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당호 ‘여유당’의 속뜻은?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조금만 마음에 여유를 가지면 인생에 큰 사고는 면할 일이 많다. 며칠 전에도 보복운전으로 몇 사람이 죽었다. 여유(與猶)란 성급하게 굴지 않고 사리판단을 너그럽게 하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당호(堂號)가 ‘여유당(與猶堂)’이다. 여유의 뜻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도인의 풍모를 갖추지 않으면 감히 쓸 수 없는 말이다. 본래 ‘여(與)와 유(猶’)는 모두 짐승의 이름이다.

‘여’는 의심이 많고, ‘유’는 겁이 많은 동물이다. ‘유’라는 짐승이 하도 겁이 많아, 무슨 바스락 소리만 나면 겁을 먹고 나무위로 기어 올라간다. 그런데, 정작 올라가 놓고는 내려오지도 올라가지도 못하고 그냥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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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초상 <사진=위키피디아>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과거의 훌륭한 선비들을 일컬어 “신중하기(與)는 겨울에 내를 건너는 듯하고, 삼가기(猶)는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 하듯 한다”고 묘사했다. 그러니까 겨울에 내를 건너는 사람은 차가움이 뼈를 에듯하므로 아주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건너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유’는 사방의 이웃이 자신을 엿보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부득이한 일조차 감히 행하려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거북은 초조함을 모른다. 소나기가 쏟아지면 머리를 몸 안으로 집어넣는다. 햇볕이 따가우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간다. 이처럼 유순하고 한가로운 동물은 장수한다. 그러나 맹수는 단명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화를 잘 내고 성급한 사람들 중 장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독일의 한 탄광에서 갱도가 무너져 광부들이 갱내에 갇혔다. 외부와 연락이 차단된 상태에서 1주일 만에 구조되었는데 사망자는 단 한 사람, 시계를 찬 광부였다. 불안과 초조가 그를 숨지게 한 것이다. 사람의 삶에 어찌 좋은 일만 있을까? 오히려 언짢고 궂은 일이 더 많다.

행복한 순간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것이 미덕이다. 그리고 불우하고 불행한 때를 잘 이겨내는 인내가 바로 지혜다. 그러니까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의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비관과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낙관과 희망은 건전한 삶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추운 겨울 런던 시내의 한 악기상점에 남루하게 옷을 입고 헌 바이올린을 든 남자가 들어섰다. “무얼 찾으십니까?” 주인이 묻자 그는 “제발 이 바이올린을 사주세요.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든 먹어야 하니 얼마라도 좋습니다. 그냥 사주세요!”

값어치 없는 악기라고 생각한 주인 벤츠씨는 적선한다고 생각하고 5달러를 주고 그 바이올린을 샀다. 남자가 떠난 후 무심코 그 바이올린을 켜보려고 손잡이 줄에 대고 활을 한번 튕겨보니 놀라운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랄 정도로 풍부한 음색과 선율이었다. 벤츠씨는 급히 환한 불을 켜고 먼지투성이 바이올린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엔 기절할 만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Antonio Stradivari, 1704’. 많은 사람이 찾으려고 애썼던 거장(巨匠)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바이올린임을 알게 된 것이다. 벤츠씨는 얼른 밖으로 나가 남자를 찾으려 했으나 이미 그 남자는 사라진 후였다.

절박함 때문에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다. 때론 그 절박함이 오판을 불러와 잘못을 일으키기도 한다. 인생에서 절박함은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행동할 때 한번만 더 주변을 살펴보는 여유를 갖는다면 잘못보단 성공과 마주할 확률이 훨씬 더 크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그 엄청난 ‘스트라디바리’를 단 5달러에 넘겨버리는 우를 범하고 만다.

노자는 마음의 여유를 갖는 ‘도인의 풍모’ 7가지를 이렇게 말했다.

첫째, 도인은 얼어붙은 강을 건너듯 조심조심한다.

둘째, 일을 당하여 사방을 경계하듯 머뭇거린다.

셋째, 손님처럼 의젓하고 삼간다.

넷째,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세상과 허물없이 소통한다. 다섯째, 통나무처럼 소박하다.

여섯째, 계곡과 같이 마음이 텅 비어있다.

일곱째, 도인은 흐린 물처럼 혼탁해 보인다.

도인은 생사를 초월하고 우주의 진리에 달통한 사람이다. 도인은 주저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과단성 있고 매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이다. 손님처럼 자기주장을 굽히기도 잘 하지만 확고한 자아(自我)를 지닌 주체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도인은 소박하고 순수하지만 동시에 흙탕물과도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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