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50년-강제동원 대법원 판결③] 미쓰비시와 신일철 소송, 대법원 vs 하급심 판단 어떻게 다른가?
[아시아엔=장완익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 소송과 관련한 대법원과 하급심 판단은 어떻게 다른가??
가. 양 소송의 차이점
(1)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부산에 연락사무소가 있어서, 부산지방법원에 제소하였으며, 소송 서류도 연락사무소로 하면 되었기 때문에 송달 관련 기간이 짧았다. 반면에 신일철주금은 한국 내에 아무런 주소지가 없어서 결국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소하였고, 소송 서류를 일본 본사로 송달하여야 했기 때문에 송달 관련 기간이 상당히 길었다.
(2)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는지가 문제가 되어 소송 도중인 2002년 10월 서울행정법원에서 문서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을 진행하게 되었고, 행정 소송의 경과를 지켜보기 위하여 소송이 상당 기간 중단되었다. 반면에 신일철주금 소송은 2005년 1월 위 행정 소송이 종료된 이후인 2005년 2월 제소하였고, 한일수교관련 문서가 같은 해 8월에 공개되어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한 논의가 심도 깊게 진행되었다.
(3)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1심에서는 일본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원고가 1명 있었으나, 항소심부터는 일본 소송에 참가한 5명만이 원고로 참여하였다. 이에 반하여 신일철주금 소송은 1심에서 일본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원고가 3명이었으나, 1심 패소 후 1명이 항소하지 않아서, 항소심부터는 일본 소송 참가 원고 2명과 참가하지 않은 원고 2명 등 모두 4명이 소송을 진행하였다.
(4)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1심 제소 시에는 일본 소송이 항소심 진행 중이었다가, 항소심 계속 중에 일본 최고재판소의 확정판결이 나왔으나, 신일철주금 소송은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 확정판결 후에 한국에서 소송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1심에서는 일본 판결의 승인 문제가 크게 쟁점이 되지 않다가, 일본 소송이 확정된 후인 항소심에서 문제가 된 반면에, 신일철주금 소송은 1심부터 외국 판결을 승인하여야 할지 여부가 큰 쟁점이 되었다.
또한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항소심부터는 원고들 모두가 일본 소송에 참가한 피해자들뿐이어서 일본 판결을 승인할 경우 더 이상 다른 쟁점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지 않았으나, 신일철주금 소송은 항소심 이후에도 일본 소송에 참가하지 않았던 원고가 2명 있었기 때문에 일본 판결을 승인한다 하더라도 이는 일본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원고에게는 그 효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쟁점에 대한 판단을 하여야 하였다.
(5)미쓰비시중공업 소송은 불법행위에 따른 위자료 1억원과 임금 등 미불금 100만원을 합한 1억 100만원을 청구하였다가 파기환송심에서 미불금 청구는 취하하였다. 신일철주금 소송은 위자료로 1억원만 청구하였고 따로 미불금을 청구하지는 않았다.
나. 하급심 판단
(1)미쓰비시중공업 소송
미쓰비시중공업은 1심에서 구 미쓰비시와 별개 회사라는 주장을 하였지만, 재판부는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 등 일본 국내법은 전후 처리를 위한 특별한 목적으로 제정된 기술적인 입법에 불과하고, (중략) 구 회사가 피고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회사의 인적, 물적 구성에는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던 사실이 인정되므로, 비록 위와 같이 일본국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구 회사가 해산과 제2회사 3사의 설립 및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피고로 변경된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 회사와 피고 사이에는 그 법인격의 동일성이 유지되어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이는 앞서 든 증거에서 나타나듯이 피고 스스로도 구 회사를 피고의 기업 역사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있는 점에서도 확인된다)”고 판시하였다.
또한 중복제소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는 “아직 이 사건 전소에 대한 일본국 최고재판소의 상고심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본국 최고재판소가 향후 어떠한 법적 논리를 전개하여 위 원고들의 청구를 판단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고, 아울러 이 사건 전소에 대한 히로시마 지방재판소 판결 이외에 다수의 과거 일본국 재판소의 판결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일본국 최고재판소가 위 원고들과 같은 재판 피징용자들의 손해배상 등 청구에 관한 판단을 함에 있어 그 판단의 기초가 되는 대한민국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나 일본국 또는 그 국민에 의하여 자행되었던 과거의 행위에 대한 평가, 법령의 적용 및 해석 등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법원과 그 견해를 달리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사건 전소에 관하여 일본국 재판소가 결론 내린 확정판결의 효력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공익이나 정의관념 및 국내법질서 등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는 결과를 전혀 예상 못할 바 아니므로, 결국 이 사건 전소에 대한 일본국 재판소의 확정판결이 대한민국에서 당연히 승인될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전소가 일본국 최고재판소에 계속 중이라는 사정만으로 곧 이 사건 소가 중복제소에 해당하여 부적법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이 사건 청구원인으로 주장하는 사실관계의 존부를 판단하지 않고 먼저 소멸 시효가 완성되었다는 피고의 항변을 먼저 판단하기로 하고, 소멸 시효 기간 경과를 이유로 원고 청구를 기각하였다.
2심에서는 원고 5명 모두가 일본 소송의 원고였기 때문에 재판부는 일본의 종전 소송 확정 판결의 승인가능성과 관련하여 “항소심 판결에서 징용에 따른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청구가 인정될 여지가 있고,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나 미지급 임금 등의 존재 자체는 시인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종전 소송 확정판결을 승인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어긋난다고 할 수 없고,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침탈하고 지배하면서 피해를 끼치는 등 양국 및 그 국민들 사이에 과거사에 대한 평가가 엇갈릴 뿐만 아니라 감정이 좋지 않다는 사정만으로 달리 볼 수 없다. (중략) 일본국 재판소의 종전 소송 확정판결은 대한민국에서 그 효력이 승인된다고 하겠고, 이 사건 청구가 종전 소송의 청구와 동일한 이상 이 법원으로서는 기판력에 따라 그와 모순된 판단을 할 수 없으므로, 원고들의 청구는 더 나아가 살필 것 없이 이유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와 같이 1심에서는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항소심은 일본 확정판결의 기판력을 이유로 청구를 기각하였으며, 쟁점이 되어 한일회담 문서공개까지 이끌었던 한일청구권협정에 관하여는 정작 아무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
(2)신일철주금 소송
신일본주금 1심 판결은 일본 소송에 참가하였던 원고들에 대하여는 “일본 판결의 내용이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결국 일본의 위 확정 판결은 우리나라에서 그 효력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일본 소송에 참가하지 않았던 원고들에 대하여는 구 일본제철이 원고들을 강제노동에 종사하게 한 것이 불법행위이어서, 이들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하여 위자료청구권이 있으며, “대한민국과 일본 양국은 청구권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상대국이 취하는 국내조치에 대하여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고 재산, 권리, 이익, 청구권에 대하여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기로 하며 상대국이 어떠한 국내조치를 취할지는 각 국민의 결정에 맡기기로 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따라서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청구권 자체가 소멸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가사,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그대로 계승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점과 구 일본제철과 상호가 유사한 점 등을 들어 구 일본제철과 피고의 법인격이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하여 청구를 배척하였다. 또한 부가적 판단으로 청구권의 시효가 이미 소멸되었고, “구 일본제철과 법인격이 동일하지 않고 구 일본제철의 채무를 승계하였다고도 볼 수없는 피고에 대하여 채무 이행의 거절을 인정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신일철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결국 일본 소송에 참가하였던 원고들이던 그렇지 않은 원고들이던 모두 구 일본제철과 신일철의 법인격이 동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패소한 것이다.
항소심에서는 법인격 동일성이 많이 다투어졌으며, 이에 대하여 재판부는 1심과 같이 판단하면서, 회사경리응급조치법 등이 국제법 질서 또는 우리나라 헌법에 위반하여 무효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제2회사는 일본 정부에서 제정·시행한 회사경리응급조치법 등에 따라 설립된 것이므로 이를 가지고 구 회사가 채무를 면탈할 목적으로 제2회사를 설립하였다고 할 수는 없다는 이유를 추가하여 결국 구 일본제철과 신일철의 법인격 동일성을 부정하였다.
다. 대법원 판단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에서는 소멸시효 완성과 일본 판결을 승인하여 원고들이 패소하였고, 신일철주금 소송에서는 위 사유 이외에도 법인격이 동일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신일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하급심과 판단을 달리 하였다.
(1)일본 판결의 승인 여부
대법원은 “일본판결의 이유에는 일본의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규범적 인식을 전제로 하여,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국민징용령을 한반도와 원고들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효하다고 평가한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제헌헌법은 그 전문(前文)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상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라고 하고, 부칙 제100조에서는 “현행법령은 이 헌법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한 효력을 가진다”고 하며, 부칙 제101조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현행헌법도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판결 이유는 일제강점기의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판결 이유가 담긴 일본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결과는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일본판결을 승인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대법원은 한국 헌법의 해석을 통하여 일제강점기의 일제의 한반도 지배를 불법이라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이에 덧붙여 한일청구권협정의 성격을 판시하면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을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규정하였다. 결국 대법원은 강제동원을 ‘일제가 한반도와 한국인을 식민 지배를 유지하고 침략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는 신일철주금의 아래 파기환송심 판결 이유에서 재차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일본 정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불법적인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서 일본의 제철소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조직적으로 인력을 동원하였고, 구 일본제철은 철강통제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일본 정부의 위와 같은 인력동원정책에 적극 공모하여 인력을 확충하였는데, 원고들은 당시 한반도와 한국민들이 일본의 폭압적 지배를 받고 있었던 상황 아래에서 장차 일본에서 처하게 될 노동 내용이나 환경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한 채 일본 정부와 구 일본제철의 위와 같은 조직적인 기망에 의하여 동원되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더욱이 원고들이 성년에 이르지 못한 어린 나이에 가족과 이별하여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열악한 환경에서 위험한 노동에 종사하였고, 구체적인 임금액도 모른 채 강제로 저금을 당하였으며, 일본 정부의 혹독한 전시 총동원체제 하에서 외출을 제한당하고 상시 감시를 당하여 탈출이 불가능하였으며 탈출시도가 발각된 경우 혹독한 구타를 당하기도 하였는바, 이러한 구 일본제철의 행위는 당시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이 경험칙상 명백하다”고 하였다.
(2)법인격의 동일성 여부
대법원은 신일철주금 소송에서 “구 일본제철이 피고로 변경되는 과정에서 피고가 구 일본제철의 영업재산, 임원, 종업원을 실질적으로 승계하여 회사의 인적, 물적 구성에는 기본적인 변화가 없었음에도,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을 위한 일본 국내의 특별한 목적 아래 제정된 기술적 입법에 불과한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 등 일본 국내법을 이유로 구 일본제철의 대한민국국민에 대한 채무가 면탈되는 결과로 되는 것은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에 비추어 용인할 수 없다”, “일본법의 적용을 배제하고 당시의 대한민국 법률을 적용하여 보면, 구 일본제철이 책임재산이 되는 자산과 영업, 인력을 제2회사에 이전하여 동일한 사업을 계속한 점 등에 비추어 구 일본제철과 피고는 그 실질에 있어 동일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여 법적으로는 동일한 회사로 평가하기에 충분하고, 일본국의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구 일본제철이 해산되고 제2회사가 설립된 뒤 흡수합병의 과정을 거쳐 피고로 변경되는 등의 절차를 거쳤다고 하여 달리 볼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위 원고들은 구 일본제철에 대한 청구권을 피고에 대하여도 행사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으며, 미쓰비시중공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판단하여, 구 회사와 피고들 회사와의 법인격이 동일함을 인정하였다. 일본의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 등 일본 국내법을 한국의 공서양속에 반한다고 보고 이를 적용하지 않기로 하고 한국 국내법으로 기업의 동일성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신일철주금 소송의 파기환송심 역시 위 회사경리응급조치법과 기업재건정비법에 관하여 “일본국 헌법의 경우에도 제9조에서 “일본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고국권의 발동으로 인한 전쟁, 무기에 의한 위협과 무력의 행사를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원히 포기한다.”고 규정하는 등 과거 일본 정부가 일으켰던 침략전쟁의 참화에 대한 반성에 기초하여 영구적인 평화를 염원하며 국제사회에서 명예로운 위치에 설 것을 헌법적인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보면, 일본의 과거 침략전쟁의 필요에 부응하여 이루어진 기망적인 모집이나 징용을 통해 인권을 침해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군수업체에게까지 그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사실상 면탈하게 하는 내용의 법률 기타 규범의 효력을 그 문언 그대로 해석하는 것은 일본국 헌법의 가치에 부합하는 해석이라고도 볼 수 없는 점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위 각 법 등 당시의 일본법이 정한 절차는 문명국가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방법에 의한 갱생절차라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위 각 법은 결국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을 위한 일본 국내의 특별한 목적 아래 부당한 채무면탈이 예견됨에도 이를 용인하는 방식으로 제정된 기술적 입법에 불과하여 이러한 일본 국내법을 이유로 구 일본제철의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무가 면탈되는 결과를 수긍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률이 외국법을 적용할 때 고려하도록 정하고 있는 국제적 강행법규 내지 공서에 반하는 것으로 용인할 수 없다“고 적용 배제 이유를 한층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3)청구권협정의 효력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서, 청구권협정 제1조에 의해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은 제2조에 의한 권리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관계가 있다고 보이지 않는 점, 청구권협정의 협상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하여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등에 비추어 보면, 위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아니하였음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도 포기되지 아니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청구권협정에는 개인청구권의 소멸에 관하여 한일 양국 정부의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볼만큼 충분한 근거가 없는 점, 일본이 청구권협정 직후 일본국 내에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및 그 국민에 대한 권리를 소멸시키는 내용의 재산권조치법을 제정·시행한 조치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대한민국 국민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음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이해될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면, 위 원고들의 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개인청구권 자체는 청구권협정만으로 당연히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고, 다만 청구권협정으로 그 청구권에 관한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됨으로써 일본의 국내 조치로 해당 청구권이 일본국 내에서 소멸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이를 외교적으로 보호할 수단을 상실하게 될 뿐이다. 따라서 위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위 원고들은 피고에 대하여 이러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민관공동위원회는 2005. 8. 26.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ㆍ민사적 채권ㆍ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정부ㆍ군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하여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사할린동포 문제와 원폭피해자 문제도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공식의견을 표명하였다. 또한 민관공동위원회는 “청구권협정을 통하여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 3억불은 개인재산권(보험, 예금 등), 조선총독부의 대일채권 등 한국정부가 국가로서 갖는 청구권,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의 자금 등이 포괄적으로 감안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한국 정부는 민관공동위원회 발표이후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특별법을 제정하여 위로금과 미수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특별법 제1조에서 ‘1965년에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과 관련하여 국가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밝혔듯이, 한국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희생자와 유족에게 지원하고 있다고만 하여, 강제동원 및 강제노동 등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이 ‘강제동원 피해보상 문제 해결 성격’에 포함되는지 여부에 대하여 논란이 있었다.
물론 1970년대의 “대일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 및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과 현행 특별법이 그 성격이 유사하므로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으로 한국 국민에 대한 재산권을 제한하여 그에 대한 보상으로 위로금과 미수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대일민간청구권 보상에 관한 법률”에 따라 30만원씩 지급한 피징용사망자에 대한 청구권보상금이나 특별법에 따라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국외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2,000만원의 위로금과 부상으로 장해를 입은 피해자에게는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의 위로금 등을 강제동원 혹은 강제노동에 대한 보상의 성격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성격에 대하여 민관공동위원회가 지적한 바와 같이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므로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강제동원도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여서 협정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곧 청구권협정 제 2조 제1항 등이 재산권을 침해하여 위헌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할 예정이다. 강제동원피해자의 유족인 이윤재씨는 2009년 11월 12일 헌법재판소에 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등이 ‘국가와 별개인 개인으로 하여금 가해자인 일본 정부 및 기업에 재산권을 주장할 수 없게 하여 재산권의 본질적 권리를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소원을 청구하였다(2009 헌바 317). 이 사건은 헌법재판소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최장기 미제사건인데, 김용헌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9월 1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헌법재판소 국정감사에서 이 사건에 대하여 올해를 넘기지 않고 위헌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그리고 서울행정법원이 2010년 6월 18일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에 대해 낸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서울행정법원 2009 아 3734)을 받아들여 현재 헌법재판소가 심리 중인 사건(2010 헌가 74)이 있는데, 이 사건 역시 같은 날 선고할 가능성이 많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한일청구권협정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국내법화 되었으므로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제3항 중 ‘우리나라 국민이 일본국 또는 일본국민에 대하여 갖는 재산, 권리, 이익을 주장할 수 없다’는 부분은 국내법의 문제로서 국민의 재산권 행사를 금지하는 효력을 가진다 할 것이고, 따라서 이를 두고 국가의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일 뿐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국민에 대한 청구권은 제한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하면서 국가가 정당한 보상을 하여야 할 헌법상의 의무가 있으나 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제3항은 청구권 자체를 국가가 수용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국 또는 일본국민에 대한 행사를 제한할 뿐이고 정당한 보상을 통하여 국민의 재산권 침해가 완화될 여지가 충분하므로 위헌의 의심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재판부는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과 관련하여서는 “미수금 피해자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일본국에 대하여 행사하지 못하는 청구권의 범위에 관하여는 미수금 자체의 청구권 외에 강제동원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에 관하여 논란이 있으므로 두 가지 해석 가능성 모두에 대하여 정당한 보상 여부를 검토”하기로 하여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제3항의 문언 및 청구권협정에 대한 합의의사록(I)에 기재된 제2조에 관한 양해사항(”재산, 권리 및 이익“이라 함은 법률상의 근거에 의거하여 재산적 가치가 인정되는 모든 종류의 실체적 권리를 말하는 것으로 양해되었다)의 문언을 근거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일본국에 대하여 행사할 수 없다고 해석할 경우, (중략) 강제동원이라는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관하여는 아무런 고려도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위헌이며, “한일청구권협정의 체결경위, 배경 등에 비추어 한일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제3항을 축소해석하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일본국에 대하여 행사할 수 없는 권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볼 경우에도,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한 재산권의 제한은 수용에 가까우므로 그 보상 역시 완전한 보상에 가까운 것이어야 하는 점, (중략) 제5조 제1항 소정의 1엔당 2,000원이라는 보상기준은 정당한 보상이라 보기 어렵다”며 위헌이라는 의심이 든다고 위헌 여부에 대한 심판을 제청한 것이다.
이 사건은 대법원이 2012년 파기환송하기 약 2년 전인 2010년에 청구권협정으로 한국국민의 재산권이 제한되었다고 판단하면서 제한된 재산권의 범위에 관하여는 결론을 내리지 않아서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기대된다.
헌법재판소의 심리 대상은 헌법소원 사건은 청구권협정 제 2조 제1항 등의 위헌 여부이며, 위헌제청사건의 심리대상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 지원에 관한 법률’ 제5조 제1항의 위헌여부이다. 두 사건 모두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까지 일본국에 행사할 수 없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을 하리라 보이므로, 대법원의 청구권협정에 관한 판단과 일치할지 아니면, 헌법재판소가 청구권협정에 대하여 다른 견해를 밝힐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4)소멸시효 완성 여부
대법원은 신일철주금 소송에서 소멸시효와 관련하여 “구 회사의 불법행위가 있은 후 1965. 6. 22. 한일 간의 국교가 수립될 때까지는 일본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국교가 단절되어 있었고, 따라서 위 원고들이 피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판결을 받더라도 이를 집행할 수 없었던 사실, 1965년 한일 간에 국교가 정상화되었으나,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모두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구권협정 제2조 및 그 합의의사록의 규정과 관련하여 청구권협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일본국 또는 일본 국민에 대한 개인청구권이 포괄적으로 해결된 것이라는 견해가 대한민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져 온 사실, 일본에서는 청구권협정의 후속조치로 재산권조치법을 제정하여 원고들의 청구권을 일본 국내적으로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하였고 원고 여운택, 신천수가 제기한 일본소송에서 청구권협정과 재산권조치법이 원고 등의 청구를 기각하는 부가적인 근거로 명시되기도 한 사실, 그런데 원고들의 개인청구권, 그 중에서도 특히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하지 않았다는 견해가 원고 여운택, 신천수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1990년대 후반 이후에서야 서서히 부각되었고, 마침내 2005. 1. 한국에서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뒤, 2005. 8. 26. 일본의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민관공동위원회의 공식적 견해가 표명된 사실 등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앞서 본 바와 같이 구 회사와 피고의 동일성 여부에 대하여도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일본에서의 법적 조치가 있었던 점을 더하여 보면, 적어도 위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시점인 2005. 2.까지는 위 원고들이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의 해석 등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두 소송은 모두 민관공동위원회가 2005. 8. 26. 청구권협정에 대한 공식 견해를 밝히기 전에 제소한 것이어서 대법원 판결 이후에 추가로 제기된 소송에서 일본 기업들은 ① 민관동동위원회의 공식적인 견해가 표명된 2005. 8. 26. ② 한국의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한 때, ③ 2012년 대법원 판결 선고 이후 “권리행사를 기대할 수 있는 상당한 기간인 6개월” 내에 권리행사를 하지 못하였고, 상당한 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연장할 특별한 사정은 없으므로 피해자들의 권리행사는 소멸시효에 반하여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주식회사 후지코시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재판부는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원고 등과 같은 강제노동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는지에 관하여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고, 청구권협정의 당사자인 일본국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과거 일본국 정부 등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나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사정을 더하여 보면, 원고들이 이 사건 소를 제기할 무렵까지도 원고들에게는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 중략) 다만, 법령의 해석ㆍ적용에 관한 최종적인 권한을 갖고 있는 대법원이 위와 같은 청구권협정에 관한 해석을 천명한 이상, 적어도 대한민국 내에서 원고 등과 같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청구권협정의 해석 등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권리를 사실상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는 소멸하였다고 볼 여지는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원고들이 위 대법원 판결의 당사자도 아니었고, 이 사건과 위 대법원 판결의 구체적인 사안이 동일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에 비추어 볼 때, 원고들이 위 대법원 판결 선고일로부터 민법 제766조 제1항이 규정한 단기소멸시효인 3년 내에 이 사건 소를 제기한 이상, 원고들로서는 그 장애사유가 해소된 때로부터 상당한 기간 내에 권리를 행사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피고의 이 사건 불법행위는 피고가 원고 등의 개인의 존엄성을 부정한 채, 일본국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수행과정에 적극적으로 편승한 반인도적 행위로서, 피고로서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성하고 자신의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자들의 피해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함이 마땅함에도 무려 7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자신의 책임을 부정하고 회피하고 있는 바, 이러한 피고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 원고들에 대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무의 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일정기간 계속된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커져가는 법률관계의 불명확성에 대처하려는 목적에서 인정되는 소멸시효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후지코시 소송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부가적으로 2012년 대법원 판결로 청구권협정의 해석 등과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사실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장애사유가 소멸되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많은 피해자들이 대법원이 선고한지 3년이 경과한 현 시점에서는 제소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불안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