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토피아’ 꿈꾸는 여든 살 청년
재미 태권도 ‘그랜드 마스터’ 이준구
앨버트 아인슈타인과 함께 역사상 미국에 가장 공헌이 큰 이민자 203명에 한국계로 유일하게 포함된 사람. 전설적인 홍콩배우 브루스 리(이소룡)와 세계적 복서 무하마드 알리의 무술코치. 80세 나이에 1분에 팔굽혀펴기 100번을 해낸 괴력의 무술인. 미 상하원 의원 350명의 태권도 제자를 배출해 의회가 그의 이름을 따서 기념일을 정한 네트워크의 달인. 유엔총회장에서 자신의 철학을 세계 각국 외교관들에게 설파한 언변가. KBS 교향악단과 협연으로 하모니카 연주 음반을 낸 다재다능한 강연자.
그의 이름 앞에는 늘 ‘그랜드 마스터’란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태권도 대스승’ 이준구(82·미국명 준 리) 준리태권도협회 총재가 7월 초 한국에 왔다. 대상포진으로 2년 반째 미국 버지니아 자택에서 투병 중인 그는 “대중 앞에서 행복에 대해, 진리에 대해, 그리고 태권도에 대해 얘기하니 다시 옛날의 건강을 되찾은 기분”이라고 했다.
이준구 총재를 7월24일 경기도 고양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온몸을 바늘로 콕콕 쑤시는 통증이 따르는 대상포진을 2년 이상 앓아온 모습은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온데간데 없어졌다. 기자는 그가 2008년 10월 아시아기자협회 포럼 총회 특강을 맡았을 때 처음 만났다. 이후 4~5차례 더 만났으나, 2011년 가을 이후 그가 요양에 들어가면서 매달 1~2차례 전화통화로 소식을 주고 받는 데 만족해야 했다.
기자는 지난 6월28일 저녁(미국시각) 그에게 안부 겸 축하전화를 걸었다. “오늘이 준리데이죠? 축하드립니다. 어서 쾌차하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나 곧 한국 갑니다.” 이날은 미 의회와 워싱턴DC가 2003년 그가 태권도를 통해 한미관계에 기여한 공헌을 인정해 ‘준리데이’로 지정한 지 10년째 되는 날이었다.
기자와 마주 앉자마자 그는 평생화두인 트루토피아(Trutopia=True Utopia) 얘기부터 꺼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어떻게 행복해질까? 내가 진실하면 내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내 마음이 아름다워지면 모두가 나를 사랑하고, 모두가 나를 사랑하면 나는 행복하게 된다. 아주 간단하다.” 그는 자신의 ‘트루토피아 정신’을 ‘진미애(眞美愛)사상’이라고 한다.
미 상·하원 의원 350명 태권도 제자
-오랜 만에 한국에 오니 어떤가?
“고국의 하늘은 늘 높고 푸르다. 정신도 맑아진다. 무엇보다 내 아픔을 딛고 모국의 이웃들에게 평소 생각을 전할 수 있으니 고맙다. 고국은 따스한 어머님 품이다.”
-고통이 심할 텐데 식사는?
“고등어 갈치 같은 생선과 야채 중심으로 먹는데, 주 2회 정도 불고기도 적당하게 먹는다.” (3일 뒤 여의도에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데 식당주인이 그에게 멸치볶음과 콩자반을 듬뿍 내놨다. 특별히 주문 받은 것이라며.)
그는 2004년 2월 8시간에 걸친 심장수술로 지금도 종종 다리가 저리는 증세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기억력은 예전과 다름없이 정확했다.
-건강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나는 술 담배를 멀리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정신건강이 중요하다. 나는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도록 행동하며, 자신을 사랑한다. 또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완벽해지도록 애쓴다. 매일 좋은 것만 배우려 하므로 현명해진다. 그게 바로 건강이고 행복의 비결이다.”
-이번에 특강도 하셨다고 들었다.
“제주 함덕초등학교에 가서 했다. 2년 만에 대중 앞에 서니 흥분될 정도로 정말 좋았다. 65년 내 태권도 철학이 병든 세상에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만 해도 뿌듯하다.”
-무슨 말씀을 하셨나?
“학생들한테 물었다. ‘담배 피우는 게 좋습니까?’ ‘아니요.’ ‘그럼 부모님이 피우시면 좋습니까?’ 그러니까 더 큰 소리로 ‘아니요!’ 하더라. 40년간 담배를 피우던 교장선생님이 끊었다고 한다. 부모와 선생님들이 아이를 가르치는 데 중요한 세 가지 규칙이 있다. 먼저 솔선수범하고, 아이들의 잘못을 절대 묵인하지 않고 미소로 수정해주어 아이들이 익혀서 습관이 되게 하며, 계속적으로 솔선수범하는 것이다.”
-아침에 아홉 분께 절을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들었다.
“부모님,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예수님, 단군할아버지, 그리고 조지 워싱턴이 바로 그분이다. 나를 낳고 키워주신 분들, 그리고 예수님과 한국과 미국의 개국선조를 생각하며 하루를 연다. 워싱턴의 경우 ‘국왕’에 취임할 것을 사양하고 민주주의 전통을 세웠기 때문에 존경한다. 아마 내가 미국에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멀리 보면 뿌리가 거기 있다고 생각한다.”
-제자들이 무척 많은데, 오바마 대통령도 가르쳤나?
“나는 주로 공화당 출신 상·하원 의원과 정부관리들과 인연이 깊다. 오바마 대통령은 태권도 블루벨트인데, 내게 배우지는 않았다.”
그는 밥 리빙스턴, 토비 로스, 제임스 사이밍튼 전 연방하원의원, 밀턴 영 노스타코타주 전 상원의원, 일레나 레티넨 전 외교분과위원장 등 미 의회에 숱한 태권도 제자를 배출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공식석상에서 춤을 춘 일도 있다고 들었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 미국방문 때 연회에서 영부인이던 그와 춤을 춘 적이 있다. 내가 “샬 위 댄스?” 했더니 응해 1분 남짓 추었는데 서툴러서 내 발을 여러 번 밟더라. 2~3년 뒤 힐러리 친구인 맨해튼 출신 멀루니 의원에게 ‘한국에서 온 키 작은 사람과 춤춘 것 기억나느냐’고 물어보라 했더니 힐러리가 ‘물론 기억난다’고 답했다고 하더라.”
‘신격(神格)인간’ 만드는 데 여생 바칠 터
이 총재는 한국과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전두환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미국방문 때마다 그를 초대하곤 했다. 한국 정치인들이 미국의 유력한 상·하원 의원과의 미팅 주선을 요청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는 “한국의 유력한 대선후보가 미국에 왔는데, 출국 때까지 아무 정치인도 만나지 못했다며 부탁을 하길래, 하원 외교위원장, 세출위원장 등 4명을 오전 10시부터 차례로 만나게 해준 일도 있다”고 했다.
특히 레이건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다. 레이건 재임 시절인 1982년 7월4일 그는 독립기념일 행사 총집행위원장을 맡았으며, 1986년 10월16일 레이건은 그가 제안해 의회를 통과한 스승의 날 설립법안에
서명을 했다. 만날 때마다 그는 태권도를 통해 세상이치를 통달한 철학자 같은 느낌을 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나눈 대화와 명상 등을 통해 다듬은 자신의 생각을 얘기한다. “세상의 갈등에는 3가지 원인이 있다. 사상대립, 이해대립, 감정대립이 그것이다. 나는 운동과 강연을 통해 이같은 대립을 해소하고 양심적인 사람, 신격(神格)인간을 만드는 데 남은 생을 바치겠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영어와 한국어로 낭송하곤 하는 인도시인 타고르의 ‘동방의 등촉’을 다시 읊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중략)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