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50년-‘병합’조약의 합법성 논쟁②] 합법·불법 관련 국제법적 쟁점

[아시아엔=윤대원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 한국병합과 관련한 한일간의 본격적인 학술적 논쟁은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지 않고 한국병합을 합법이었다는 일본의 주장에, 1990년대 이래 한국 측에서 본격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한국병합의 합법’을 주장했던 일본정부의 입장은 1995년 무라야마 담화 이후 공식적으로는 ‘유효부당론’(또는 ‘합법부당론’)으로 바뀌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합법의 근거로는 하나는 병합조약이 국제법적으로 합법이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미국, 영국 등 제3국이 이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다만 조약체결 과정에서 “일본이 군사력을 배경으로 정치적 간여와 경제적 압박을 가한” 부당한 점이 있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국제법이 당연히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이때 적용될 국제법에는 “사실들이 발생한 시기에 그것을 규율하고 있던 국제법이어야 한다”는 ‘시제법의 원칙’이 강조되었다. 즉 한국병합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당시의 국제법인 조약법에서 조약의 무효원인을 규율하는 규칙을 적용하여 불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주된 쟁점의 하나는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박 여부이고, 다른 하나는 조약 체결 과정의 절차와 형식상의 하자 여부이다.

한국병합 관련 조약들이 체결 될 당시는 1969년의 비엔나협약과 같은 보편적인 국제법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법실증주의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 논쟁에 적용될 조약법의 규칙들은 실제 사례에 대한 분석 즉 실증을 통해서 보편적 규칙을 확정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러나 실제 논쟁에서는 이러한 실증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당시 동서양의 대표적인 국제법학자들의 저서를 검토하여 다수 의견을 따르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쟁점은 ‘강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의 효력 여부이다. 당시 국제법학자의 다수 의견은 ‘국가 대표자에 대한 강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은 무효이지만 국가에 대한 강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은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박이 무효인 이유는 조약 역시 계약법과 마찬가지로 체결권자 상호간에 ‘자유로운 합의’ 즉 ‘동의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데 강박은 이를 침해한 것이기 때문에 불법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논자 사이에 조약의 유·무효의 기준이 될 이 강박에 대한 해석 내지 평가가 서로 엇갈린다는 것이다.

한국병합 관련 조약과 관련한 강박의 ‘역사적 사실’은 ‘을사늑약 체결 당시 일제가 고종의 집무실인 수옥헌 안에까지 총칼을 찬 헌병을 배치하고 대신들을 위협한 것’, 데라우치가 병합늑약 체결에 대해 “군대, 경찰의 위력과 끊임없는 경비가 간접적으로 다대한 효력을 나타냈다는 것 역시 다툴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한 것, 또한 조약 체결 당시 용산에 주둔했던 기병연대 대위 요시다 겐지로(吉田源治郞)가 “원래 기병연대를 용산에 초치한 이유는 병합을 위해 위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예기한 때문인 것은 명백하다”고 한 것 등이다. 이들 사실은 일본이 한국에 군사적 압력을 가한 것은 자명하지만 과연 이것이 당시 국제법상의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박’에 해당하는가 하는 해석과 판단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 일본의 국제법학자 사카모토 시게키(坂本茂樹)는 조약을 무효로 하는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박은 “국가대표자에 대해 과거의 잘못된 행적을 폭로한다든가 권총을 들이대는 등의 협박”을 하는 “극한 사태”에 국한된다고 하며 그 이외의 강박에 의한 조약 체결은 유효하다고 하였다. 즉 을사늑약이나 병합늑약은 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합법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국가는 단체인격이므로, 국가에 대한 강제라 할 경우 구체적으로는 국가원수나 대신이라고 하는 직무상의 기관에 강제가 가해졌을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조약의 무효 원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강국이 약국에게 자신의 의사를 강제하고자 하여 국가원수나 대신이라는 기관에 가하는 강제와, 무효 원인으로 되는 개인에 대한 강제를 구분하는 기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라며 판단 기준의 불명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반면 불법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앞서 지적한 세 가지 강박 사례가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결국 국가대표자에 대한 위협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박’에 다름아니라고 하며 강박의 정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했다.

한편 당시 국제법학 가운데 소수 의견이지만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박만을 무효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당시 국가에 대한 강박이 유효하다는 것은 제국주의 시대인 당시는 전쟁이 불법이 아니었고 전쟁을 ‘인도적’으로 종결짓기 위해 체결된 평화조약 내지 강화조약에 해당하는 예외적 인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병합관련 조약은 평화조약 내지 강화조약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에 대한 강박에 해당하여 불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대표자에 대한 강박이 당시 국제법학자들의 다수 의견이지만 강박의 정의와 대상 등에 적용되어야 할 국제법상의 기준 자체에 이견도 존재하고 있다.

두 번째 쟁점은 조약의 무효원인으로서 절차나 형식상의 하자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는 을사늑약의 경우 조인서 정본에 표제(조약명칭)가 없는 점, 전권위임장이나 비준서가 없는 점, 외교권·내정권과 같은 중대한 조약을 정식조약(treaty)이 아닌 격식이 낮은 약식조약으로 체결한 점, 각서(Memorandom)로 체결된 조약을 외국에 통지할 때 협약(convention)으로 고친 행위, 통감의 일본정부 대표자로서의 서명 자격 문제 그리고 조약 체결 과정에서 대한제국의 국내법을 위반한 행위, 외무대신 직인 및 국새의 강탈 행위 등등이 논쟁의 대상이다.

한국병합 관련 조약 체결 당시의 동서양의 대표적인 국제법학자들의 저술을 검토한 한 연구에 따르면, 조약의 무효원인으로서 형식이나 절차상의 하자를 규율하는 국제법에 관해서는 논자들 사이에 견해의 대립이 없는 것으로 보았다. 즉 조약의 명칭 여하로 조약의 성립 여부 또는 유무효를 논하기 어렵고, 일정한 직책에 있는 사람은 전권위임장 없이 조약을 체결 할 수 있으나 직책상의 권한을 넘는 조약을 체결할 수 없고 일정한 직책(외무장관이나 대신)에 있지 않는 사람이 전권위임장 없이 체결한 조약은 무효이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조약은 비준에 의해 발효되며 당시의 조약 관행상 모든 조약은 정식조약으로 체결되는 것이 원칙이며 표제 없는 조약은 국제적 관행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즉 당시의 국제법에 비추어 볼 때 조약은 체결 권한을 정당하게 위임받은 대표에 의하여 교섭을 통하여 체결되어야 하며 따라서 체결대표에 대한 전권의 위임 여부가 조약의 효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정식조약은 비준되어야 한다는 것 등을 유무효론 모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도 불구하고 각 항목에 대해 견해가 서로 대립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런 기준을 적용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 내지 분석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한일 사이에 진행된 국제법을 둘러싼 유·무효론의 논쟁을 보면, 어떤 합의나 결론에 도달하기에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이런 문제점의 가장 큰 원인은 1969년 빈조약과 같은 명확한 국제법적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관습국제법이라고는 하나 조약 사례를 하나하나 실증적으로 분석하여 보편적 사례로 확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근거한 당시의 대표적 국제법학자의 저술 역시 주관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둘째, 논자에 따라서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 판단 기준에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유효부당론을 주장하는 운노의 경우 강박 문제에서는 사카모토의 견해를 받아들여 국제법적 기준을 강조하다가 절차나 형식상의 문제에서는 1924년 일본 외무성이 분류하고 정한 조약 체결 제도를 기준으로 삼는 등 국내법의 적용을 주장했다.

셋째, 가장 큰 문제는 당시의 국제법을 유·무효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점이다. 당시의 국제법은 제국주의시대 식민모국이 식민지를 개척, 지배하면서 만들어진 법으로 곧 ‘식민 침략을 합리화하기 위한 강자의 법’이다. 이 법을 피식민지에 무비판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것이다.

결국 역사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강자의 법’인 당시의 국제법을 기준으로 한국병합의 합법을 주장하는 유효부당론에, 같은 법 형식 논리로 대응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가 하는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다. 현재 평행선이나 다름없는 이 논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논쟁의 판단 기준이 되고 있는 국제법에 대한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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