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50년 ‘병합조약’ 합법성 논쟁 토론문] “병합 따른 일제지배의 실제 변화 밝혀야”
[아시아엔=조시현 전 건국대 부교수(국제법)] 윤대원 서울대 교수의 글은 지난 2010년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활발하게 전개된 병합조약에 관한 불법무효론과 합법부당론 사이의 논쟁이 갖는 함의와 과제에 대한 적극적 인식에서 그 간의 논의 상황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필자가 말하는 “불법의 흔적”들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실증적인 논의하면서 국제법과 역사인식에 관한 학제간 연구의 귀감이 된다고 생각된다.
병합조약의 체결과정을 역사적으로 규명하고 당시의 국제법에 비추어 판단하려는 시도는 현재의 한일관계의 토대가 되는 한일기본조약에서의 한 쟁점이 된다는 측면에서 실천적인 중요성을 가지지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제가 교착한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문제들을 제기한다고 할 것이다.
토론자로서는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지만 병합조약의 효력 문제를 일제의 국권침탈내지 식민지지배의 과정에서 군사력과 같은 무력의 동원이 이루어졌다는 맥락에 위치시킬 필요는 없는지, 당시 한일관계는 통상적인 국가 간의 관계에서 벗어난 것으로, 일제의 한국 지배에 조약이 진정으로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일본군이 진주한 1904년이래의 여러 조약체결 또한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방법으로 일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등에 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병합조약에 관한 논의는 일제의 식민지획득 과정에 수반된 총체적 불법성의 한 단면으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병합조약의 체결을 둘러싼 역사적, 법적 논의에 있어서 그 동안 당사자의 문제나 조약체결능력 문제는 제기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조약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체결되는 만큼 당시 한국의 법적 지위가 국제법상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가 선결적으로 문제될 수 있다. 일제의 침략으로 이미 주권을 상실하였다고 한다면 고종과 순종을 정점으로 하는 대한제국 정부의 실체는 무엇인지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제국 일본이 한국 지배를 열강들로부터 순조롭게 승인받아야할 외교적, 군사적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문제를 접근하면 어떤 역사상이 구축될지도 궁금하다.
일제의 침략에 관하여 전쟁 일반과 식민지전쟁에 관한 당시 국제법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하는 문제 역시 탈식민주의와 식민지지배책임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규명되어야할 과제라고 생각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벨기에나 네덜란드는 변변한 전투도 없이 나치독일에 의하여 점령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은 평화에 반하는 죄 즉 침략의 범죄로 단죄한 바 있다. 당시의 국제법에 있어서 전쟁에 수반된 전투행위가 볼만하다고 할 것이 없이 단기간에 소규모로 그친 경우뿐만 아니라 전투 자체가 없었다하더라도 법적인 의미의 전쟁이 성립될 수 있었다.
대한제국의 경우에 있어서도 한 나라의 주권과 국토가 군사력의 압력에 의하여 다른 나라에 의해 철저하게 유린되어 병탄되었을 때 전쟁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겠는가. 한국 근대사에 있어서 ‘일제 강점’이라는 성격 규정은 일제의 침략이 어떤 방식으로 통상적인 전쟁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교묘하게 국권을 잠식해 나갔는가에 대한 규명을 통하여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고, 병합조약의 역사적 의미 또한 이러한 식민지화의 맥락 속에 놓을 때 더 명확하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식민지화 과정이 병합조약만이 아닌 그 이전에 체결된 일련의 조약들을 거쳐왔다는 것이 갖는 의미를 밝히는 데에 있어서 주권을 조각내어 일제에 점진적으로 이양하는 과정과 병합조약 체결로 일제 지배의 외관만이 아니라 실질에 있어서 어떠한 변화를 가져온 것인지에 관한 제도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 대하여 좀 더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