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되어 떠나신 이준구 사범님, 그곳서 트루토피아 꼭 이루소서”

이준구 총재(왼쪽)와 김영식 교수

[아시아엔=김영식 남부대 교수, 웃음박사] 5월 첫날 미국 태권도의 대부이신 이준구 사범님의 타계 소식을 들었다. 무술계의 선배이며 필자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이준구 사범님을 기억하면서 사범님의 영전에 추모의 글을 올린다.

물론 이준구 사범님에 대한 찬사는 끝이 없을 것이다. 2007년 10월 필자는 서울에서 강연을 마치고 지방으로 내려가다 전화 한통을 받았다. YK 양시헌 대표는 다급한 목소리로 이준구 사범님께서 나를 만나고 싶어하신다고 했다. 한국에 오시는데 한국의 웃음박사를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평소 존경하는 큰 어르신께서 나를 만나자고 하다니, 급하게 차를 돌려 서울 여의도로 향했다. 작은 식당에서 만난 사범님은 환한 미소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그리고 당신께서 평생 무도인으로 살아오면서 느끼신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풀어갈 진선미(眞善美) 사상에 대해 말씀하셨다. 사범님은 한국에 당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실천하는 무도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반가워 하셨다.

그 인연으로 몇 차례 이준구 사범님을 뵐 수 있었다. 국제지도자연합 회원들과 함께 복지시설을 방문하고, 국제10021의 세계화를 위한 의견도 나누었다.

그때 필자는 이준구 사범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렸다. 사범님의 진선미 사상을 광주광역시의 시민들에게 강연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이면서 국제적인 인권도시라고 설명을 드렸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범님에게 광주라는 곳은 좌익들이 사는 곳이라는 생각이 더 많았다. 필자는 “사범님의 진정한 진선미 사상은 광주에서 꽃 피워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씀드리면서 일이 추진되었다.

2007년 11월6일 이준구 사범님은 광주 땅을 밟으셨다. 실로 50년만이었다. 상무대에서 장교교육을 받은 후로 처음이라고 했다. 필자는 반가운 마음에 광주 톨게이트 앞에 서서 그분을 맞이했다. 깜짝 놀라셨다. 약속한 장소로 가면되는데 여기까지 나와서 기다려 주느냐고 했다. 필자가 “큰 사범님을 모시는데 이 정도 예의를 갖추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리자 크게 웃으셨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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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필자가 운영하는 한국웃음요가연구소에 들러 다담(茶談)을 나누면서 무도인이 차를 가까이 하고 웃음을 연구하는 모습에 크게 기뻐하셨다. 먼저 “우리 기념사진 찍자”고 하실 정도로 그분은 마음이 너그러웠다. 박광태 당시 광주시장을 예방하고 나서 5·18국립묘지 참배를 안내했다.

세계적인 태권도 대부께서 5·18 영령들에게 고개 숙여 예를 표하면서 기념관을 둘러보시고는 당신께서 생각했던 광주에 대한 편견을 그 자리에서 지워버리셨다. “이제 광주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말씀을 듣는 내 가슴에선 뜨거운 눈물이 올라왔다.

그는 전남대에서 광주 지역 CEO들을 대상으로 ‘건강과 행복의 원리’라는 주제의 강연을 하시면서 발차기와 격파시범을 보이셨다. 당시 76세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유연성과 파워를 갖고 계셨다. 그는 20대의 열정을 가슴에 품고 강연하며 아이와 같은 환한 웃음을 선사하셨다.

고인이 되신 고 이준구 사범님께서 후배들에게 말씀하신 진실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은 이제 우리의 몫이 되었다. 광주의 평화정신이 이 사범님의 ‘진실한 세상 만들기 운동’(TRUTOPIA)과 함께 이어지기를 다시 한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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