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원의 훈훈한 세상] 취업준비생들에게 드리는 인생 선배의 당부
취업 목표를 세웠다면 그 비전을 설정해야 한다. 그 방법은 무엇일까?
1.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 종이에 적는다.
2.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가 필요한지 계산해서 구체적으로 기입하라.
3. 이 꿈을 언제까지 이룰 것인지 정하라.
4. 목표를 기한까지 이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을 고민하라.
5.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기, 중기, 단기, 연, 월, 주, 일 단위 계획을 세워라.
6. 실행하고 평가하는 시간을 가져라.
7. 목표를 달성했다면 반드시 보상하라.
8. 삶의 목표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라.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인생의 비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마음 속에 그리는 상상력이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상상을 동원해서 자신의 미래를 그려 본다.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하루하루 생활이 자신의 삶의 비전을 실현하는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자서전을 쓴 빅터 프랭클 박사에게 기자들이 “어떻게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는가?”라고 물었다.
프랭클 박사는 “포로수용소에서 3년 동안 있으면서 동료들과 함께 매일 한 가지 과제를 꼭 실천하기로 했다. 즉 ‘각자가 해방된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를 상상하며 재미있게 동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해방된다면 어떤 일을 하겠는가?’ 하는 서로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듣는 가운데서 현실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비전은 인간의 삶속에 희망을 던져주면서 어떤 난관에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나 비전이 없는 자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생활이 되는 대로일 수밖에 없다. 자살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도 있지만 더욱 문제 되는 것은 바로 자기 삶에 비전이 없다는 증거다.
마군(魔軍)이의 심리적 무기는 방종과 좌절이라고 한다. 마군이는 항상 우리의 지금 처한 상황을 보고 낙심하고 좌절시켜 우리의 비전을 끊어버리려고 한다. 이런 예화가 있다.
마군이 어느 날 부하들에게 인간을 공격하는 각종 무기들을 보여주었다. 마군의 공격무기는 황금, 돈, 명예, 술, 미녀 등등이었다. 그런 무기를 보여주다가 마지막에 가장 애용하는 무기를 보여주겠다며 낡은 도끼를 내보였다.
마군이의 부하 중 하나가 “이런 낡은 도끼로 똑똑한 인간을 어떻게 때려잡습니까?”하고 물었다. 그 때 마군이 “이 도끼로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희망의 줄을 끊어버리는 것이야, 희망이 없는 인간은 신앙도 도덕도 양심도 버리게 되지”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든 세상에서 삶의 의미와 비전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절망을 택할 수도 있고 희망을 택할 수도 있다.
자신에게 닥친 불행한 일에 절망하는 대신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이 비전이다. 인생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상상을 동원해서 자신의 미래를 다시 한번 그려보는 것이다.
한 고등학교의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이 항아리 하나를 교탁 위에 올려놓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이 항아리에 몇 개의 돌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요?” 학생들이 나름대로의 숫자를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교탁 밑에 미리 가져다 놓았던 큼지막한 돌을 꺼내 항아리에 집어넣었다.
항아리는 큰 돌 몇 개가 들어가자 꽉 차버렸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항아리가 꽉 찼습니까?” “네!” 자신감이 넘치는 학생들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선생님은 미소를 띠며 교탁 밑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갈을 꺼내 항아리에 넣고 흔들었다. 어느새 자갈들은 큰 돌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선생님이 다시 물었다. “이제 항아리가 꽉 찼습니까?” 학생들은 멈칫거리더니 “네”하고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다시 교탁 밑으로 손을 넣더니 모래가 든 통을 꺼내 항아리에 부었다. 모래는 자갈들 틈으로 소리 없이 스며들었다.
선생님은 또다시 물었다. “항아리가 꽉 찼습니까?” 학생들은 이번에는 하나같이 “아뇨”라고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며 주전자를 들어 올려 항아리에 물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다. “만약 큰 돌을 먼저 넣지 않았더라면 과연 다른 것들을 넣을 수 있었을까요?”
모두들 그렇지 않았을 거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삶을 위한 목표는 누구나 다 가지고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항아리의 공간처럼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항아리에 무엇을 먼저 채울 것인가?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인생의 목표를 찾아야 한다. 그러면 자갈과 같은 돈과 모래와 같은 명예와 물과 같은 행복은 자연스럽게 채워질 것이다. 큰 인생의 목표를 먼저 채워 놓으면 작은 목표는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마음에 발원(發願)이 없고 향상코자 노력함이 없는 사람은 살았으되 죽은 사람이나 다름이 없다. 큰 서원(誓願)을 세우는 것이다. 서원과 욕심이 비슷하나 천양의 차가 있다.
서원은 나를 떠나 공(公)을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요, 욕심은 나를 중심으로 사(私)를 위하여 구하는 마음이다. 공을 위한 인생의 목표를 세우시면 작은 사적인 목표들은 저절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