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당신은 이런 사람을 가졌습니까?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회 명예회장] 힘든 인생에 영혼의 동반자가 있다면 고난을 이기는데 큰 힘이 된다. 누가 누구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영혼의 동반자를 만드는 방법은 덕을 입기보다 덕을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하다.

영국의 한 신문사에서 퀴즈를 냈다. “런던에서 맨체스터로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두둑한 상금 욕심에 많은 사람이 응모에 나섰다. 물리학자, 수학자, 설계사, 회사원, 학생들이 저마다 기발한 해답을 제시했다. 그러나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1등을 차지한 답안은 뜻밖에도 아주 간단했다.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다. 사람의 인생길은 맨체스터로 가는 길보다 훨씬 멀고 험하다. 비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는 날들이 숱하다. 그 길을 무사히, 행복하게 가자면 가족, 친구, 동료와 같은 여행의 동반자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라피끄’라는 말이 있다. 라피끄는 ‘먼 길을 함께 하라’는 뜻을 지닌 아랍어다. 개인이든 국가든 좋은 동반자의 필수조건은 공감(共感)이다. 공감은 어두운 터널 안에 있는 사람에게 터널 밖으로 어서 나오라고 소리치는 것이 아니다. 기꺼이 터널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묵묵히 옆자리에 함께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만약 비를 맞고 있다면 함께 비를 맞아 주는 일이 공감이다.

악성(樂聖) 베토벤의 성공엔 이런 공감의 동반자가 있었다. ‘어머니’였다. 천둥이 치는 어느 날, 소년 베토벤이 마당에서 혼자 비를 맞고 있었다. 소년은 나뭇잎에 스치는 비와 바람의 교향곡에 흠뻑 빠져들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에게 집으로 빨리 들어오라고 소리치지 않았다.

아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꼭 껴안았다. 함께 비를 맞으며 “그래,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를 함께 들어보자”고 했다. 아들은 신이 났다. “엄마, 새소리가 들려요. 저 새는 어떤 새죠? 왜 울고 있어요?” 어머니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아들의 질문에 다정하게 응대했다. 위대한 베토벤의 교향곡은 아마 그때 밀알처럼 싹이 돋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동반자를 원한다. 그러나 고달픈 인생길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비책(秘策)이 있다. ‘바로 나 스스로 좋은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홀로 비를 맞는 상대에게 다가가 함께 비를 맞는 일’이다. 라피끄! 그런 영혼의 동반자가 부쩍 그립지 않은가?

삶이란 관계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참된 관계란 과연 얼마나 될까? 참된 ‘관계’란 ‘내’가 끼어들지 않는 것이다. 보통 우리가 맺는 관계는 철저히 계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람이 나에게 어떤 이익이 될 것인가’를 먼저 따진다.

만약 ‘나’라는 상(相) 없이 상대와 관계를 맺게 된다면 우리는 평등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볼 수 있다. 좋은 사람, 미운 사람, 능력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등 그 어떤 분별도 없이 오직 동체대비(同體大悲)의 평등한 관계만이 순수하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나’라는 울타리가 걷어졌을 때 나와 상대라는 차별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불교에 사섭법(四攝法)이 있다. ‘나‘라는 상이 없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법이다. 사섭(四攝)이란 보시(布施)·애어(愛語)·이행(利行)·동사(同事)를 말한다. 여기서 섭(攝)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하면 모든 중생들이 다 한마음 한뜻으로 화합하며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이다.

첫째, 보시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이 물질적인 것일 수도 있고, 정신적인 것일 수도 있으며, 육신일 수도 있다. 조금 밑지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무조건 베푸는 것이다. 할 수만 있으면 상대방을 위하여 맨발로 뛰는 것이다.

둘째, 애어다.

친절한 말을 하는 것이다. 타인을 대하면서 친절하고 부드러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이간질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악한 말을 하지 않는다. 언제나 선한 말, 착한 말을 하여 상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애어다.

셋째, 이행이다.

상대를 이롭게 하는 행위다. 상대방에게 이익이 되는 육신과 언어와 마음의 온갖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이익이란 의로움을 뜻하기도 한다. 참다운 이익은 정의로부터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남들이 만나보고 싶어하고 또 남들이 그 사람을 그리워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그러한 마음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세상을 보다 달관해야 할 것이고 많은 수행을 쌓아야만 얻어진다.

넷째, 동사다.

서로 협동 또는 협력하는 것이다. 상대방 입장에 서서 자기의 일처럼 협력하는 것이 동사다. 하지만 그 일은 법에 따른 바른 일이어야 한다. 무조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도리에 합당한 일에만 협력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인간관계에서 이 사섭법을 실행하면 그 인연은 영혼의 동반자라 할 수 있다. 정신 육신 물질로 혜시를 많이 하는 사람이 인연복도 좋다. 인생에는 네 가지 중대한 인연이 있다. 첫째는 나를 낳아준 부모, 즉 ‘생아자(生我者)’다. 둘째는 나를 친구로 여기는 붕아자(朋我者)요, 셋째는 나를 가르쳐 주는 스승 즉, 교아자(敎我者)이며, 넷째는 나와 가족을 먹고 살게 해주는 후원자 즉, ‘식아자(食我者)’다.

사실 친구와 스승과 후원자 세 가지 인연 중에 하나만 얻을 수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인연을 뛰어넘는 최고의 인연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 즉, ‘지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