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구 칼럼]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행복하길 원하십니까?

이렇게 해보십시오. 진실한 마음으로 살면 마음이 아름다워집니다.

마음이 아름다우면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죠. 사랑을 받으니 행복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행해지는데도 길은 있습니다. 거짓말을 하십시오. 추해지기 마련입니다. 추한 사람은 미움받기 십상입니다. 모두가 날 미워하니 불행해질 수밖에요.

나는 미국에 60년 이상 살면서 태권도 보급에 생애를 다 바치고 있습니다.

태권도를 오래 하다보니 누가 공격해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팔, 다리가 반응하며 몸을 막아냅니다. 그 비결은 지식이 아니라 바로 기술과 습관에서 온 것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 오랜 동안 연마하고 몸에 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오랜 태권도 연마를 통해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선’은 실천을 통해서만이 완성될 수 있습니다. 머릿 속에서만 선한 것을 생각하고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것은 선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종교인들이 입으로만 “선하라, 착한 일 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자신들이 모범을 보여야 진정한 종교지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실천은 하지 않고 입으로만 떠드니 세상이 온통 대립하며 편안한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세 가지 대립이 가장 심각합니다.

우선 요즘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사상의 대립’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의 사상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명쾌한 진리를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해의 대립도 심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양보하는 미덕이 조금만 있어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끝으로 감정의 대립은 사랑을 터득하면 풀릴 수 있습니다. 중동전쟁은 2천년 전 조상들이 싸우던 것을 지금까지 끌어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인간들이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아십니까?

미국 역사상 가장 힘든 시기였던 1929년 대공황 무렵, 이 나라에선 1억명의 인구에게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데 농민 3000만 명이 매달려야 했습니다. 즉 농민 1명이 기껏 3.3명 먹여 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300만 명이 3억 인구를 먹여살리고 있습니다. 농민 1명이 100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생산성이 30배 이상 향상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농업 뿐 아니라 공업 등 모든 분야에서 다 그렇습니다.

1929년 당시엔 하루 8시간 노동했다면 지금은 1/30만 해도 생산량은 같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에겐 불만만 쌓일 뿐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일하는 사람 따로, 과실만 가로채 가는 사람이 따로 있기 때문이지요. 이해와 양보가 없는 탓입니다.

내가 전세계에 125개 태권도장을 세운 것은 운동도 운동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같은 사상, 이해, 감정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서입니다.

1962년 워싱턴DC에 태권도장을 열고 미국 국회의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겉보기엔 별볼일 없는 한국인이 머리 하나는 더 큰 미국 유력인사들의 사범이 된 것입니다.

나는 미국 의원들은 물론 젊은 학생들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우리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이해시키고 공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21살의 체력과 100살의 지혜가 조화를 이루는 인간형’을 지향하는 국제10021클럽의 탄생도 나의 태권도 인생과 맥을 같이 합니다.

AsiaN 독자 여러분.

60년 태권도와 함께 하면서 깨달은 ‘진정성 있고 실질적인’ 이상세계(True Utopia)를 소개하려 합니다.

영어사전에도 없는 ‘Trutopia’ 라는 새로운 단어로 설명하는 True Utopia 세계로 저와 함께 떠나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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