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섭의 프로모션 이야기⑤] 노량진 컵밥과 명동 노점상서 배우는 ‘공존전략’
[아시아엔=이원섭 마컴 빅데이터 큐레이터] 컵밥은 노량진 공시촌(공무원시험)에서 크게 유행해 대기업 프랜차이즈에서도 개발해 판 포장마차형 간편 식사 메뉴다. 대부분 2000원 수준으로 각종 학원과 취업준비생이 많은 노량진에서 주요 끼니로 자리잡았다.
동작구청 통계에 따르면 하루 평균 2500~3000개 정도의 컵밥이 팔린다. 노량진 수험생 5만명(중앙일보 추산) 중 17~20명 중 1명꼴로 하루에 한번 컵밥을 먹는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 작년에 주변 식당 상인들이 자기 손님들을 포장마차 컵밥집에 빼앗긴다고 판단해 동작구청에 컵밥 판매금지를 요구해 컵밥집 단속이 시작됐다. 이후 지난해 10월 말 장사가 잘 되던 거리에서 밀려나왔다. 지금은 학원가와는 조금 멀어진 새로운 특화거리로 전부 이전해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당연히 이전에 위치했던 학원가와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주요 고객인 노량진 학원생들의 발길이 끊기고 있다.
비슷한 사례가 또 발행했다. 중국인 관광객, 일명 요우커(遊客)를 대상으로 명동에서 각종 먹을거리와 작은 소품들을 파는 노점상들을 주위 점포들이 장사가 안 된다고 이 노점들을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길거리 간식을 사먹으니 점포세와 세금을 내고 운영하는 그들 가게로 손님들이 들어오지 않아 매출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즉 노량진 컵밥처럼 자신들 고객을 노점상에게 빼앗긴다는 논리다.
노량진 학원가의 컵밥 노점상과 명동의 노점상들이 똑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거다. 그렇다면 무허가 노점상 단속을 요구하며 컵밥 집이 사라지면 자기들 몫이 될 거라고 생각했던 점포들 매출은 늘었을까? 또 명동의 노점상들을 몰아내면 그들의 기대대로 매출이 오르고 관광객들이 자신의 점포로 들어올까?
이미 노점상을 철거하고 컵밥거리를 만들어 이주해 다시 영업을 하고 있는 컵밥의 경우를 보면 이런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잘 보여준다. 컵밥 노점상을 멀리 몰아내 자신들 점포 앞에서 영업을 못하게 하자 거리가 멀어진 노점상들만 타격을 입은 것에 그치지 않고 그동안 북적북적하던 거리가 한산해지자 기존 점포들도 동시에 매출이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컵밥거리로 노점상들이 이동한 두달이 지난 시점에서 대부분의 주변 식당들은 기대했던 매출이 늘지 않았고 오히려 매출이 줄었다는 곳도 있다. 어느 식당 주인은 “컵밥거리 풍경을 구경하러 오던 사람들 발길이 뜸해져 유동인구 자체가 줄어든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면 명동 노점상 현상은 노량진 컵밥 사례와는 다를까? 아니라고 본다. 똑 같은 결과로 식당도 노점상도 모두 손해를 볼 거라고 예상한다.
컵밥을 애용했던 한 시험준비생은 “돈 없어서 컵밥 먹는 건데…”라고 했다. 또 다른 애용자는 “노량진 식당 대부분이 카드 안 받아 안 갔는데”라며 기존 식당들의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이 애용자들 말의 속뜻을 보면 컵밥 고객과 식당 고객은 애초 다르게 구분되어 있었다는 거다. 즉 식당에 갈 고객이 컵밥으로 간 게 아니었다. 소위 말하는 타깃 고객이 서로 다른데 경쟁자로 인식하고 몰아내 상권 자체가 아예 침체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명동의 요우커들은 노점에서 먹는 것은 간식이고 정식은 식당에서 먹게 되어 있는데 노점상들이 고객 유인의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걸 모르고 당장 눈앞 매출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얼마 전 필자 지인 교수가 <IMC 공진화>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저자는 “IMC라는 학문이 발전하는 것은 홀로 자기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 환경들과 여러 관련 학문들과 같이 진화한다”고 했다. 공진화(共進化·co-evolution)는 모든 구성원들이 다른 구성원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함께 진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즉 어느 구성원의 선택은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구성원들의 전략에 대한 최선의 대응에 의한 것이며 생물학적 진화든 기술적 진화든 관계없이 진화는 공진화의 결과물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실제 오늘날 급속하게 발전하는 각종 기술들은 이제 단일 기술이나 제품이 독자적으로 확산되기보다는 복수의 기술이나 제품이 서로 경쟁하면서 확산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론이 노량진이나 명동에 해당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승자독식의 정글경제는 지금의 인더스트리4.0 세상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본다. 공존의 경제가 서로를 다 살리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량진이나 명동 노점상과 식당점포 간 분쟁은 승자독식의 정글경제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상대를 경쟁자로만 본다면 당연히 어느 한 쪽이 패배하면(물러나면) 승자(남은)가 경쟁자의 것까지 획득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들이 만들어 준 시장까지 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략경영의 대표 학자이자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Michael Porter) 교수는 <경쟁세력 5모델 모형>(Five Forces Model)에서 전통적 경쟁자(Traditional Competitors), 신규시장 진입자(New Market Entrants), 대체재(Substitute Products and Services), 고객, 공급자의 5개 경쟁세력이 기업 운명을 좌우한다고 했다. 이 측면에서 노량진과 명동을 보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알 수 있다.
자유경쟁 사회에서는 항상 새로운 경쟁자가 나오게 되어 있다. 마이클 포터는 이 경쟁자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좋은 경쟁자’도 있고 ‘나쁜 경쟁자’도 있다는 것이다. 좋은 경쟁자는 경쟁을 통해 전체 시장의 파이를 키워주는 역할을 하는 반면 나쁜 경쟁자는 제로섬 게임을 통해 기존시장을 빼앗아 간다는 주장이다.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는 시장이 현재 어떤 단계에 있느냐를 파악해야 나온다. 시장이 성숙이나 포화단계라면 동일 시장의 파이를 나누어 먹어야 하기에 경쟁자는 시장 잠식을 초래한다. 하지만 초기나 성장 단계에서는 경쟁자의 등장은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된다. 노량진과 명동의 경우는 좋은 경쟁자 관계였는데 잘 못 판단해 나쁜 경쟁자로 몰아 시장 파이를 스스로 줄이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경쟁은 기업을 더 강하게 만드는 좋은 작용을 한다. 경쟁이 있으면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노력을 하는 자극이 되는 순기능을 한다. 경쟁을 통해 한발 더 발전하게 된다. 컵밥에 왜 고객들이 환호했는지, 또 길거리 간식에 중국 관광객들이 환호했는지 그 숨은 코드를 찾는 노력을 했다면 이 둘 간에는 공진화가 일어났을 거다. 더 나은 대체재나 서비스를 개발했다면 더 많은 고객들이 몰려 이 시장에 더 많은 고객이 생기고 공급자가 늘어났을 거다. 시장은 생물이다. 언제나 살아 움직이고 크지 못하면 도태가 되고 사라지고 만다.
예전 회사에 다닐 때 회장께 들었던 말로 마무리한다. 일명 ‘메기론’이라 불리는 것아더, “수조에 미꾸라지의 천적인 메기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가 모두 죽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미꾸라지들은 더 활발하고 건강해진다.”
어차피 시장은 경쟁을 통해 성장한다. 더 큰 성장을 바란다면 경쟁은 피하고 숨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미꾸라지처럼 더 건강하게 살아남는 지혜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