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50년-강제동원 대법원 판결④] 대법원 승소 이후 ‘소송 폭주’는 없어
[아시아엔=장완익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 대법원 판결에 힘을 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다수의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하고 있으며, 일부는 1심 혹은 항소심에서 승소한 상태이다. 그러나 소송이 폭주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추가 소송이 많이 제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가.추가 소송
대법원 판결에 힘을 입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다수의 소송을 한국 법원에 제기하고 있으며, 일부는 1심 혹은 항소심에서 승소한 상태이다. 그러나 소송이 폭주하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추가 소송이 많이 제기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추가 소송 역시 피스비시중공업과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것이 많으며, 새로이 추가 제소된 기업은 주식회사 후지코시 뿐이다.
추가 소송의 대부분은 일본 소송에서 패소한 원고들이나 그 유족들이 제기한 것이고, 아주 예외적으로 일본 소송과 관계없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소는 소송이 있다. 또한 생존 피해자들이 거의 없는 상태여서 그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고있다. 그런데 유족들은 피해자들이 어디로 강제동원 되었는지, 강제동원되어 어떠한 피해를 입었는지 등을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제강점하강제동원진상규명위원회(현 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및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에서 조사한 자료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소송은 일본에 주소지를 둔 일본 기업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국제송달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송달에만 1년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1심에서 승소한다 하더라도 일본 기업이 항소하거나 상고하면 마찬가지로 송달 문제가 발생하여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상태여서 생존 피해자 소송을 제기한다 하여도 그 결과를 알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리라 예상된다. 또한 판결이 확정된다 하여도 한국 내에 재산 등이 없으면 강제집행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일본군위안부들이 2013년 8월 13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조정 신청을 하였으나, 일본 정부는 주권 침해를 이유로 신청 관련 서류를 받기를 거부하고 있어서, 2년째 심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군인, 군속 피해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나.식민지배 책임으로
한국 소송의 쟁점은 일본 소송을 승인할 것인가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으로 적용 대상이 되는지가 되었고, 대법원은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고 강제동원이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여서 일본 판결을 승인할 수 없으며, 청구권협정 협상 과정을 살펴볼 때 식민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강제동원 피해는 전쟁으로 인한 것이지만 식민지배로 인한 것이기도 하여 이중적 성격을 갖고 있다. 대법원 판결 전까지는 일본 소송이든 한국 소송이든 식민지배 책임보다 전쟁 책임이 많이 부각되었는데, 대법원은 더 본질적인 요인으로 식민지배 책임을 지적한 것이다.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올 7월 자신의 회사에서 강제 노동한 미군 포로에게 사과하고, 중국 피해자와 화해를 추진하면서도 한국 피해자에게는 사과나 화해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은 한국의 경우는 일본의 합법적인 식민지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 피해자들에 대하여는 인정한 전쟁 책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식민지배 책임도 없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식민지배 책임과 청구권협정의 연관성 여부에 대하여 심도 있는 판단을 하리라 예상된다.
다.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 재단 현황
2011년 8월 4일 개정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37조에 따라, 2014년 6월 3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재단이 제대로 활동을 하기도 전에 재단설립준비위원 중 일부가 2014년 5월 16일 안전행정부장관을 상대로 재단설립 및 임원임명무효 소를 제기(서울행정법원 2014 구합 9127)하였는데, 2015년 2월 12일 임원임명제로 정관을 바꾼 제13차 재단설립준비위원회에서 이사장의 개표 결과를 믿을 수 없고, 임원임명제에 관하여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에 의한 의결이 있은 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 승소 판결이 났으나, 항소심은 2015년 9월 2일 투표결과가 조작됐다거나 출석 준비위원 과반수 찬성에 의한 의결이 없었음을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고들이 패소하였다.
이러한 쟁송에 휘말리는 바람에 재단은 설립 이후 현재까지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 정부가 재단에 재단 운영 자금을 지원하나 법적 지위가 약하여 100억원을 출연하기로 한 포스코를 제외한 대다수 한국 기업들이 재단에 출연하기를 꺼리고 있어서 피해자 지원이라는 재단의 목적 사업을 충실히 할 수없는 상황이다. 이에 독자적인 재단 설립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치권에서 2014년 5월 22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였으나 심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변호사협회에서도 소송을 통한 피해자 구제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재단설립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글을 맺으며
2012년의 대법원 판결은 일본에서의 연이은 패소 판결에 침체되어 있던 한국 피해자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후 3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판결은 확정되지 않고 있다. 재상고심에서 일본 기업들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으며,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청구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 하며 판결 확정을 어떻게 해서라도 미루려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다.
그동안 2명의 원고가 사망하였으며, 나머지 원고들도 기다림에 지쳐서 나날이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2015년 4월 17일 대법원에 해방 70년, 한일 수교 50년이 되는 올해가 다 가기 전에 ‘법적 싸움의 조속한 종결’을 바란다는 의견서를 제출하였다.
지난 20세기의 식민지배 책임을 21세기에 와서 물어야 하는 것이 한일 사이의 현실이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과 헌법재판소의 청구권협정에 대한 위헌 여부 결정은 식민지배의 책임을 묻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안에 우리가 그 결론을 확인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장완익 변호사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