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 무하마드 알리 태권도 코치 이준구씨 “그의 영웅적 삶은 자유에 대한 갈망”

“그는 자기홍보 분명한 철학···흑백차별 무너뜨리고 자유를 향한 불굴의 신념”

 

1976년 6월30일 서울 정동 문화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한 고 무하마드 알리. 나흘 전 도쿄에서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맥빠진 세기의 대결’을 벌인 무하마드 알리는 당시 최고 인기 프로인 ‘유쾌한 청백전’에 출연했다. 알리는 흰색 한복과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출연해 시청자들 인기를 독차지했다. 오른쪽이 당시 함께 출연했던 알리의 태권도 사범 이준구 마스터다.
1976년 6월30일 서울 정동 문화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한 고 무하마드 알리. 나흘 전 도쿄에서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와 ‘맥빠진 세기의 대결’을 벌인 무하마드 알리는 당시 최고 인기 프로인 ‘유쾌한 청백전’에 출연했다. 알리는 흰색 한복과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출연해 시청자들 인기를 독차지했다. 오른쪽 두번째가 당시 함께 출연했던 알리의 태권도 사범 이준구 마스터다.<출처?Truetopia, the Taekwondo Philosophy, 이준구 지음>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전설의 복서’ ‘영원한 자유인’ 무하마드 알리가 별세한 지 1달이 가까워 오고 있다. 한국인으로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이준구(84, 미국명 준리) 태권도 마스터라고 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시아엔>은 29일 미국 워싱턴 DC에 거주하고 있는 이준구 태권도 마스터와 알리와의 인연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이준구 마스터는 대상포진으로 6년째 투병중이며 2013년 8월 <매거진N> 제2호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삶과 그가 평생을 추구해온 ‘트루토피아’(Truetopia) 등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2011년 11월 방한 당시 이준구 총재
2011년 11월 방한 당시 이준구 총재

-알리가 별세해 많이 슬프시겠다. 그는 선생님 수제자라고 불러도 되는 것 아닌가?

“텔레비전에서 뉴스 보고 눈물이 많이 나왔다. 참 착한 사람이었는데. 수제자는 무슨. 주먹 쓰는 것 하나 가르친 것이다.”

-선생님이 2010년에 내신 <Truetopia, the Taekwondo Philosophy>를 보면 알리에게 ‘아큐펀치’ 즉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주먹쓰기를 가르친 걸로 나와 있다. 왜 그가 죽은 후 추모열기가 일었다고 보시나.

“알리는 말을 아주 잘 하니 인기도 많았다. 각국 대통령들이 많이 오려고 했는데, 조문객 숫자를 줄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생님께서도 조문을 하거나 조의를 표했나?

“요즘 몸이 많이 불편해 참석은 못하고 기도하며 눈물만 많이 흘렸다.”

-가장 최근 만난 것은 언제인가?

“15년전 워싱턴에 왔을 때 봤다. 나 때문에 온 건 아니고 행사에 연설하러 왔다. 보좌관이 내가 그 자리에 왔다고 하니 알리가 벌떡 일어나 내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 당시 그는 이미 몸이 매우 불편한 상태였다.”

-그와 언제 처음 만났나?

“1974년 내 친구 소개로 처음 만나 그 이듬해 코치가 됐다. 안토니오 이노키와 시합을 한다고 하여 내가 합류한 것이다. 알리가 일본에 갈 때 코치로 갔다. 그리고 이노키 하고 시합 후 6월28일 한국에 들러 3일간 머물렀다.”

-그때 이름도 알리였나?

“이미 1963~64년께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이름을 바꿨다.”

-이 선생께서 알리를 도운 이유가 궁금하다. 선생은 기독교 신자이고 그는 이슬람인데.

“그가 매우 친절해서 그랬다. 정말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알리는 나를 무척이나 어려워 했다.”

-두분이 몇살 차이인가?

“그가 나보다 열 살 어리다.”

-알리가 선생님께 무슨 호칭으로 불렀나?

“그랜드 마스터 리라고 불렀다.”

-알리에게 얼마나 자주 태권도를 가르쳤나?

“이노키와 시합이 결정되고 훈련 캠프를 ‘디어 레이크’에차리고 1주일간 합숙하며 가르쳤다.”

-한국에 함께 온 1976년 이후에도 만났나?

“여러 번 만났다. 그러다 2000년쯤 되니 전화도 못 받고 하더라. 알츠하이머가 깊어졌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시나?

“그는 머리가 비상하다. 권투엔 왕이다. 사람이 굉장히 영리하고 자신을 남한테 전하는데 철학이 있다. 기자가 나타나면 자기 할 얘기를 마구 떠들어 댄다. 그렇게 해야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의지가 실현될 거라고 본 것이다. 그는 익살꾸러기다. 젊은이들이 그에게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아닌가 싶다.”

-이준구 마스터께선 알리의 유일한 한국인 스승이다. 한국에 다녀가고 무어라고 하던가?

“한국은 아주 친절하고, 어느 나라에서보다 제일 환영을 많이 받았다고 좋아했다.”

-당시 한국에 3일 체류하며 어디어디를 방문했나?

“방송국에 많이 갔고. 이슬람 교당에 간 기억이 난다.”

-선생님은 기독교 신자이신데, 알리는 이슬람이고.

“지금 내가 지상낙원이라고 믿는 ‘트루토피아’를 전파하는 게 남은 생의 사명이지만, 당시 나는 기독교를 믿었다. 알리는 이슬람이지만 함께 일본과 한국에 가자고 하니 기꺼이 동참했던 거다.”

-당시 한국엔 누구 하고 왔나?

“함께 다니는 사람들이 20명쯤 된 것 같다.”

-당시 단장은?

“내가 맡았다. 그리고 이노키와 매치메이커는 ‘블랙이슬람’이라고 흑인 이슬람 단체에서 맡았다.”

-알리가 별세한 뒤 이준구 선생님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여기서도 전화 많이 받았다. 텔레비전에서 보고 눈물이 계속 났다.”

이준구 마스터는 요즘 청력도 많이 떨어진 듯했다. 20분 가까이 전화기 넘어 들리는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기자는 “올해 안에 선생님 계신 미국에서 뵙자”고 했다. 이준구 마스터는 “요즘 아시아엔 잘 되냐”며 “열심히 만드니 잘 될 거라고 믿고 나도 기도하겠다”고 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