국 챔피언 리차드 던을 물리쳤다. “1976년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알리를 한국에 데려온 적이 있다. 알리가 한국여자들이 예쁘다며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처음엔 못들은 척 했고, 재차 묻길래 단호히 안된다고 했다. 나중에 그가 나보고 ‘존경한다(Master, I respect you)’고 하더라” 했다.
평생 태권도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전념해온 그는 이제 행복을 전파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는 그만의 행복론, 즉 트루토피아(Trutopia)를 강의한다.
트루토피아는 무엇일까? “1960년대부터 태권도를 가르치면서 행복론을 얘기해 왔다. 유토피아가 상상 속 세계라면 트루토피아는 실재하는 유토피아다. 21세기가 끝나기 전에 성인(聖人)들만 사는 트루토피아를 만들어야 한다. 진미애(眞美愛)가 선(善)의 3대 가치이다. 인생의 목적을 모르는 사람이나 목적지를 모르고 나는 비행기가 뭐가 다른가. 에너지가 떨어지면 다 파괴되는 것이다. 모든 인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인간이 해야하는 일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소련 고르바초프 행정부에서 관련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공산주의 사상을 트루토피아 사상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고르바초프가 쫓겨나면서 무산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구소련 정부의 주목도 받았던 걸까? “소련에서 187명에게 지하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마지막날 한 철학교수가 질문을 했는데, 닭과 계란 중 어느 것이 먼저냐고 묻더라. 나는 간단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가는 것이 순서이고 창조는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며 조물주는 새로운 것을 하나 만들어서 복사하므로 계란이 먼저라고 답했다. 모두가 내 강의에 관심을 가졌다”고 했다.
그는 행복할까? “행복하다. 미워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환경의 제물이 된 사람도 미워하지 말고 불쌍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 그는 트루토피아에서 살고 있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