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다산’ ‘여유당’·이이 ‘율곡’ ‘우재’의 아호에 담긴 뜻을 아십니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아호(雅號)와 법호(法號)라는 것이 있다. 아호는 예로부터 문인, 학자, 예술가 등의 본이름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을 말한다. 호는 유교 문화권,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서 본명이나 자 이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으로, 사람의 별칭이나 필명(筆名) 또는 별호(別號) 등을 아호라고 한다.
아호는 원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 허물없이 쓰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아무나 호를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학자나 군인, 예술가 등 능력이 출중하거나 큰 명성을 날린 사람이어야만 호를 가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대개 모든 사람들이 각자 호를 가질 수 있다. 다만 주로 유림, 문단 등의 특정 분야에서나 통용되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은 사람의 개성이나 이름을 가지게 될 사람의 성품이나 직업, 취미, 특기를 반영하는 경우를 참작하여 짓는 것이 보통이다. 아호는 남이 지어주는 때도 있으나, 대부분 자신이 직접 지어 필명이나 별명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호는 우아하게 부르는 호칭이니 지역 이름에서 따거나 각자가 지닌 덕목(德目)에서 따면 좋다.
법호(法號)는 성직자에게 붙여 주는 별호다. 원불교에 입교하면 보통급 십계문과 함께 법명을 받게 된다. 그런데 법호는 재가(在家) 출가교도(出家敎徒)간에 공부와 사업에 큰 실적을 쌓은 숙덕교도에게 종법사(宗法師)께서 수여하는 별호다. 원불교에서는 법호를 수여할 때 남자에게는 법호에 산(山)을 붙이고 여자에게는 법호에 타원(陀圓)을 붙인다.
남자에게 ‘산’이라는 법호를 내려주는 것은 산은 힘의 상징으로 법력을 뜻한다. 그러니까 창생을 위해 사무여한(死無餘恨)의 정신으로 무아봉공의 경지에 이른 공인(公人)에게 법계인증(法界認證)의 의미로 법사 자격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교도에게 주는 타원에는 ‘해중산(海中山)’의 뜻이 있다. 타원의 뜻은 ‘보타해중산(普?海中山)’으로 바다 가운데 완만한 산, 즉 ‘섬’을 뜻한다. 산처럼 우뚝하지 않고 섬이나 언덕처럼 원만하다는 뜻이다. ‘타’는 깨달음의 한 표현이다. 산스크리트어로 진여(眞如)란 뜻이다. 그리고 ‘원(圓)’은 우주를 의미한다.
그래서 필자나 아내 사랑초는 부끄럽지만 오랜 세월 진리생활을 해온 공덕을 인정받아 필자는 ‘덕산(德山)’ 그리고 사랑초는 ‘정타원(正陀圓)’이라는 법호를 교단으로부터 받았다. 아마 덕이 부족해 금생에는 덕을 많이 쌓으라는 뜻이고, 정타원은 금생에 더욱 바르게 살라는 뜻이 담겨있는지도 모른다.
500년을 이어 온 조선 선비들의 아호를 살펴보자. 풍류와 품격이 담긴 멋들어진 아호들이 많다.
부모와 스승이 부르는 이름이 달랐고, 처음 만나는 이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름도 있었다. 또한 친한 친구끼리 부르는 이름도 있다. 명(名)과 자(字), 호(號)가 그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독특한 게 호다. 명과 자는 부모나 스승이 지어줘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호는 자신이 마음대로 지어 부를 수 있었다.
‘명’과 ‘자’가 처음부터 타고난 운명이라면, 호는 자신의 의지와 사상, 성격이 담긴 개성적인 삶의 표현이다. 이를테면 호는 조선 선비의 자존심이다. 예를 들어 정도전과 정약용, 이이(李珥)는 세상에 초연하고자 했고,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스스로의 다짐을 호에 담아 표현하곤 했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의 호 삼봉(三峯)은 태어난 충북 단양의 비경 도담삼봉에서 호가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문헌에서는 ‘삼각산 삼봉, 즉 오늘날의 북한산을 가리켜 삼봉으로 지었다’는 해석도 있다.
정도전과 달리 호시탐탐 목숨을 노리는 수구 세력들을 피해 살아남으려고 애썼던 선비도 있었다. 조선 최고의 실학자 여유당(與猶堂) 정약용(丁若鏞)이다. 그는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與),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猶)’는 뜻에서 자신의 호를 ‘여유당’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몰락한 남인 출신으로 정조가 아꼈던 재사(才士) 정약용은 정조가 갑자기 승하(昇遐)하자 노론 수구세력의 표적이 되었다. 스스로 여유당이라는 당호를 내걸어 시시각각 옥죄어 오는 숙청의 피바람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론의 칼바람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여유당은 조선 당파싸움을 드러내는 아호였다.
정약용의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차를 즐겨 마신 자신의 취향을 애처롭게 드러낸 것이다. 유배된 전남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만덕산의 또 다른 이름이 다산(茶山)이었다. 다산이란 호에는 큰 뜻을 펼치지 못한 정약용의 간난신고(艱難辛苦)와 애환이 깃들어 있다.
이이의 호 가운데 율곡(栗谷)과 우재(愚齋)가 있다. 이이는 29세 때 출사한 이후 자신의 직언과 개혁 방책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미련 없이 벼슬을 내던졌다. 이이는 경기도 파주시 율곡 즉, 밤골 마을로 돌아와 안식을 취하곤 했다. 율곡은 이이가 삶의 고비 때마다 몸을 의탁했던 치유(治癒)의 장소였다.
또 어리석은 인재라는 의미의 ‘우재’는 이이의 성격을 드러낸 호다. 과거시험에서 아홉 번이나 장원을 차지해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던 이이도 자신이 어리석다고 한탄했다.
아호는 주위의 학덕 높으신 분에게 부탁을 하거나 스스로 지어도 된다. 법호를 원하거든 많이 부족한 사람이지만 필자 덕산이 안내해 드릴 수 있다. 법호는 아무나 지어드릴 수 없고 진리께서 내려주는 별호이기 때문이다.
우스워 보이는 닉네임 보다는 훨씬 운치 있고 삶의 의지가 돋보이는 게 아호이며 법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