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만의 대중음악 산책] 1910년 ‘학도가’···”안중근 의사 뜻 나도 따르리라”
[아시아엔=김세만 대중음악칼럼니스트] 우리 국민은 역사적으로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매여 지속적인 외부간섭과 파당과 관료부패, 정치력 부재, 민심불안 등 내부요인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가야 했다.
그때마다 한국인에게 꿈과 용기를 준 것이 있다. 외세를 배척하며 국권을 되찾고 흩어진 민심을 하나로 결집해 민족자존과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노래들이 바로 그것이다.
<학도가>는 1910년 일제에 의한 강제 병탄이 자행되고 국내외에서 항일투쟁이 본격화되면서 불리기 시작했다.
1907년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을 사신으로 보내 국권회복을 호소했으나 이준이 분사하며 실패로 돌아가 조선군이 해산당하는 등 일제의 탄압이 극도에 달했다.
이에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26일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에서 사살했다.
안중근은 1910년 3월26일 여순 감옥에서 31세 나이로 처형당하며 생애를 마쳤으나 민족의 영원한 영웅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
벽상의 괘종을 들어 보시오
한 소리 두 소리 가고 못 오니
인생의 백년가기 주마 같도다
동원 춘산의 방초녹음도
서풍추천에 황엽같구나
제군은 청춘소년 자랑마시오
어언에 명경백발 가석하리라
학도야 학도야 생각하여라
우리의 할 일이 그 무엇인가
자나깨나 쉬지말고 학문 넓혀서
좋은 사람 되는 것이 이 것 아닌가
이 무렵 <학도가>는 거리에서 민중의 독립운동을 상징하며 국민가요처럼 전국 방방곡곡에서 메아리쳤다.