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의병군가’···”왜놈들아, 명성황후 시해 반드시 복수하리”
[아시아엔=김세만 대중음악칼럼니스트] <의병군가>는 1895년?일본 침략자들에 의한 잔학무도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계기가 돼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들에 의해 불렸다. 국모를 잃은 슬픔, 누란위기에 처한 백성들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지키랴?” 조정은?외세의 눈치를 보면 우왕좌왕하더라도 결국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은 바로 제 정신을 놓지 않은 선비와 민초들이었다. 이들이 울분을 삼키며 부른 노래가 바로 이 노래다.?
김옥균 등 개화당의 갑신정변 실패로 경복궁의 건청궁에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일본낭인들에게 명성황후 민비가 1895년 10월8일 새벽 5시 시해를 당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며 만들어졌다.
4·4조 전통적인 형식을 채택하여 한글로 지어진 게 특징이다. <의병군가>를 함께 불러보자.
내집 없어 서러워라
나라 없어 서러워라
임금 섬겨 나라 찾고
왜놈 잡아 임금 앞에 꿇어 앉혀
우리임금 분을 풀어주세
나라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국가와 임금에게 충절을 바치며 단결하여 나라를 바로세우고자 한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다.
선조들의 피울음이 바로 곁에서 들리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